친정집에서 엄마는 "가져갈 거냐? 버리지 않고 묵을 거지!" 하며 껍질을 벗기지 않은 마늘을 구멍이 숭숭 뚫린 검정 그물망에 싸고,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양파, 등은 김치통에 바리바리 싼다. 주고 싶어 하는 엄마 마음을 알기에 주면 주는 데로 모두 받아 온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가져가서 먹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가져가?, 마늘 깔 시간이 어딨어?. 가져갈 거면 혼자서 다 해. 우린 안 도와줄 거야!" 하며 가져가는 걸 만류한다. 나의 속마음은 가져가지 말까 하다가도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가져갈게"하며 말을 해 버린다. 걱정이 생긴다. 내가 단호하게 사양하지 못하고 걱정거리를 또 만든다.
가져올 때는 다 먹을 것처럼 하면서 사실, 우리 집에 가져온 음식 중에는 제때 해 먹지 않아서 썩혀 버리는 것도 많다. 아깝게. 뻔히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또 가져와서 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운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 안 묵을 거면 가져가지 말지, 아깝게 그걸 왜 버려?, 다른 사람이 못 먹는다고 버린 쌀을 깨끗하게 씻어서 다시 먹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걸 버리냐?"라고 야단을 쳤을 일이다.
음식을 보관하다가 먹기만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고구마순이나 마늘 같은 경우는 다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껍질을 벗겨 손질을 해야 된다. 평소 하지 않던 많은 양의 채소 다듬기는 미루는 습관을 만들고야 만다.
우리 집에 가져온 껍질 마늘은 하루를 지나고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다. 베란다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갑갑하다며 시원하게 껍질을 벗겨 달라며 보채는 것 같다. 마늘을 보면 "저 녀석을 붙잡고 껍질을 까야하는데 어쩌지?" 하다가도 다음에 하면 되지 하면서 뒤로 미룬다. 마늘은 그 뒤로도 몇 주를 더 껍질을 벗겨주라며 나에게 눈짓을 한다. "알았어. 알았어" 다독이는 사이, 가족들은 참다못한 나머지 슬슬 마늘 얘기를 꺼낸다. "마늘을 저렇게 둘 거야? 언제 깔 거야?" "아휴, 저걸 어쩌지!".
지난 일요일. 남편과 여동생, 나 셋이서 얇은 고무장갑을 낀 채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남편은 " 이게 뭐야, 고급 인력들이 이렇게 마늘을 까고 있으면 되겠어? 손톱 밑도 아프고, 허리는 또 얼마나 아픈지 몰라. "미안해요, 다음부턴 안 가져올게요" 마늘 까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행동에 후회가 밀려온다. 매번 다짐을 하지만 반복되는 일이다.
거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마늘을 까고 있다. 마늘 껍질이 온 거실에 날릴까 봐 선풍기도 켜지 못하고, 마늘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어둬야 해서 에어컨도 못 켠다. 덥고 냄새나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즙을 먹을 때도 그렇고, 약을 먹을 때도 그런 것처럼 뭐든 마지막 몇 개 처리가 힘들다. 마지막 몇 개 남은 아주 작은 마늘은 버리고 싶었지만 끝까지 참고 다 깠다.
세 사람이 그물 한 망에 들어있던 마늘의 껍질을 다 벗긴 마늘의 무게는 2.4 킬로 그램. 시간은 인당 2시간. 나 혼자 했다면 6시간이나 걸렸을 시간.
"가져오지 말라니까 꼭 가져와서 우릴 고생시키네! 다음부터는 절대 가져오지 마!" 남편과 동생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다음날. 남편이 손을 펼쳐 보여주며,
"이것 좀 봐! 손에 습진이 생겼어! 다 마늘 때문이라고!" 다음부터는 아무리 엄마가 줄 거라고 해도 사양해야겠다. 결론은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