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아는 사람 Aug 04. 2023

몇 년 만이야 우리?

님으로 가득 찬 친구의 식당에서 글을 쓴다. 아! 친구는 나를 이 식당에서 가장 시원한 곳 테이블에 앉혀 두고 서빙에 정신이 없다. 손님이 부르면 달려가고 손님들이 부르지 않으면 내가 있는 테이블로 쪼르르 온다. 지금은 주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친구의 식당은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떠들썩하다.


식당의 주인은 나의 고향 중학교 친구다. 친구를 만나러 내가 식당으로 찾아왔다. 거의 30여 년 만이다. 친구를 만나기 전 가장 핑크하고 야리야리한 꽃을 사기 위해 꽃집 탐색에 나선다. 꽃다발을 받고 기뻐할 친구를 상상하며 나름 예쁜 꽃이 준비되어 있는 네다섯 군데의 꽃집에 전화해서 묻고 답하며 찾았다. 꽃집에서는 친구에게 선물할 거니까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낯선 나를 본다.


'좀 더 진한색으로 섞어서 해 주세요, 꽃다발 포장은 둥글게 하지 말고 약간 브이형으로 해 주세요' 무던한 내가 갑자기 까다로운 손님이 된다. 연한 핑크, 진한 핑크의 예쁜 꽃과 함께 꽃을 빛나게 해 주는 초록잎을 곁들인 꽃다발을 보니 만족스럽다.


조심스레 꽃다발을 들고 친구의 식당 입구에 서자 약간 떨림과 설렘이 뒤섞인다. 미닫이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마주한 직원에게 친구의 이름을 대자 직원은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사장님, 친구분 오셨어요?'라고 주방 쪽을 향해 외친다.


잠시 후 주방에서 짙은 핑크색 퍼프소매로 된 블라우스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친구가 나온다. 우린 바로 눈물을 글썽이며 부둥켜안는다.'이게 얼마만이야?, 착한 우리 친구 하나도 안 변했네! 이 꽃은 뭐야 너무 이쁘 다!' 서로 멈칫멈칫 말이 끊긴다. 너무 좋아서 두 눈만 마주하고 있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건너 건너 친구를 통해 연락처를 겨우 알아낸 뒤, 드디어 오늘 만났다. 식당 오픈 30분 전이다. 짧은 시간에 우린 봇물 터지듯 많은 얘기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난 미리 사진으로 찍어 둔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여주고 친구는 편지를 읽어보며 또 한 번 감동한다. 추억이 새록새록하다고 하면서.


친구의 식당은 직접 개발한 해물삼합으로 현재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맛집이라고 한다. 친구는 인기 있는 음식맛을 나에게 직접 보여 주고 싶다며 일부러 식당으로 약속을 잡았다. 식당에는 오픈전인데도 예약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테이블마다 세팅이 되어 있다. 테이블을 보니 손님이 많아서 좋으면서도, 친구의 시간을 많이 뺏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친구는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여긴 뭘 타고 왔냐? 물었고

'남편이 내려주고 동생이랑 친정엄마와 함께 공항에 큰딸을 데리러 갔어!'라고 했더니

'빨리 전화해!, 빨리 오라고 해!. 제일 시원한 자리로 세팅을 해놨어!'

'식구가 너무 많아서 안돼!'

'무슨 말이야, 빨리 전화해!'

'알았어!. 알았어!'

친구는 식당에서 가장 시원한 테이블로 나를 데리고 간다. 의자에 앉힌 뒤 맥주 한 잔 하자며 '짠' 한다. 손님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친구는 바쁘다. '잠깐만 기다려' 해 놓고 반갑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러 갔다가, 주방으로 왔다 갔다 바쁘다. 바쁜 와중에도 사이사이에 나를 찾아온다. 친구는 식당 손님을 대하는 말투나 태도에 정성이 들어 있다. 직원들도 친구처럼 손님을 싹싹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친구는 바쁘고 난 한가하게 친구의 장사하는 모습을 구경꾼이 되어 구경한다.


남편이 빨리 오지 않아 심심해서 밑반찬으로 미리 나온 고둥(대사리)을 이쑤시개로 까서 먹는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친구가 내가 먹던 고둥의 배가 넘는 큰 고둥을 가져온다.

'내가 먹으려고 챙겨 둔 건데 친구 줘야지!' 하며 따로 숨겨 뒀다는 고둥을 내민다.

'나 고둥 좋아하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니까

'지금 잘  먹고 있네!' 웃으며 손님 테이블로 향한다.


굵고 실한 고둥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어릴 때 할머니랑 바닷가 큰 바위 아래 종아리가 잠길 정도의 물에서나 잡을 수 있었던 고둥. 내가 잡았지만 굵은 거는 내 입에 넣지 못하고 시장에 팔려 가야 했던 고둥. 쫄깃한 고둥의 식감. 난 음식을 먹을 때 식감 있는 것이 좋아한다. 물컹하거나 흐물거리는 것보다는 꼬들꼬들하고 쫄깃한 것을. 고둥 10개 정도를 먹으면 큰 소라 한 개를 먹은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맛있다. 친구는 여전히 바쁘고 내가 있는 테이블을 지나가면서 틈틈이 눈길을 건넨다.


남편은 한 시간이 넘어서야 식당으로 들어오고, 남편이 도착하자마자 주문하기도 전에 음식이 나온다. '명품해물삼합'이 나온다. '생삼겹살, 꿈틀대는 싱싱한 문어, 생전복, 생새우, 게지, 묵은지'가 돌판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싱싱하다, 맛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해물이 다 나왔네!' 우리 가족은 맛있게 익어가는 음식 먹을 생각에 신이 난다. 우린 해물삼합과 고둥 맛을 넘어선 맛있는 소라 한 접시까지 먹으며 감탄한다.


친구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는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상을 먹는다. 이런 날이 생기다니 꿈만 같다.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만 생각했지, 친구의 식당에서 우리 가족이 음식을 먹고 있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손님들이 조금 줄어서 한가할 때를 기다리다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간다.

'계산해 주라?'

'미쳤냐?'

친구는 돈을 받지 않겠단다. 한두 명도 아니고 우리 가족 다섯 명이나 음식을 먹었는데.

'안돼! 어떻게 돈을 안 받아!'

'안 받을 거라니까!'

어쩔 수 없이 '진짜 고맙게 잘 먹었어!' 인사를 하고 30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아쉬운 만남을 마친다.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밝고 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한다.


뒷날. 친구에게

'진짜 반갑고 고마웠고 다음부터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연락할게!'라고 약속한다.

친구의 남편은 내가 선물한 꽃이 시들면 안 되니까 꽃을 꽃병에 꽂지 말고 말리라고 했단다. 처음 대하는 친구의 남편을 보면서 친구가 참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싶었는데 느낀 그대로다. 친구의 남편은 친구가 받은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다. 다음번엔 친구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다시 만나기로 했다. 친구와의 대화 중 친구는 남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 참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친구의 남편과 우리 남편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성실성이다. 두 사람의 좋은 만남이 될 것 같다.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몸과 마음이 말랑거리면 좋으련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