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세월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길 때마다 몸과 마음이 말라간다. 살이 빠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건조해진다는 말이지. 거칠고 딱딱해진 피부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상처를 내는 굳은살이 되어간다. 언젠가부터 손가락에 낀 반지와 부딪히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긴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더니 그 후로 발가락에도 굳은살이 생긴다.
"니는 나 닮아 발가락새가 넓어서 무좀은 안 걸리겠다"라고 생전에 아버진 말씀하셨는데. 그건 오십 이전 얘기다. 오십이 넘어가니까 발가락과 발가락이 부딪혀 굳은살이 박이고 있다. 오십이란 나이는 그전과 후를 가로지르는 한 장막일지도 몰라. 아니야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참 별일이다. 많이 걸어서일까?, 신발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말한다. ' 발가락이 갈수록 휘어지니까 발가락이 서로 붙지 않게 잡아당겨주는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로 여기고 가볍게 웃고 넘겼다. 몸의 그 많은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지만 발가락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발가락이 서로 부딪혀서 굳은살이 생기고 나니까 그냥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구나 싶다. 처음엔 딱딱해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발가락의 굳은살을 만지며 구시렁거리는 나를 보고 딸이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 '엄마, 피부의 결이 바뀌었네'. 맞다. 마음의 결이 바뀐 것처럼 피부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결은 노력 하면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피부다. 피부의 결은 점점 단단해지면 단단해졌지 부드러워질 것 같지가 않다. 일 하며 바쁘게 움직일 때는 잊어버리다가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굳은살에 눈길이 간다. 무슨 의사라도 되듯이 꼭꼭 눌러서 만져 본다. 아프다. 임시방편으로 로션을 잔뜩 바르고 잠자기 전에는 양말을 신어 본다.
피부의 결이 바뀐 데다 많은 시간을 걷고 또 걷는 나의 직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루에 만보 이상은 필수로 걷다 보니 발가락엔 한 번도 생기지 않던 굳은살이 생기고, 신발을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목까지 아프다. 다시 새 운동화로 바꿔 신는다. 신발 때문인지 아니면 자세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의문만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말랑거리면 좋으련만. 자기 방어를 위해 마음을 더 단단하게 굳히고 쌀쌀맞게 구는 것은 아닌지. 피부도 웬만한 자극에는 흔들리지 않으려 스스로 더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부딪히는 모든 것이 단단해지면 남는 건 상처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