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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Nov 03. 2023

감정의 온도차

즐거운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감정의 온도와 습도에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인데 그게 되냐고? 되는 사람도 있다. 몰랐다.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도 슬프고 내가 기쁘면 다른 사람도 기뻐 날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정의 온도가 비슷한 사람도 있지만 전혀 아닌 사람도 있다. 자기는  모르고 살았으나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알게 되는. 그때서야 깨닫는 순간. 진짜 다른 사람과 감정의 깊이와 폭이 다름을 느끼는 이러한 증상?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힘들다는 것은 바꾸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아마도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망 속에서도 이러한 낮은 감정의 온도는 존재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서 조금 나아졌나 싶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난 질문을 한다.

"설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았겠지?"

"아니, 비슷했던 거 같아!"

"그게 이 돼?

"정말 그렇다니까! 좋다는 낌이지 엄청 좋은 건 아니란 말이지""

"싫은 것도 그래?"

"음. 싫은 것도 그냥 싫지 못 견딜 정도로 싫지는 않은 거 같아!

"그렇구나! 감정이 그렇게도 된다니 나로선 쉽게 이해가 되진 않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좋은 것도 있네. 슬픔이나 고통 속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근데 요즘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인지 조금은 바뀌어 가는 거 같아"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지만 다행이네. 지금 이 시간부터 바뀌면 되는 거지. 좋은 현상이네"

"아마도 표현에 고수인 네 곁에서 보고 들으며 배우는 거 같아. 음. 전염되어 가는 중이랄까"

"잘됐네. 그럼 내가 감정 표현 제대로 가르쳐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그렇다. 감장을 숨기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쑥스럽고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 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속으로 꿀떡꿀떡 삼키는 연습이 과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좋아도 크게 소리 질러 환호 한 번 못 해 보고, 슬퍼도 목놓아 울어보지 못하는 사람.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에게 사랑의 눈길 한 번 줘 보지 못한 사람. 감정은 숨기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드러내야 한다. 감정을 숨기면 누가 알까. 아무도 모른다.


결국, 이러한 감정을 꾹꾹 누르고 숨기다 보니 억울함이 덩달아 쌓인다. 억울함을 겪는 사람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나름 발버둥을 치지만 스스로 지치고 만다. 억울함은 그대로 둔 채. 한 겹 더 억울함 위에 분노가 찰싹 달라붙어 내려앉고 만다.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정의 온도가 대부분 높은 나료서는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표현하기 힘들다고 하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평소 가족들은 이런 나를 보며,

"와~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지?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닌데 부끄러움도 없이  선수처럼 몸을 크게 움직이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고, 어떤 직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현 한단 말이야!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생겨난 거야?"


"어디서 나오긴. 정작 나도 몰라. 그냥 감정에 충실하면 돼.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솔직하게 보여주면 되는 거야. 쉽지. 그래 너무 쉬워. 된다니까. 처음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하고 나면 별거 아니구나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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