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나의 첫 책이 출간된 이후로부터
지난 8개월.
뱃속의 아이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회피를 선택했다.
- 나를 평가하는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회피.
-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부터의 회피.
- 나의 행동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의 회피
이러한 회피는 왜,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내가 책을 썼다는 소식을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조차 엄청난 부담감이 되는 것을 느낀 순간,
나는 내 마음에 굉장한 치유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책을 알리고, 공부한 지식들을 나누기 위해 개설한 SNS에 더 이상 아무 게시물도 올릴 수 없었다.
회피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교직생활을 하며 거의 매일, 아이들을 지도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두려움에 기록을 남겼다.
'이 아이가 오늘은 내 지도에 따랐지만, 언제고 부모님께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하게 되면 부모님은 나에게 민원을 넣을 수 있어. 내 지도가 정당했다는 걸 증명해두어야 해.'
'분명 내가 지도를 했고, 상담도 했고, 이 아이의 변화를 위해 개인적인 자료까지 만들어 제공했어. 하지만 아이의 잘못이 두 번, 세 번 반복될 때 학부모들, 관리자들, 교육청 관계자들, 세상 사람들은 "선생님은 뭐 했어요?"라며 나를 탓할 거야.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증명해야 해.'
'오늘 퇴근 이후에 누군가 나에게 전화해서 내 행동에 대해 민원을 넣으면 나는 내 정당성을 어떻게 증명하지? 뭐라고 부모에게 설명해야 부모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면서 이 상황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있지? 기록해 둔걸 사진 찍어 가야겠다. 언제라도 설명할 수 있게.'
'아이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부모에게 말하면 "선생님은 우리 애만 왜 그렇게 보세요?"라고 말하고 내가 자기 자식만 차별한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둘러서 말을 해야 하지? 둘러서 말을 하면 정확한 상황이 전달이 안될텐데 어떡하지?'
특별히 아이들을 혼내거나, 엄히 대한 날에 했던 생각들이 아니다. 지극히 부드럽고 평범했던 매일, 이런 생각들은 떠올랐다. 지금의 아동학대법에 따르면 아이의 한마디 말에 나는 언제든 신고를 당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뒤엉켜 싸우는 아이들의 몸에 손을 대 떼어놓는 것만으로도 신고를 당할 수 있다. 뉴스에서 나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남일이 아니다. 언제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참... 정말 진이 빠지는 생각들이다.
분명 마음 한구석에선 '아니야,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이들과 레포가 잘 형성되어 있고, 나의 교육관을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들이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뇌의 특성상 부정적인 생각들은 더욱 쉽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정말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었기에 이 노력을 부정당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더 두려웠다.
특히나 책과 관련해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내 책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부정적인 댓글을 달거나, 맘카페에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퍼트리면 어쩌지?'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면 나는 어떻게 증명해야하지?'
누가 보면 바보같이 왜 이런 생각을 하냐 하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 7월 서이초 사건이 터지고 교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며 여러 선생님들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사연들을 접하게 되면 될수록 나를 드러내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특히, 10년 전 아이들의 싸움을 말렸던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건을 접하면서 내 속의 막연한 두려움은 더욱 실체가 뚜렷해졌다. '책을 통해 지난 10년간 내가 지도했던 학생, 학부모들에게 내가 노출되어도 괜찮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일로 신고당하는 일이 나에게 생기진 않을까?'
뱃속의 아기와 나를 이런 부정적인 가능성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회피를 택했다.
회피의 모양은 이렇게 다양하게 드러났다.
- 내 책은 펼쳐보고 싶지도 않았고, 내 책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귀찮아졌다.
- 인스타그램은 물론,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 주변에 내가 작가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 내 책에 대한 서평을 찾아보는 것도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포기했다.
- 책의 내용에 대한 학부모 강연을 취소했다.
-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룹 내에서만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새 책을 쓰려고 기획하던 내용을 외면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
- 독서에도 흥미를 잃었다. 책을 읽으며 또 책을 쓰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 일기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 자체를 회피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지만 지금에서야, 이유를 깨닫는다.
단순히 내가 게을러서, 임신을 하고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실은 오래된 마음의 문제였던 것인데...
오래되고 숨겨져 있던 마음의 문제가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을 통해 더욱 크게 나를 덮쳤던 것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모든 것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지키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인스타그램 게시물 덕분.
전국교사작가협회 책쓰샘(책 쓰는 전현직 교사 모임)을 홍보하는 게시물이었다.
'세상에... 책을 쓰시는 선생님들의 모임이 있다고?'
나와 같은 입장의 선생님들이 계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임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게시물들을 둘러보는데 엄청난 동지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립되어 있던 동굴 속에서 함께 나갈 동료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모임에 가입한 것도, 참여한 것도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내면의 치유를 느꼈다.
'그래! 이렇게 편안하게 글을 쓰면 되는거였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잘못된 틀에 갇혀 있었구나.'
그리고, 바로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오랫동안 켜지 않아 배터리가 닳아 있어 일단 충전기를 꽂고 이 글을 써내려 간다.
8개월을 쓰지 못했던 '글'인데...
자판에 손을 올리자마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발적으로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글로 정리가 된다.
들여다 보기 어려웠던 내 마음에 한발짝 다가섰다.
이제 38주. 무거운 만삭의 몸에 손가락은 퉁퉁 부어있지만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힘을 준 어딘가에 계신 선생님들께, 책쓰샘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모임에 함께 하리라.
이제 고립되어 있던 막연한 두려움에서 일어나자.
외면하고 회피했던 생각들에서 직면하자.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말자.
나에게는 동료가 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를 공격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두려움일 뿐이다.
이제 두려움들과 싸워 이길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들은 나의 영적 성장도 방해해 왔다는 것이 발견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하나님이 손대실 수 없게 내가 꽁꽁 싸매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에게 궁전의 사자가 위해를 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 두려움은 아무런 영향력 없이 울부짖는 사자일 뿐이다.
내 모든 생각과 두려움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곧 만나게 될 나의 소중한 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