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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ul 05. 2019

YESTERDAY, 소중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세상

비틀즈가 사라진 세상, 비틀즈로 가득한 영화, 예스터데이

[스포 심하게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잡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잭.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해보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버스킹도 하고, 심지어 아이들 생일잔치 축하 무대까지 달려가지만...... 아무리 열성을 다해도, 관객 한 명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는 잭. 20년 전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친구이자 매니저 엘리 말고는, 아무도 몰라 주는 가수가 되어 꿈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허망한 날들을 보낸다. 노래를 그만두고 다시 음악 선생님을 해볼까도 생각해 보지만, 잭의 노래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열정을 응원해 주는 친구 엘리의 만류로, 꾸역꾸역 또다시 노래를 부르는데......


세계적인 록 밴드 비틀즈의 열성 팬인 잭, 자신의 공연의 셋리스트로 언제나 비틀즈를 노래하지만, 아무도 흘러간 옛 노래엔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지구 전체에 12초의 블랙아웃(정전)이 일어나면서, 버스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며 앞니 두 개 마저 날려 버리고 마는데.... 그런데 웬걸. 의식을 되찾은 그날 이후부터,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달라진 것 같다. 어? 지금 나만 이상한 걸까.



비틀즈의 노랠 사람들이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고 치자. 그래도 그렇지, 전 세계인이 다 알고도 남을 세기의 명곡 'Yesterday'를 아무도 모른다고? 이런 아름다운 노래를 언제 만들었냐고 내게 묻는 사람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니야? 어라? 코카 콜라가 없어? 담배가 뭔질 모른다고? 그 유명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란 노래를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뭐? 해리 포터를 아무도 모른다고? 아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사실 난 이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인 줄 알고 극장에 갔다. 물론 이런 오만방자한 추측은 한 번에 날아가고,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극장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만큼 여운도 많이 남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된 영화랄까. <맘마 미아 2>, <다키스트 아워>,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릴리 제임스까지 나온다니. 아니 근데 대체, 이렇게 웃기면서, 감동적이면서도 뭔가 남기는 영화는 누가 만든 거야?


마지막에 알고 보니, 그럼 그렇지. 그 유명한 대니 보일이 감독을 맡고,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을 맡았다. 모두 음악과 영화 연출을 자유자재로 해내는 천재들. 대니 보일은 <트레인스포팅>, <프랑켄슈타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같은 재기 넘치는 영화를 필모로 가지고 있고, 리처드 커티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남을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등을 쓴 사람이 아닌가.

기발하고 코믹한 설정을 완벽하게 연기한 배우들과 감독,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영화, 제목이 <예스터데이>라고 해서, 진짜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전기 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코믹한 로맨틱 판타지 영화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중 가장 큰 방점은 '판타지'에 찍힌다. 전 세계에서 '모른다'라고 말하면 간첩이라고 오해받을 위대한 영국의 밴드 [비틀즈]. 주인공 잭이 사고를 당했던 12초의 정전, 그 '마법'같던 순간 이후, 비틀즈의 노래는 '마법'처럼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구글, 위키피디아에서도 '비틀즈'를 검색하면, '딱정벌레' 사진만 우수수 쏟아진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내가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펩시'를 사다 주는 바람에 'COKE'없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뭐라고?'라고 되묻는다.


"엄마, 근데, 왜 코카콜라 아니고 펩시야?"

"그 코카콜라라는 게 뭔데?"


뭔가 이상하다.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YESTERDAY,
누군가에겐 무척 소중했던 모든 것들


영화 <예스터데이>는,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 세상을 그린다. 비틀즈도 없고, 코카 콜라도 없고, 오아시스도 없고, 담배도 없다. 사람들이 뭔가 '아끼고 좋아했던 것들', '중독되고, 미치도록 사랑했던 예전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 그런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가수 잭은, 이제 이 세상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알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이다.


히메쉬 파텔, 진짜 이 배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영화 속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잭(히메쉬 파텔). 그는 알고 보니 영국에서 약 10년간 TV 드라마, 단편 영화로 활동하다가, 이번 영화 <예스터데이>를 통해 영화에 첫 데뷔를 하게 됐다고 한다. 추가로 <애스트로넛>이라는 영화도 찍는 중이라 하고, 내 생각엔 이 영화가 그를 꽤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어 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지만. 연기도 잘하고, 유머 감각도 넘치는 데다가, 노래까지 잘한다. 오, 꽤 매력 있는데?


그런 잭이, 비틀즈의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부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잭에게 엄청난 관심을 갖게 되고, 어느 날 카페에서 펼쳐진 그의 공연을 눈여겨본 개빈 덕에, 단독으로 음반을 녹음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후 TV 출연을 하게 된 잭. 그 방송을 보고 한눈에 반한 세계적인 팝스타가 잭에게 전화를 하고. 장난 전화인 줄만 알고 잭이 계속 끊어버리자, 한밤 중에 잭의 집에 직접 찾아와 자신의 공연에서 노래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데... 그가 누구냐고? 바로 이 남자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바로 에드 시런이 출연한다. 그것도 꽤 비중 있게. <Hey Jude>의 제목을 바꾸라는 장면은 정말이지.. LOL

에드 시런의 러시아 공연에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급기야 에드 시런의 매니저에게 스카우트되어, LA, 리버풀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수가 된 잭.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싱어송라이터'가 된 잭은, 계속해서 '혼자만 기억하는' 비틀즈의 명곡들을 줄줄이 발표하면서, 명성을 쌓아가는데... 과연 그래도 될까?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들지? 언제까지 사람들이 내가 '천재 가수'가 아니란 걸 모르고만 있을 거 같지 않은데.

데이빗 코든까지 찬조 출연한다. 세상에나.
TODAY,
소중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지금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렇게 사라진 것들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잭. 그 덕분에 잭은 금세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죄책감과 허망함에 시달리게 된다. 더군다나, 20년 넘게 내 곁을 지켜준 엘리가, 이제야 진짜 내 사랑인 것만 같은데, 그런 앨리를 붙잡으며 내 인생을 포기하자니, 이제까지 쌓은 부와 명예를 다 버려야 한단 말인가. 노래는 내 평생의 꿈이었는데.


진짜 소중한 것을 계속 놓치고 있는 우리

영화 전체로 보면, '비틀즈'만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았다. 비틀즈만이 아니라, 한때 우리가 사랑하고 즐겼던, 곁에 없으면 허전하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혹은 잊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신선한 일인지. 허나, 나는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곡을 찌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잭은 그토록 사랑하는 노래를 계속 해나가면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인기와 사랑을 얻지만, 그는 점점 시들어간다. '거짓으로 점철된 삶'에 지쳐가고 있던 거였다.


기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한때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지만, 가령, 이것들이 정말로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한때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 대니 보일과 리처드 커티스는, 그걸 꼬집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느꼈다. 리처드 커티스의 전작들을 잘 살펴보면, '시간(어바웃 타임)', '사랑(러브 액츄얼리)', '선택(노팅힐)', '인생(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잠깐 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얘기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비틀즈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노래는 많다. 코카 콜라가 아니어도 펩시가 있다. 담배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체재들은 널리고 널렸다. 오아시스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훌륭한 노래를 부를 가수들은 많다. 해리 포터가 없다고 해서, 읽을 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때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것들, '애정 했던' 것들은 뭘까.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실은 내 곁에, 그동안 내가 모르던 사이에, 희미하게 잊혀간 진짜 소중한 존재가 있진 않았을까? 그게 바로, 내가 '어제' 속으로 내 버려둔, 내게 가장 소중했던 '오늘이었던 것들'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어제 일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나에겐 무엇이 남을까?

비틀즈의 노래를 아는 청년 잭이, '거짓'을 노래하는 삶에 환멸을 느끼고 점차 변해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처럼 진행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이제 '새로운 것'만 원해도, 그 속에서 예전의 아름다운 것들, 내 곁에 항상 있었던 것들, 곁에 있었지만 몰랐던 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잭이었다. 그 소중한 것들을 아는 유일하게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잭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지만, 거짓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삶으로 변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 좋아했던 건 뭘까.  
그게 바로, 내가 '어제' 속으로 내버려둔,
내게 가장 소중했던
'한때 오늘이었던 것들' 아닐까?

이제는 비틀즈가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잭 말릭은 바닷가 근처에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78세의 '존 레넌'-물론 대역이자 CG-을 만난다. 존 레넌을 스크린 속에 부활시킨 것에 대해, 해외 영화팬들은 엄청난 반발을 했고, 심지어 이 장면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영화관을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뉴욕에서 안타깝게 피살당한 존 레넌이 살아있다면... 이란 가정과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이었던 존 레넌이 살아있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는 제작진이 너무 '무리했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판타지다. 지극한 판타지에, 사실이냐 아니냐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무용하다. 그저 영화 내내 흐르는 비틀즈의 음악에 어깨가 들썩 거리고, 발을 구르게 되는 것만으로도 2시간 동안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 내가 잊고 있던 것들, 바로 옆에 있지만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모두 '어제'가 되었지만, 한때는 '오늘'이었던 내가 모두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서.



비틀즈가 없어도 우리는 잘 살아나갈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속 잭은 자신이 꿈꾸던 대중의 사랑 대신 엘리를 선택한다. 그 삶이 잭에겐 '어제의 가치', '오늘의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 '진실의 순간'이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서, 잭이 학교 강당 안에서 꼬마 학생들과 함께 '오블라디 오블라다' (Ob-La-Di, Ob-La-Da)를 신나게 부르는 장면은, 충만감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잭은 이제 더 이상 대중 앞에 선 슈퍼스타가 아니지만,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그것을 지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좇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삶은 오늘도 그렇게 지속되기 때문이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Ob-La-Di, Ob-La-Da)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Life goes on."처럼.


무언가를 잊는다 해도, 누군가에게 잊힌다 해도.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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