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나는 홍콩을 지지해.
식당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어 만난 홍콩 출신인 그녀는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이야."
"오 다행이야. 나는 혹시 네가 중국인인 줄 알았어."
그녀는 홍콩이 전례 없던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 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범죄인 중국인도'를 반대하며 자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홍콩의 현상황은 지금으로선 뚜렷한 답이 없어 보인다.
"우리 집은 구성원이 특이해. 아버지가 경찰생활을 오래 하셨고, 다 자란 조카들은 이제 대학생이야. 매일 저녁 우리 집 식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Jay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인 조카들은 경찰의 폭력 진압과 사태 수습에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터였고, 시위대를 진압해야 하는 '책무'를 맡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시위대의 행진, 거리 시위가 못마땅할 터였다. 아무리 자신의 손주, 손녀들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시민의 안전과 임무 수행 둘 사이의 괴리감을 메꿀 수 없는 절망감 속에 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저녁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의심의 눈초리와 분노의 목소리로 질타하는 손주들. 도대체 한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밥상머리에서 매일 같이 설전이 벌어진다고 했다.
"정말이지 매일 머리가 너무 아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여행을 왔어. 그런데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하니 그것마저도 고맙지 뭐야. 나는 뭔가 중재를 해보고 싶어서 매일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언제쯤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분노가 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중요한 건, 이 싸움이 해결될 조짐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게 우리 가족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는 거야. 이건 중국과 홍콩의 문제이지, 우리 가족이 가진 서로를 향한 적대감으로 발전될 문제가 아니라고."
공감을 더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심 차분해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불편해 보이는 모습을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생판 모르는 나를 붙잡고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니.
"Jay, 그래서 너는 어느 편이야? 시위대를 지지해? 경찰을 지지해?"
나는 대답했다.
"음... 나는 홍콩을 지지해."
"현명한 대답이구나"
그것 말고는 아무런 말을 할수 없었다. 그저 너의 가족들에게 평화가 오길 바란다는 것과, 아무도 더 이상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 너의 가족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바람. 그래서 나는 '홍콩을 지지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공권력의 투입이 아니라, 거리로 나온 시민들 사고 방식과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와 자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수호할 수 있느냐, 마느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났지만, 너의 생각을 공유해 줘서 고마워. 너의 가족에게 곧 평화가 찾아오길 바랄게."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더욱이 홍콩을 지지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그렇게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작금의 홍콩 사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절망했을 거야."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음.. 내가 보기엔, 이건 홍콩의 내분으로 귀결되서는 안 될 일 같아. 지금은 홍콩이 하나가 되어야 할 시기니까 말이야. 홍콩과 중국의 문제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손주들과, 공권력의 중심인 경찰인 할아버지의 대립으로 변질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할아버지의 직업이 경찰일 뿐인 거잖아. 그게 본질인 것 같아."
마음을 담은 따뜻한 악수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연락처 교환도 없이, 그저 언젠가 평화로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다시는, 내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순 없겠지만, 그녀의 홍콩이, 온전한 홍콩으로, 평온한 홍콩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며, 때로 스치는 바람결에라도 그녀의 가족을 위해, 홍콩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너무나 평온해서 뭔가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나의 휴식도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