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재밌다고만 볼 건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는게 아니에요.

by 타인의 청춘

요즘 MBTI가 유행이라고 한다. 심지어 MBTI 티셔츠까지 있더라. 첫 회사였던 포스코에 입사해 MBTI검사를 처음 접하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내가 이렇다고? 나를 이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거라고? 그 후로 인사부 교육이나 직원 워크샵이 있던 수많은 회사에서-나는 전문퇴사러이므로- MBTI를 해봤고, 결과는 한번도 다르지 않았다. ENFP. 아마도 6년에 걸쳐서 6번 정도 검사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항상 결과는 같았다. 재미있었던 건, 그 결과가 언제나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양 극단의 점수가 나오는 ENFP.


그렇게 따지면 나는- MBTI를 겉핥기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설명해 본다- 외향적이며, 직관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인지형의 인간이란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ENFP성향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예전에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ENFP가, 전세계 1%라는 자막을 내보냈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사회가 규정하는 나는 그만큼 '레어템'이라는 얘긴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나는 ENFP니까 '스파크형'이어야 하는데, 그게 뭔데?를 파고 들어가면서 '아 맞아 맞아' 하는 순간, 모든 사람을 이분법, 사분법, 16분법으로 나누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단언컨대, MBTI로 사람을 이분법적, 혹은 16분법적으로 구분해선 안된다. 5년 전쯤 MBTI를 지도하기 위해 공부해 봐서 안다. 내가 6년 동안 6번 넘게 MBTI 테스트를 해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버크만 테스트도, MBTI도 다 해봤다.


만약 MBTI가 규정한 대로 사람을 16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한다면, 한 가지 영역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사람은, 아주 유사하고, 심지어 거의 '똑같다', '소오오오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면이 많아야 맞다.


그게 문제라는 거다. 그렇게 MBTI의 결과물에 따라, 대상자에게 '낙인'을 찍어 버린다. 쉽게 말해 '가격표'나 '이름표' 혹은 '주의사항'을 붙이듯이, 대부분 MBTI를 하고 나면 사소한 일에도 '아, 너 E아니고 I잖아, 넌 내성적이니까 그렇지 (심지어 내성적이라는 말과 내향형이라는 말은 의미도 다르다)'라고 말하거나, '너는 T라서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고 F보다 쌀쌀맞은거 같아. 그러니까 니가 T가 나오지.' 이런 류의 '라벨 붙이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ESFJ라서 신기하게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든지, 우리는 ISTJ라서 규범을 준수하고, 계획된 일에 익숙하며, 시간을 잘 지킨다라든지, 그런 정형화된 인간형을 '조각'해 버리는 것이다.


MBTI는 경우의 수처럼, 2가지 요소들이 4개로 나뉘어 2의 4승, 그러니까 16가지의 유형이 발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며 같은 E라도, 외향형의 특질을 얼마나 강하게 가지고 있는지, 약하게 가지고 있는지도 모두 다르고, 심지어 E라고 나온 사람이 알고 보면 I인 경우도 많다.


또, 인생의 단계를 지나며 결과값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고, 가족, 친지, 친구의 죽음, 이혼, 이사, 퇴사, 이직, 해외이민 등 인생의 큰 이벤트가 있을때마다 변할 수 있는 것이 MBTI다. 자신의 진짜 모습, 성향이 어떤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은-나이와 상관없을 수도 있다-자기가 바라는 모습을 답안지에 적기도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내향형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교육된 사회성을 바탕으로 E가 발현되는 사람도 있고, P라고 생각하는 기질이 알고보면 J인 경우도, N이라고 생각했는데 S인 경우도 있다. 그러니 '맹신'하거나 이 기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회사원 중에 굉장히 많다는 ISTJ형-실제로 내가 다녔던 외국계 회사의 총 임직원 1,600명중 ISTJ는 전체의 75%를 넘었다-, 그와 '상극'이라고 표현하는-상극이라고도 표현하면 안된다-ENFP 나 같은 스타일은, 회사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그 얘기를 어처구니 없게도, 교육 담당자에게 들었다. 이 공간안에 ENFP는 이주혁 씨밖에 없는데, 아마도 여기서 이주혁씨가 가장 먼저 퇴사할 거라고. 참고로 내 팀장님도 ISTJ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상극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퇴사는 ENFP의 성향과는 무관하게 결정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또라이'라고 불렀다는 소리도 들었다. 우리회사에 별로 없는 사람, 특이한 애, 뭐 그런 식.


심지어 나름 깨어있다던, 사고방식이 국내 대기업들보다는 유연하다고 '여겨지는' 외국계 회사를 다녔던 나에게도 그런 꼬리표가 붙었는데, MBTI의 이런 특성도 모르고 청소년들이, 혹은 본질이 뭔지,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했다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도 못한채, "나는 ISTJ니까 규율대로, 스케줄대로 근무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일해야지. 나는 사람만나는게 어려운 내향적인 사람이니까 인간 관계를 줄여야지." 이렇게 판단하는 건 대단한 오판이자,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검사 중 한 가지만 믿고 나를 규정지어 버리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심리학계, 정신분석학계에서도 설왕설래가 많은 검사법이기도 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것으로 나를 드러내는 세상 속에서, MBTI로 서로를 규정하고, 재단하고, 상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미삼아 테스트를 해보는 건 -물론 꽤 신기하고 무척 재미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자신을 알아가는게 원래 신기한 일이다- 자유겠지만, 그걸로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는 어떤 사람이야, 우리 가족은 나랑 안 맞아. 쟤랑은 이래서 싸워. 이런 편협한 시각을 갖는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기준'이 아니라 '특질'일 뿐이다. I가 좋은 것도, E가 더 좋은 것도 아니다. N이 촉이 좋고, S가 사실에 입각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T가 논쟁을 즐기고, F가 울보인 것도 아니다. P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식을 중요시 여기고, J가 판단을 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나는 이게 조금 더 내 행동과 마음에 편한 성향이구나, 그렇게 알고 지나가면 끝이다. 이걸 이해 못하면, 점수가 극단적으로 많이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나도 나를 모르겠다'라고 단념해 버린다. "애매하게 중간이 나왔다"면서. 16가지 유형 중 1등이 있고 꼴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시험도 아니다. 남과 비교해 특정항목에서 더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개성이 뚜렷하고 좋은 면을 가졌다고 볼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테스트 결과 중, 어떤 특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억지로 바꾸려 들어서도 안 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나다.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 4가지 혈액형으로 성격을 진단하는 것, 12가지 별자리, 12가지 동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모두 적절하지 못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MBTI를 토대로 1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간신히 나눴다 해도 모두 같은 사람일까. 심지어 같은 유형은 모두 같은 직업을 가져야 할까. 나와 잘 맞는 특질을 가진 배우자나 연인을 만나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까.


정답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시피,


NOPE.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깊고 심오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남들이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것도 싫은데, 본인을 규정 지어주기 바라며 티셔츠 살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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