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손가락도 좀 쓰시면 어떨까요?
정보가 개방되어 있는 21세기에 궁금한 것들을 알아보는 창구는 예전과 달리 무척이나 다양해졌다. 음모이론-나만의 음모이론-에 따르면 공개되면 안 될 것 까지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니까.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반대로 과도한 정보 공개 탓에 피곤할 때가 더 많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하다.
얻고자 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많았다. 누구에게나 모르는 걸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욕구는 꾸준했으니까. 지식인이라는 네이버 서비스는 누구나, 그 어떤 질문을 올려도 '성실히 답함'으로서 포인트를 얻고, 전문가임을 뽐낼 수 있는 그야말로 '정보 장터'를 탄생시켰다. ID만 있다면 누구나 얻고자 하는 것, 알고자 하는 것을 쉽게 묻고, 답변자는 해당 질문에 가장 빠르고 정성스럽게 답변하고 성실 답변으로 채택됨으로 '실적을 쌓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과잉 정보를 쏟아붓는 뉴스로도 모자라 실시간 검색어로 화제가 되는 그 많은 잡다한 지식들, '알게 되면 쓸모없고 신물 나는 잡다한 정보'까지 우리는 여과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가 화제가 될 때마다 2-3시간 안에 쏟아져 나오는 블로그, 유튜브 영상만 봐도 이젠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해당 검색어가 왜 화제가 된 건지를 정리하는 뉴스 기사, 블로그 포스팅의 홍수에 세차게 떠밀려 다니는 세상. 그래서 가끔은 신물이 나온다.
그렇게 정보가 권력이며 영향력인 세상에서, 반대로 정보를 공개하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플루언서'다. 스타일, 여행, 음식, 맛집, IT, 자동차, 외국어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감히 나도 세미 (Semi) 인플루언서라면 인플루언서일 수도 있겠다. 브런치 작가로 말레이시아 정보를 연재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으로 여행 정보를 나누고 있고, 페이스북으로, 유튜브로, 기타 SNS를 총동원하며 나를 드러내고 브랜딩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떤 기묘한 이야기가 생겨났냐면,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의 콘텐츠 생산에 한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묻고자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는게 그 시발점이었다. 자극적이든 아니든, 그게 진짜든 아니든, 상대의 '좋아요'를 받고 관심만 끌 수 있다면 뭐든 다루겠다는 저급한 플랫폼 위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미 고인이 된 특정인의 자살을 정리하고 재정리하고 3차 정리하고, 헤어진 연인들이 대체 왜 헤어졌는지를 정리하고 요약하고 요점까지 포장해 깔끔하게 배달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과히 토악질이 나올 정도다.
정보 제공의 속도와 그 정도가 과열화 되면서 동시에 발 빠르고 자극적인 정보 제공에만 목을 맨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자가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어디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든지, 꼭 가봐야 한다든지, 가성비가 좋은 곳이라든지, 이걸 안 먹으면 여행을 가지 않은 거라든지, 언뜻 보면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권력이 커진 것 같지만, 동시에 정보 수용자, 정보 관찰자의 권력도 강화됐다. 정말 신묘하고 이상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정보는 원래 '대가'를 치르고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학원에 등록해야 수업을 받고, 유료 컨설팅을 받아야 하던 것들, 수임료를 지불해야 가능하던 것들, 뇌물이라도 줘야 알 수 있었던 것들, 상대방에게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할애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던 것들까지도, 이제는 편집되고, 요약되고, 조합되어 공개되면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몇 개의 해시태그 #를 활용하고, 버튼을 몇 번 눌러 검색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의 계정이라면 사람들이 팔로우와 좋아요를 통해 몰려드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서 희한한 점은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게 무너져 버렸다는 거다. 이제 '거래 가능했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정보 제공자에게 있어' 과연 내가 주어야 할 '등가'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굳이 신경 쓰지 않는다.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태반이 된 세상인지라, 굳이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들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손쉽게 뚝딱 얻을 수 있는 것이 정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진입장벽도 없고, 가입이나 회비 제공도 필요 없고, 그저 내가 원하는 단어를 #를 통해 몇 초 스크롤함으로써, 방문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가 바라던 정보를 캡처하고, 공유하고, 복사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은 '좋아요'와 '팔로우', '질문', '댓글'을 내가 정보 제공자에게 등가로 줄 수 있는 어떤 '혜택'이라고 믿게 되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을'로 전환되어 버린 기이한 풍경.
여기서 바로 핑거 프린스, 핑거 프린세스들이 태어났다. 손가락 몇 번이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내 앞에 '갖다 바칠' 사람이 널리고 널린 세상에서 굳이 내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내가 질문을 하면 너는 나에게 답변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가져가니 '서로 좋은 거 아니냐'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남들에게 쉽지 않은 '좋아요'를 너에게 눌러줬으니 너는 내게 정보를 줄 의무가 있는 거 아니냐, 관심을 보여줬으니 감사한 마음을 내가 원하는 정보 제공으로 갚으라고 종용해 대는 사람들. 손가락 왕자, 손가락 공주들의 위대한 탄생이다.
'왜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위치 정보가 없어서 별 의미가 없네요'
'포스팅하신 곳에 가봤는데 맛이 없네요.'
'집을 구해야 하는데 집값이 얼만가요?'
'지금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거기 어딘가요?'
'이거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주말에 여나요?'
'취업 생각 중인데 월급이 얼마나 될지 회사별, 지역별로 정리해 주세요'
'여행 갔다가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한국으로 좀 부쳐주실 수 있나요?'
'부동산을 알아보는 중인데 중개 수수료 얼마일까요?'
'한 달 살기 가는데 돈을 얼마나 가져갈까요?'
'기대하고 가봤는데 솔직히 실망했어요.'
'협업하고 싶은데 만나시죠'
'상담을 받고 싶은데 만나주실 수 있나요?'
'고민이 되는 일이 있는데 시간이 되실까요?'
'제가 다다음주에 말레이시아 놀러 가는데 제가 가는 지역 맛집 리스트도 미리 올려놓으세요'
'쿠알라 룸푸르 5일 놀러 가는데 계획표 좀 주세요'
'호텔 체크인 시간까지 5시간이 남는데 할 게 없어서요. 어디 갈까요?'
'한 달 살기 준비물 뭐 가져갈까요?'
이게 끝일까. 아니다. 더 심한 것도 많고, 이제는 너무 많아 기억도 안나는 것도 많다. 대부분 이름, 목적도 밝히지 않았고, 그 흔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도 없었다. 고민거리가 있다거나 만나고 싶다거나 직접 만나서 여행 가이드를 부탁하고 싶다던 사람들은, 나의 정성 들인 답장 후에 '만나자'라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설마 상대가 '죽었나...'싶을 정도로 연락이 안 된 사람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 자신의 정보나 사진, 계정은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카톡 프로필도 없고, 인스타그램은 비공개, 페이스북은 '손 한번 흔들면' 무슨 대단한 상견례라도 한 걸로 착각하는 걸까. 인스타그램은 본인만 비공개였다가, 답을 얻고 팔로우를 끊어버리곤 한다. 심지어 본인이 먼저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답장을 읽씹 했다. 그들은 나에게 '좋아요'와 '팔로우'를 하사해주신 은혜로운 왕자, 공주님들이었고,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응당 '성의 있는 답장'을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디지털 노예' 같았다.
협업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90%는 '협업'에서 '협'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고, 대부분 자기가 있는 곳으로 나를 불러내어 차 한잔 사지 않고 내가 아는 것들을 줄줄이 풀어내기를 원했다. 내가 올린 사진 속 음식이 얼마인지, 맛집이 지금 열었는지, 주차장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은 정보 습득이 끝나면 좋아요, 구독을 끊었다. 맛집, 카페 리스트에 가보고 '실망이었다'라고 굳이 '안 알랴'줘도 되는 사람들은, 여행이 끝나면 팔로우를 끊었다. 어딜 갈지, 무얼 할지 묻던 사람들은 해결책이 나오면 이제 더 이상 일하지 못하는 노예 부리듯 나를 '참수'했다.
실제로 상담을 받고 대체로 '고마워'한 사람은 없으며, 자기가 물어봐 놓고 고민이 해결되면 '대체 이런 걸 왜 알려주는 거냐'라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선 사업하느냐고'. 자선사업가인지 알아보려고 물어본 거였나. '다다음주에 말레이시아'에 놀러 가는 사람들은 진짜로 말레이시아에 놀러 왔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게 바람처럼 사라졌다. 애초에 이런 이들의 목적은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내놓아라' 밖에 없었다.
한도 끝도 없이 한심한 사람들에 대해 질리는 지점이 이런 지점이라면, 나는 이 디지털 세상, 인플루언서 세상, 작가의 세상, 유튜버의 세상, 인스타 그래머의 세상을 떠나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니까. 하지만 역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제발 이런 핑거 프린스, 핑거 프린세스, 우리 왕자님, 공주님이 '고맙다, 미안하다, 도움이 됐다'라는 단, 세 마디를 '인간적으로' 좀 탑재해 주었으면 간절히 바란다고.
자기가 묻는 게 상대방에게 도움이고, 관심을 보여준 거라고 굳게 믿는 핑프들의 세상은 지독하게 무미건조하다. 그들은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으며, 1분도 감사하지 않으며, 1시간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구지가에서 처럼 내가 지금 이게 필요하니 '내놓으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구워삶아 먹으리.' 곧 죽어도 마이웨이다. 이런 왕자님, 공주님의 공격까지 받으면 골치가 더 아파진다. 와, *** 한테 그거 물어봤는데 답도 없더라 라며 억울해한다. ###에게 질문했는데, 싹수없게 대답하더라고. %%%에게 메시지 보냈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며 싫어요를 누르거나 구독을 중단하거나, 좋아요를 주지 않겠다고 야심 차게 말한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권력인 것처럼. 너에 대한 험담으로 네 이미지를 구겨 버릴 거야 라는 독한 마음. 너는 원래 이런 걸 제공해야 마땅한 사람이고, 연락처까지 발가벗겨져 있는 사람이니까, 이건 네가 선택한 삶인데 감당하기 싫으면 네가 그걸 그만두던가 이 세상에서 꺼져, 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제발, 우리 왕자님, 공주님들도 손가락을 좀 쓰셨으면 좋겠다. 뇌세포를 잠시나마 좀 활성화시켰으면 좋겠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라면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첫째,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서, 둘째, 감사합니다로 끝났으면 좋겠고, 셋째, 저는 이렇게 알아봤는데 이렇게 해도 해결이 어려워요를 덧붙이되, 넷째, 결과에 투덜대지 말고, 다섯째, 받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냥 다짜고짜 '한 달 살기 하는데 뭐 가져갈까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나. 취업을 하겠다면서 어느 지역에 무슨 회사가 있는지, 자기가 갈 수 있는 직장도 알아보지 않고, 경력이 어떤 회사에 맞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직군별, 회사 별로 월급이 얼마인지를 알려달라니? 아니 이런 질문에, 누가 대답을 해줘야 하긴 하는 건가? 나만 쓰레기인가? 정말 혼란스럽다.
내가 올린 질문에 답이 없다고 해서 그 카페 회원들은 냉정한가? 사람 냄새가 없는 카페인가?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두 세줄 글쓰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답을 듣고 감사하다, 고맙다, 귀찮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두드리기가 그렇게 어렵나? 당신에게도 구글, 네이버, 다음이 있다. 나만 VIP로 구글, 네이버, 다음을 유료로 쓰는 것도 아니다.
5박 6일 여행 계획을 대체 왜 남이 당신을 위해 짜줘야 하나? 당신의 계획은 당신이 짜야지 옳다. 그걸 정말 누가 해줬다면 첫째, 고객 유치하는 여행사거나, 둘째, 상위 0.1%도 안 되는 홍익인간이거나, 셋째, 대가 없이도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은-그만큼 당신이 불쌍해 보였다거나-너그러운 사람이거나, 마지막으로 '기적' 혹은 '당신의 평생 남은 운을 다 쓴 정도'의 행운을 선물 받은 것이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가진 게 1밖에 없어도, 당신의 능력 그 1을 발휘해, 제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보고 물어보자. 어디까지도 해봤고, 어느 정도로 노력해봤는데 해결이 안 되었다고 제발 니주 좀 깔자. 본인도 내놓을 것이 없는지를 고민해 보고 묻자. 나도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그 모든 질문에 답변할 에너지도 마음도 없을 때도 많다. 누가 대신 내 일 좀 해줬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단, 나는 그 마음을 손가락으로 실천하지 않는다. 내가 대가를 주고 누군가를 고용하지 않는 이상, 나 대신 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손가락 몇 번 움직여 나에게 그 일을 '떠넘길' 요량이라면, 나의 체력과 시간과, 정신력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라면, 애초에 이 거래가 성립되는 유일한 조건은, 당신이 내 고용주며, 나에게 '보상'이라는 대가를 충분히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만 '손가락으로' 이래라저래라 시킬 수 있는 거다. 원하는 답만 얌체 같이 듣고 나서 끊어버릴 구독, 좋아요, DM, PM 이런 게, 당신의 권력이 아니란 얘기다.
보상을 줄 능력이 없으면 '고맙다, 죄송하다, 감사하다, 도움이 됐다'는 마음이라도 장착하고 물어볼 일이다. 혹시 그럴 마음 자세도 없다면 제발 물어보지 마라. 인스타 스토리 올렸는데 초면인 사람이 인사도 없이 '어딘가요?'라고 DM 보내면, 맑은 날씨에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 후려 맞는 기분이다. 뒤통수 때린 사람에게 '대체 왜 때린 거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잠수까지 타버리면, 당신 때문에 세상에 남아있는 그 수많은 좋은 사람들까지 다 한심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더러운 기분이 들어서, 세상이 싫어져 버릴 지경이니까.
핑프족들이여, 제발 본인 손가락 좀 더 쓰시길 바라 마지않는다.
양반과 노비의 세상도 아니고,
노예 제도가 살아있는 사회도 아닌데,
당신이 유독 왜 나에게 왕자, 공주여야 하는지는
언제 한번 호적, 족보 들고 와서
우리 함께 심도 있게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