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형

읽씹, 안읽씹을 명확한 소통이라고 말하는 비겁한 사람들

by 타인의 청춘

회피형 인간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상처 주기도 싫고 상처 받기도 싫고, 복잡다단한 인간계의 모든 일이 귀찮고 성가셔서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마땅히 의견을 주고받고, 피드백이 필요한 관계에서까지 의견개진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 혼밥, 혼술러 이런 것관 다른 별개의 사람들.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적 관계 형성이나 소셜라이징보다는 혼자만의 취미, 혼자만의 시간, 혼자 즐길 수 있는 휴식 등을 즐기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함께', '같이', '모두'라는 단어들에 지나칠 정도의 강박을 가지는 문화가 있어서, '함께', '같이', '모두'가 아닐 때 무언가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이제껏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요즘은 자아, 자존감,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제대로 존중'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와 많이 엇갈린 기성세대는 '대체 요즘 애들은 진짜 모를 일이다'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땐 당연히 혼자 있어도 되고, 홀로 즐길 것을 즐겨도 되고, 자신만의 취미를 갖는 것 모두 좋은 좋다. 응원하고 지지한다. 게다가 한국 사회처럼 '지치고 힘든' 일이 많은 환경에서는 더더욱 어디론가 숨고 싶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회피형 인간'은 흔히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 혹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의 긍정적인 정의로써의 범주를 벗어난다.


'도망쳐라 시리즈'에서 내가 말하는 회피형 인간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


본인이 필요할 때만 존재하다 갑자기 사라진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읽씹'이 상대방에게 '명확한 답'이라 생각한다.

'안읽씹'은 더욱 강력한 피드백이라 착각한다.

본인이 먼저 제안한 일에서 이유 없이 도망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극단적인 이기심'을 드러낸다. 쉽게 숨길 수 없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언젠가 뜬금없이 상대방에게 당신이 '선을 넘었다'라고 정의해 버린다.

충돌이나 대립을 마주하기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남에게 상처 주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상처 받는 것도 싫기 때문이라고 자위한다.


읽어보면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이상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극단적으로 '철벽'을 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타인의 애정과 관심'이 자신의 인생에 굳이 중요하지 않고, 때론 필요 없다고도 말하기까지 하지만, 알고 보면 역설적으로 이들은 대부분 '애정결핍'을 내재한 인간형이기도 하다.


호의나 애정을 보였다가 '거절' 당하는 게 끔찍하게 싫고, 그걸 견뎌낼 용기가 없으니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남들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싫다. 남들이 그런 호의를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싫다. 그런 과정을 통해 충돌이나 대립을 하는 것도 싫다. '나도 상처 받기 싫고, 당신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라는 그럴싸한 변명을 하지만, 이는 인간적 매너를 지키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가 악한 사람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아기적 성향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굳이 뭔갈 얘기해서 욕먹기 싫고, 둘째, 얘기 안 하자니 그걸 고민하는 것조차도 귀찮고 성가시고, 셋째, 나는 나로도 충분하고, 나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성가시고 귀찮은 문제를 겪는 건 나에게 부당해, 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거나, 결론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작든 크든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A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커뮤니티에서 돋보이는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약속에도 쉽게 '그러자', '그러마'라고 수락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까지 사교적이고 친절할 수 있지 궁금해했고, 그녀의 상냥함과 친절함, 긍정성에 반해 모두들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친절함은 그녀가 처했던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었을 뿐이었고, 그녀의 상황이 달라지자마자, 그녀는 모든 사람의 연락을 차단하고, 모두에게서 멀어졌다. 친절할 때의 그녀는 '슈퍼을'이었지만, 냉정할 때의 그녀는 '슈퍼갑'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새에 그녀로부터 '카톡 차단, 인스타 차단, 페북 언팔로우'를 당했고, 그녀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거나 여전히 '갑'인 사람들만 친구로 남겨두고,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언제나 자랑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절대 페이스북 좋아요 안 눌러. 그럼 어떤 걸 내가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잖아."

"인스타 좋아요 절대 안 눌러. 스토리도 절대 안 봐. 내가 자기 사진을 본걸 아는 게 너무 짜증 나."

"인스타 스토리를 왜 봐? 그런 건 자기 존재를 알리고 싶은 멍청한 사람들이나 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본질이 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녀는 소셜미디어 속 인간관계를 칼 같이 자르는 걸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명확한 의지의 표현'이자 '네가 필요 없다'는 뜻을 피력하는 것이고 말했고, 자신이 '우월해 보일 수 있는' 자랑할 만한 포스팅만 남기고, 팔로우를 끊은 모든 친구의 사진을 하나 하나 지워나갔다.


B라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언제나 주위 사람에게 친절하고 애정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그저 그가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고, 기대고 싶을 때 보여주는 '애착 행동'이나 '결핍 보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묻지도 않는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걸 좋아하고, 모임이나 식사에 왜 '자기를 왜 껴주지 않았냐'라고 물으며 무척 삐친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먼저 술을 사달라, 밥을 사달라며 친한적 약속을 하고 애정을 보였지만, 자신이 부탁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그랬고, 그마저도 만나기 전날까지 조금이라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잠들었다'든지, '아팠다'든지, '오늘은 나가기가 귀찮다'라며 상대방을 바람 맞혔다.


왜 그런 행동을 보이냐는 상대에게 "읽씹 했으면 안 간다는 얘기 아니야? 그걸 꼭 말로 해야 해?"라거나, '안읽씹'이라 내용도 못 봤는데 약속을 어떻게 나가냐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저 남들에게 상처주기 싫을 뿐이라며, '읽씹'이나 '안읽씹'처럼 명확한 의사 표현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내가 상처 받기 싫은 만큼 남에게 매너를 지키고 싶다'라고 했지만, 상대방은 언제나 그의 어이없는 '읽씹'과 '안읽씹'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그와의 약속은 언제나 펑크가 나거나 미뤄지곤 했고, 그는 상대방이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시간 맞춰 나와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렸지만, 그순간 외의 어떤 인간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주변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언젠가 모두를 욕하거나 버릴 거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피'는 기본적으로 '비겁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피해야 할 사람은 당연히 피해야 하는 게 맞다. '회피형 인간'이라고 낙인 찍히는 게 싫어서 '모두를 억지로 만나는 것만큼' 더욱 부자연스럽고 거북한 것도 없다. 반드시, 상대는 언젠가 이를 느끼게 된다. 영문도 몰랐던 상대에겐, 세상에 그렇게 큰 배신감도 없다.


사기꾼은 피해야 맞고, 나쁜 사람은 차단해야 맞다. 이럴 때 쓰는 '회피'만큼 스마트한 방법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분명 필요로 했고, 자기에게 소중하기까지 했고, 자신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반가워했던 사람들을 '읽씹', '안읽씹', '잠수'로 대하는 것은 비겁하고 겁쟁이 같은 일이다. 오히려 인간관계란, 서로 사랑, 상처, 미움 증오, 우정, 관심 등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주고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


적절한 거절, 반대 의사 표시, 거부, 다른 의견을 교환하는 것 등은 인생에 꼭 필요한 일이자,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이게 '없길' 소망하면서 모든 걸 '회피'해 버리는 건 인생의 좋은 반만 택하고, 나머지 반은 상대에게 떠 넘기면서 상대가 불구덩이에 들어가건, 속이 타들어가건, 하얗게 불타오르건 상관없이 '내 일은 이제 끝났어'라며 손털어 버리고 자리를 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말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확한 거절', '명확한 소통'이 활발히 일어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그게 '읽씹', '안읽씹'보다 더욱 확실하고, 내게 좋은 사람들을 내 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거절하고, 반대하더라도, '아, 네 의견은 그렇구나'라고 조율할 줄 아는 관계,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가 오래도록 건강하고, 건전한 관계로 남는다.




상대방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절대로 남기지 않으며, 좋아요 함부로 남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던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며 자신에게 불필요해진 모두를 '언팔'로 끊어내고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척하는 그녀는, 과연 'SNS'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을까. 애초에 사람들과 만나는 '소셜 네트워킹' 자리에서 '무한 긍정, 배려의 왕, 친선대사'같은 모습으로 다가가지 말지. 그럼 '사람을 끊어내는 걸'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의사결정이라고 자위하며 '언팔'할 일도 없을 텐데. 그래 놓고 사람들이 '자신을 스토킹'하는 것 같다는 망상을 떠들고 다니는 꼴은 우습다 못해 비참하다.




회피형 인간형에게서 도망쳐라. 이런 사람들과는 애초에 건강하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매우 힘들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 중에 진짜 당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사람, 당신을 묵묵히 지지하고, 때론 역경을 함께 거치더라도 그 자리에 있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관계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시간과 신뢰를 쌓아가라. 진짜 오래갈 사람은 몇 안된다. 100번의 술자리를 나가봤자, 진짜 유익한 이야기를 나눈 술자리가 몇이었는지 이미 당신은 잘 알고 있지 않나.


만나자마자 불타오르며 사랑한다 해놓고, 다음날 잠수 타 버리는 사람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로, 입맞춤으로, 눈맞춤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은, 상대방이 가장 유약한 순간에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인생의 가장 '극단적' 순간이다. 그렇게 오늘 '인생의 모든 용기를 다 쓴 것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다음날 '그 모든 용기가 불타 없어진 사람'처럼 굴 수 있을까. 그렇게 비겁하게 숨어버릴 수 있을까.


'회피형 인간'은 스마트폰의 '읽씹', '안읽씹' 기능이 없었으면 애초에 인간관계조차 시작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소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다. 진지한 관계로 나아가길 원치 않는 사람들이다. 그냥 조금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자마자 '당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게 맘편한 사람들이다. 당신과의 약속을 자신만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통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용기를 내서 의사 표현을 해'라고 설득해 가며,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재활'시킬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면, 도망쳐라. 그 시간에 당신의 인생 문제에 더욱 골똘히 집중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언제나 말했듯, 인간은 다른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본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읽씹' 또는 '안읽씹'으로 소통한 적 있는가? 혹시 누군가 당신에게 그러고 있는가? 그럼 당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망쳐도 괜찮다. 도망쳐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