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Mar 03. 2018

4. 사소함의 끝은 위대하다

자신감을 되찾는 아주 사소한 약속들

사춘기 시절에 내가 무척 의지가 약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마치 좌우명이 '작심삼일'인 사람처럼. 애써 세운 신년 계획은 차치하고서라도 방학 숙제도 제 날짜에 제대로 못하고 일기는 또 얼마나 밀렸는지. 기억도 안나는 밀린 일기를 쓰느라, 형편없는 그림에다 마음에도 없는 시를 쓰기도 했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혁아, 혹시 일기를 정말 쓰고 싶지 않은 날엔, 그냥 쓰지 마라'라고 적어준 기억도 난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온갖 자격증을 따려고 도전했다가 날린 돈만 거의 만기적금이며, 영어원서 읽기로 사들인 책값에, 내 몸안에 숨겨져 있을거라 확신하는 식스팩을 죽기 전에 보겠다며 헬스클럽에 바친 돈만 차 몇대다. '힙'하고 '핫'하다며 굳이 강남 한복판에 9개월을 끊어뒀던 헬스클럽은 '딱 두번' 가고 말아서, 개인사물함 속 물품을 폐기했다는 문자를 받았었다. 말 다했다.


그 숱하디 숱한(?) 노력의 결과들로, 나는 피아노를 배웠지만 체르니 30번에 5장을 채 넘기지 못했고, 합기도와 태권도를 빨간띠까지만 따고 접었으며, 통역사가 되고싶어 다닌 학원을 2개월 뒤에 그만 두었다.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공부하다 접고, 웬 바람이 들어 바이올린을 사서 한달 배우다, 이제 바이올린은 멋드러진 인테리어 소품이 됐다. 뭐, 그래, 이런 건 무언가를 시도라도 했으니, '에피소드' 정도로 자위하며 묻어두자.


해마다 새로 산 다이어리는 단 한번도 끝까지 써본 적이 없다. 마치 이것만 있다면 나의 한해는 완벽하고 아름다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그 충만한 느낌. 그렇게 쓰다만 다이어리가 족히 30개는 된다. 시험기간은 말해 무엇하나. 나는 무슨 강박인지 몰라도 항상 시험이 되기 정확히 5주전부터 시험대비 계획표를 짰었는데, 그야말로 너무도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표여서, 그냥 그 계획표를 몇분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미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온 것 같은 안정감에 빠져들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살다보니 정말 중요한 뭔가 하나가 빠진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자신감'.


사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땐 공부를 곧잘 했었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자면 '정말' 잘했다. 초등학교 6년간 전교 1등, 중학교 3년간 전교 1등(아닌 적도 한두번 있지만)이었으니까. 그때 사실 내게 공부란 이런 것이었다. 학생이니까 마땅히 '잘해야 되는 것'.


내 고민이나 의지 없이 왜 잘해야 되는지, 왜 잘하고 싶은지 그런 건 없었고, 다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며, 그런 공부를 할거라면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고, 열심히 했다면 잘해야 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나쁘면 실패한 것이다' 정도로 고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름끼치지만. 그런데,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를 썩 잘했고, 전과목에서 적으면 서너개, 많아도 열몇개를 틀리면서 '올수'를 맞았던 나는, 응당 이런 결과에서라도 오는 자신감을 가졌어야 했는데 왜 자신감이 없다고 느꼈었을까?


사실은 이랬다. 그저 노력한 모습과 과정을 칭찬 받았으면 됐었는데, 결과가 좋아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니, 언젠가부터 나는 '결과가 안 좋으면 안되는' 강박에 사로잡혀 버렸다. '실패하면 안되는 사람', '성적이 나쁘면 안되는 사람', '반장, 부반장, 회장을 안하면 안되는 사람', '경시대회 나가서 상 못 받으면 안되는 사람', 뭐 이런 것들에 목매고 나를 알게 모르게 들들 볶았던 것 같다.


결국, 이런 '허상의 나'를 깨뜨릴 수가 없으니, 뭔가 실패가 예상되는 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발을 빼고 싶어지고, 방어기제로 나를 보호할 변명부터 찾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 정말 세상에 이렇게 보잘것 없고 우스운 타이틀이 또 있을까. 이거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패를 마주하는 것, 마땅한 끝맺음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일들에 오들오들 떨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보같게도 중도에 그만 두어 버리는게 더 마음이 편했던 거다.  


모오오옷나아아안노오오오옴.


왜 그랬을까? 첫째, 자신에 대한 기준이 너무 한없이 높았고, 둘째, 일을 시작하며 먼저 화려한 결만만 꿈꿨으며, 셋째, 결과에서 오는 타인의 인정과 만족감에 매달렸고, 넷째, 항상 이상적인 꿈만 늘어놓으며 실행을 뒤로 미루었다. 못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안했다고 말하는게 '안락함의 동굴'에 쉽게 숨는 방법이니까. 그게 결국 내 마음속의 단단한 자신감이라는 돌멩이를 가루내고 있었다는 건 몰랐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결정하고, 고민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즐기며 한게 아니라, '말 잘 듣는 학생, 공부 잘하는 아이, 문제 안 만드는 아들, 모범적인 나', 이런 프레임에 나를 가두고, 별로 즐겁지 않다고 생각한 공부를 '강박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학교성적'은 좋았을지 모르나, '행복성적'은 언제나 '수'가 아니라 '가'였던 것 같다.


깊은 고민 끝에 알게 된 두 가지 문제는 첫째, '내가 나를 믿지 못하도록 행동했다'는 것, 그리고 둘째, '내가 남의 기준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사소한 습관과 행동 때문에,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네댓줄 일기도 제대로 써본적이 없고, 학원도 끝까지 다녀본적도 없고, 풀다 버린 참고서가 수십권이니, 당최 '내가 뭘 끝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거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지키지 못할' 거창한 계획을 세워놓으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세상 귀찮아'졌던거다. 피아노를 치면서 그냥 음악을 즐기면 되는데, '잘 친다' 소리 정도 들으려면 체르니 40번 이상까지는 쳐야 된다고 생각하니 매일 학원에 가는게 고역이었다.


꾸준히 근육을 찢어야 하는 워크아웃(Work out)의 과정은 없고,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몸매만 상상하니, '이래 가지고 언제 대체 그런 몸 만드나' 싶어 안 하게 되고, 바이올린으로 모짜르트 정도는 연주하고 싶은데, 몇개월을 부단히 연습해야 동요 한곡 연주할까 말까하니, 사자마자 재미가 없어져 버리는 거였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어느것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사람'이란 자기낙인을 찍은 것이다. 그 결과로 '자신감' 없는 내가 되었던 거다. 너무 대단한 목표와의 괴리가 만들어낸 예고된 '좌절'과 실망감.


둘째로, '남의 기준'으로 살다보니, 온전한 나만의 기쁨, 의사 선택의 자유, 노력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의 풍요로움은 온데간데 없고, '공부 잘하는 나', '태권도 유단자인 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 등, 남들의 시선을 통한 '나'를 만들어 내고, 결국 그 이상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순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나'로, 중도에 그만두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기만 하면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냥 안한거야'라고 과정과 결과를 '순삭'해 버리는 비겁한 나. 최소한 남들에게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거라'고 얘기하진 않아야, 여전히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이게 내가 자신감이 없어진 근원이었다. 정말 오랜 고민끝에 이 생각을 하고 나서 적잖이 놀랐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허점을 내 손으로 꺼내어 만천하에 공개하고는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자신감을 되찾을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작은 승리 'Small Wins'를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왜 못하는질 생각해 보니, 항상 목표가 너무 원대하고, 완벽했다. 애초부터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때, 생소한 영단어를 매일 외우는 일은 정말 하기 싫고 지루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새로운 영어 단어를 500개 외우자 치면 너무 숨이 막혔다. 그래서 500개를 7일로 나누고, 월요일부터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숫자를 할당해서 나누었다. 월요일은 70개, 화요일은 71개, 수요일은 72개.... 그러면 '어제보다 딱 하나만 더 외우자'라는 생각에 부담이 덜했다. 그리고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쯤에는 월요일부터 외웠던 단어를 다시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더니 복습이 되면서, 기억이 더 오래가더라.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선 푸시업(Push-up), 싯업(Sit-up)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지만, 그만큼 지겨운 자신과의 싸움도 없다. 푸시업을 하루에 30개도 안했던 내가 몸짱이 되겠다는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매일 200개라는 말도 안되는 목표를 세우고 나니, 이틀인가 간신히 하고 나서 근육통이 와 나머지 363일을 그냥 흘려 보냈다. 고통을 느끼고 나니까 다시 하기도 겁나더라. 목표가 너무 높아서 애초에 습관을 만드는 길 위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근육통을 얻고 나서는 즐거움이 사라져 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낸 거다.


그래서 이 또한 작은 목표를 세웠다. 오늘은 30개, 내일은 31개. 운동량이 너무 적다 싶기도 하면, 하루를 여러번으로 쪼개고, 목표를 100개로 낮췄다. 아침에 30개, 오후에 40개, 밤에 30개를 하면 할 수 있을거 같았다. 어제보다 하나만 더, 내일은 하나를 더해 두개만 더. 이렇게 정하니까 할 수 있겠더라. 이게 나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했더니,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몸도 좋아지더라.


일기도 그렇다. 누가 볼 것도 아닌 나만의 하루 정리를 굳이 거창하게 쓰지 말고, 적게, 간단히 쓰는 걸로 바꾸었다. 별로 쓸 말이 없으면 하루 한줄, 두줄도 괜찮았다. 요즘 앱으로 얘기하자면 '데이그램'정도 되겠다. 혹 진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고 특별한 일이 없었던 날은, 마음속으로 하루를 잘 정리해 보는 것으로 끝. 다만, 매일 그렇게 하루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자, 라는 작은 원칙만 세워두고 계속 해나가는 노력을 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지고, 순간 순간 '글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더라. 거품같은 목표를 걷어내고 온전히 내 선택에 따라 정한 작은 원칙을 지켜주었더니, 집중이 되고, 즐거움이 생기고, 그런 내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자신감이 생기는 거라.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한번에 다 읽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날때마다 10페이지, 20페이지씩 읽어보았더니, 읽을 때마다 지적, 심리적 환기도 되고, 챕터 하나 하나가 마치 새로운 책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카페에서든, 지하철에서든, 침대 위에서든, 시간이 날때마다 몇장씩만 읽고, 전에 읽었던 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으면 먼저 읽었던 부분의 마지막 한두장을 읽어주고 이어나가니, 연결성도 생기고 참  좋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나는 작년에만 근 150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과의 '사소한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꼭 지키는 것을 습관으로 만드는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굳이 남한테 말할 필요도 없는 혼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우습게 보지 않을까 신경쓸 필요도 없다.


다만, 아주 작은 약속일지라도 약속은 약속이니, 지킬 때는 신중하고 집중해서 제대로 해야 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진중'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작으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열정적으로, 집중해서, 부담없이 지키면 그만이다.


이렇게 작은 걸 무수히 반복하는 루틴으로 만들어내고 1년 정도가 지나니까, 신기하게도 나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매번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빨리,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지 않으니 마음까지 편해지더라.


누구나 근육 운동, 달리기 혹은 등산을 해보면 안다. 푸시업을 한번에 100개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다. 40개쯤 되면 벌써부터 더 이상 짜낼 힘도 없는 것 같고, 이상하게 근육에 힘도 안 들어가고 더 이상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힘들어진다. 그런데 그냥 100개를 잘게 나누어 한다고 하면서, 순간에 집중하고 과정을 즐기면, 힘은 들지언정 그만 두지는 않게 된다. 50개를 두번에 나눠 하는 거 보다, 10개를 10번에 나누어 하면 부담이 더 적어져 도전이 쉬워진다. 성인 남자가 푸시업 10개를 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그 사소한 작은 도전을 10번 가뿐하게 하면, 즐겁게 100개의 푸시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10km 달리기에 나가보면, 처음 2km정도까지는 누구나 힘이 넘쳐난다. 그런데 점점 무릎이 아파오고 땀이 줄줄 흐르고 목이 말라가면 '아, 대체 언제 남은 8km를 다 뛰나' 싶다. 그런데 ' 1km정도는 뛸 수 있잖아?'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뒤, 2km가 됐을때, '아, 5분의 1을 잘  지났구나. 딱 1km만 더 뛰면, 벌써 3분의 1이나 뛴 거네?'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머릿속의 10km는 참으로 먼거리지만, 그에 비하면 내 발 앞의 100m, 1km는 사소하다. 그 사소한 거리들을  조금씩 밟아 나가면서 어느새 5km 반환점을 찍고 나면, '와, 이제  뛴 거리보다 남아 있는 거리가 더 적네?'라는 생각이 들고, 나도 모르게 발이 가벼워진다.


등산은 또 어떤가. 시작 전에 3시간 걸리는 등반 코스를 보고 있으면 '괜히 무리하는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중간에 약수터도 들르고,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다음 정자까지만, 다음 사찰까지만, 다음 언덕까지만.. 이런식으로 순간에 집중하면서, 사소한 발걸음을 채워나가면, 어느샌가 정상에 올라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시간 뒤에 볼 정상만 생각하지 말고, 발밑에 바스락하며 밟히는 나뭇잎, 수백 혹은 수천년을 거기 있었을 돌멩이, 뿌리가 널리 뻗어 마치 거대한 세상을 닮아 있는것 같은 나무 둥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의 부서짐, 나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기대고 매만져 미끈해진 나뭇가지, 이런 것들을 냄새 맡고, 만지고, 눈에 담고 만끽하면서 그냥 '그 찰나의 순간'을 오르면 된다. 앞으로의 3시간을 더 오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10초, 1분을 오르면, 이내 3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으로 꽉 채워진다.


자신을 믿는 감정. 그게 말 그대로 자신감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켜나가면 자신감이 붙는다. 너무 크거나 완벽한 목표를 세우지 마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나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한 '뜸들임'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 누구도 하루 아침에 높이뛰기 선수가 될 수 없고,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될 수 없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도 없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내일 당장 통역사가 될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목표는 달성할 수도 세워서도 안된다.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에도 등장하는 존 플라벨의 '메타인지'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자. 내가 할수 있는게 어디까지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시작은 초라해도 된다. 당신은 아직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만, 내가 당장,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정했다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꼭 지켜라. 그 사소한 약속을 100번만 잘 지켜내면, 100배의 자신감이 생긴다.


당장 시작하라. 아주 작은것이니까 당장 시간을 내서도 할 수 있다. 지킬 수도 없는 큰 목표를 두고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지킬 수 있는 수준의 목표를 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깨지 마라. 그것을 하루 반복하라. 이틀 반복하라. 3일 반복하라. 그걸 두번 더 반복하라. 세번 더 반복하라. 그렇게 반복해 나가며 자신감을 채워가라. 한번 했고, 두번 했던 나이니, 세번도, 네번도 할 수 있다. 당신은 원래, 할 수 있다.


내일 에베레스트를 오른다고 하면 눈앞이 깜깜하다. 다만 지금 슈퍼에 가면서 계단을 반층 오르는 것은 피식 웃으면서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소한 그 무엇이라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걸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인생이라는 엔진에 '제대로 시동을 걸 수 있는' 멋진 사람이란 방증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렇듯 '사소한 승리'의 무한한 반복을 통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오늘도 '당신의 작은 승리'를 기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3. 30대 후반의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