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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ul 25. 2020

당신은 숨을 쉬고 있습니까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상의 의식

공황장애를 오래 앓아온 나는 가끔씩 하던 일을 멈추고, 여러 생각을 뒤로 무른 뒤 가만히 호흡을 들여다본다. 혹시 나는 숨을 쉬고 있는가, 천천히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이렇게 물을 사람도 많겠지만, 이건 내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의식'이다. 




숨통이 트인다. 숨이 막힌다. 숨을 못 쉬겠다. 숨이 끊어지다. 숨을 불어넣다. 숨 좀 쉬겠다. 한숨 돌렸다. 숨 가쁘게 달리다. 숨이 벅차오르다. 

모두 숨, 즉 호흡과 긴밀하게 연관된 표현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써 보았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은유적이든 비유적이든, 모두 생존이나 생명력, 여유, 마음가짐, 정신 상태와 관련이 있는 표현들이다. 


허나 기본적으로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사람들은 있을까. 과연 오늘 나는 몇번이나 숨을 쉬었나. 




4년 전 처음 시작해 나름 꾸준히 하고 있는 요가 수련 중엔 숨을 참지 않아야 한다. 숨을 들이쉬고 마시는 과정이 나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말끔해진 느낌이 드는 달리기도 그렇다. 사나흘에 한 번씩 10km를 뛰며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숨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고요해진다. 스쿠버 다이빙은 또 어떤가. 물속에서 끊임없이 숨 쉬는 일은 생명과 직결된 일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호흡을 멈추지 말 것.


스쿠버 다이빙 오픈 워터 다이버 트레이닝 첫 시간에 들을 수 있는 기본 원칙이다. 


내가 과연 제대로 숨을 쉬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던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살아있음은 당연한 것이고, 나는 젊고, 건강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순간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뜀박질 후에도 기록이 중요했던 시절. 나아감과 멈춤, 들어옴과 나감, 균형과 순환이 간절하지 않던, 욕심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날들. 헐떡이고 있었지만 실은 꽤나 버거웠음을 고백할 줄 몰랐던 순간들. 




코로나 19의 시대가 어느덧 6개월에 접어들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 


찐득한 여름밤 마스크를 쓰고 언덕과 계단을 올라 집으로 가는 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뒤섞인 신도림역 계단 한가운데. 놓치면 안 되는 버스를 타려고 잰걸음으로 버스에 올라선 순간. 코와 입술에 미끈하게 들러붙은 마스크를 몇 초만 시원하게 걷어내 볼까 고민하는 찰나, 나는 과호흡과 공황을 생각한다. 


고개를 돌려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흡사 지명수배자처럼 얼굴을 가린 채 두어 번 호흡을 바투 가다듬는 생명의 시간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며 내가 좋아라 하는 취미 활동은 모두 숨쉬기와 연관이 있다. 요가도, 달리기도, 스쿠버 다이빙도 내가 '숨을 쉰다'라고 느끼게 해준다. 들숨과 날숨이 규칙적으로 오가며, 어떤 자세와 동작에서 특히 힘이 드는지, 숨이 가쁜 이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오직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위로, 스쿠버 다이빙. 인생의 가장 괴로웠던 순간 알게 된 다이빙은 그래서 내게 가장 특별한 취미 중 하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숨을 쉬지 않았구나. 

호흡, 숨은 단순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화학작용 이상의 어떤 것이다.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절대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 들어오고 나가는 균형이 필수적인 것. 서너 번만 잘못 쉬어도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것. 잘못된 것을 들이마시면 별안간 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것. 


몸과 마음에 호흡이 중요하듯, 인생의 모든 일에도 호흡이란게 있다. 호흡이 맞는 사람, 호흡을 맞춰볼 기회, 호흡을 조절하는 순간, 호흡을 같이 하는 동료,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하는 수많은 선택들.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던 작은 경험이 나를 살렸다. 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호흡을 의식적으로 마주해 본 첫 경험이었다. 그 숨이, 그 쉼이 나에게 건강과 휴식, 평온을 선물했다. 


숨이 가쁘다. 숨통이 트인다. 숨이 막힌다. 숨을 못 쉬겠다. 숨이 끊어지다. 숨을 불어넣다. 숨 좀 쉬겠다. 한숨 돌렸다. 숨이 벅차오르다. 


숨이 담긴 이 모든 표현은 결국 생명, 순환, 조화, 탄생, 죽음과 연결된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동안 내가 진짜 숨을 쉬고 있는지 들여다 본 적 있는가. 숨 막히게 괴로운 순간이 오면 나에게 어떤 쉼을 허락해야 할지 고민해 본 적 있는가. 빛바랜 나의 열정에 숨을 불어넣으려면 어떤 휴식이 필요한지 생각해 봤는가. 


쉼 없이 헐떡이며 살아온 시간에 느리고 긴 호흡을 선물해 줘야 한다는 것도,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생각을 비우고 호흡을 의식하며 속도와 방향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내 마음의 조급함에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제. 나를 알던 사람들이 쉽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느릿하게 지내는 시간들이 꽤 많아졌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지금 숨을 쉬나 확인해 본다. 행복한 바보처럼. 




오늘 하루, 아무 생각 없이 편안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본 적이 있는가. 단 1분이라도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는가. 

심호흡을 해보자. 길게, 천천히. 놀랍도록 고요한 편안함이 찾아온다. 두 귀로 내 숨소리를 들어보자. 나는 그렇게 숨을 쉬는 존재다. 단 한순간도 끊임없이 변하며 시시각각 새롭게 태어나는 어떤 것이다. 흐름이다. 살아있다. 생명이다. 기적이다. 


당신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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