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전히 살만하다는 것
누구나 자신만의 작거나 큰 우주가 있다. 보고 듣고 겪는 하루의 모든 일들이, 우연인듯 필연인듯 얽히고 섥혀, 나만의 이야기가 끝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우주.
그 우주 속에는 황량한 길 위에서 신문을 줍는 할머니도 있고, 출근길 다른 운전자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아저씨도 있고, 이름 모를 사람에게 미소를 나누어 주는 어느 작은 식당의 주인 부부도 있다.
시끌벅적한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밀치고 간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기도 하고, 내 등 뒤에서 몹쓸 말을 서슴치 않은 그 남자 때문에 잠이 안 오기도 하고, 엄마 손을 잡고 가다 나를 보고 살짝 윙크해 준 그 아이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럴 때 나의 우주는 잠시동안만이라도 영롱하게 빛나는 듯 하다.
빛나는 우주를 걷게 된 날이 행운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영롱했던 더 많은 순간들을 모르고 지나쳐오기만 한 나의 지친 삶이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들이다. 다만 내가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우주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 뿐, 나의 작지만 큰 우주는 오늘도 생성되고 소멸되길 반복한다.
다만, '이제 세상을 조금 알것 같다'고 생각한 서른 후반의 나이에, 어느 한 부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또 다른 한 부분이 굳어지기도 하는 걸 깨닫게 될 때면, 그 우주가 가끔 내가 걷잡을 수 없는 크기로 팽창해 언젠가 터져 버리지 않을까, 내가 그 우주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 길 한복판에서 엄마손을 놓친 아이처럼 덧없이 황망해지진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한다. 이 나이에, 어쩔 수 없는 나의 작은 우주 때문에, 언젠가 나도 모르게 와르르 울음이 터져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참으로 내밀한 고백이다. 인생은, 그래서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더 무섭고 더 모르겠다.
이제는 나침반을 던져버리리라 생각한 나이가 되면서도 인생이 어려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러고 보면 참 치사한 일인데 그랬으면 좋겠는 밤이다. 너 나 할 것없이 모두가 헤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만의 위로라면, 오늘 밤쯤은 그 위로속에 갇히는게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작은 마음. 내일은 커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마음. 그냥 그런게 결국 누구나의 마음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아직도 내 우주는 작디 작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달의 뒷편을 보고 싶다. 누구도 보지 못한 그 어떤 뒷편.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우리네 지친 일상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날 위해 언제고 미소를 내어주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 모르는 나의 등뒤에 여전히 영롱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갔음 한다.
내일 나의 작은 우주는 오늘보다 몇번쯤 더 영롱했던 찰나들로 켜켜이 쌓여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