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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Oct 13. 2017

비가 싫어서

치기어린 호불호에 대해

나는 비가 참 싫다. 이번 여름엔 비도 제대로 안 내려보고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가 찾아왔었건만 얼굴도 제대로 안보여주고 숨어버린 비도 싫을 정도로 비가 싫다.


운동화를 신으면 쩍쩍거리다가 곧 시한폭탄처럼 양말안에서 터져버리는 그 질척함. 슬리퍼를 신으면 흙모래를 잔뜩 끼얹고 끈끈해져버리는 그 눅눅함. 구름으로 가려진 그늘 아래에서 나를 감싸는 우울함과 냄새까지.


누군가 말하길 비오는 거 좋아하면 우울증 있는 거라던데 - 그래서 "비 냄새"라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으레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생각나던데 - 내 맘대로 어찌할 수 없는 비가, 내 우울함의 근원이 될수 있다는 옅은 가능성마저도 싫다. 그저 우산 밑으로 '오지마'라고 속삭이며 숨어버릴밖에.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 비도 누군가는 쌍수들어 반가워할텐데, 나는 비가 오면 우울해지지만, 내내 우울했던 누군가는 비를 보며 감상에 젖을 수도 있을텐데.


나는 비가 오면 젖어 버린다지만, 쩍쩍 갈렸던 누군가는 한껏 폭신해질 수도 있을텐데. 비가 오면 난 신경질이 나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삶이 팍팍해질 누군가도 있을텐데. 오죽하면 대답없는 하늘에 기우제라도 지낼까.


나는 과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무지 싫어하는 것만으로, 나에게 혹은 너에게 어떤 '호'와 '불호'가 있음으로 그대들을 비난하고, 싫어할 자격이 있는 있는 존재인가.


세상 어딘가엔 그런 나를 미워하고, 그런 내가 싫고, 이런 내가 맘에 들지 않을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서로에게 겨눈 바짝 세운 날들을 무디게 끌어안고, 좀 더 뭉그렁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 우리는, 70억 중에 하나밖에 안되는 나는, 내가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도 비를 좋아하지 않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치기어린 존재가 되곤 하니까.


마치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빙글빙글 뒤섞인 곳인지라, 세상이 그럭저럭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생애 남은 시간을 좀 더 사랑하는 데에 투자하고,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에 쓰고, 비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그런 뭉그렁한 삶을 살아내는데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 끝간데 없는 미움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한껏 보다듬고 좀 더 멀리 함께 갈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비가 온다. 너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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