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Dec 07. 2021

상담치료로 알게 된 것들 (1)

공감과 공유의 힘

이제  끝난 11  상담치료. 오늘은 유난히 힘든 상담을 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서 실마리를 찾고,  현재 행동의 패턴까지 얼개를 이어나가며, 마땅한 이유를 찾아야 하는 과정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진즉에 알고도 남았겠지. 내가  힘든지, 우울한지,   드는지,  그렇게 생각이 많은 건지.


주혁 씨, 이제야
HERE AND NOW에 계시네요.


10회 차 상담을 끝나갈 무렵, 들었던 선생님 말씀이다. 주혁 씨는 처음 4회 동안 과거만 얘기하시고, 나머지 4회엔 미래와 불안에 대해서 얘기하시더니, 그런 주혁 씨가, 요즘의 일들이 얼마나 즐거운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아..... 그런가요?"


음..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네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생각이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정리해 본 적은 없었단 걸 알게 됐다. 스스로에게 '진짜 질문'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모른 체 하고 싶었거나, 덮어두고 싶었던 기억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기에, 내가 왜 그 일에 화가 나는지, 애초에 화를 내도 될 일이긴 한 건지 알수 없었다. 화를 내면 괜히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은 있지만, 그런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건지 모르고 지냈던 세월이 꽤 길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뭘 해도 어색하고 불편해서, 지금 제가 이렇게 하듯이 말해도 되는 건가요? 라거나, 제가 두서없이 너무 많은 말을 했죠?라는 질문을 끝없이 했다. 상담을 시작할 때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질문을 듣는 건 커다란 숙제 같았다. 대체 내게 뭘 원하고 이런 질문을 할까. 이 대화를 나누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40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놓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그런 질문과 또 다른 질문, 그리고 그 사이의 공백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가 있었다. 그다지 별말도 없는 것 같은 상담 선생님은, 말하는 힘이 아닌 듣는 힘으로, 상담시간마다 나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말을 제대로 고쳐하자면, 그녀가 나를 울렸다기보다, 내가 그냥 펑펑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까지 서러웠던 걸까 싶어서, 상담이 끝나고도 다음 상담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이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음 상담 시간을 마칠 때가 되면, 언제나처럼 휴지를 더듬어 찾아가며 연신 눈물을 와락 쏟아냈다.


"잘하신 거예요."

"너무 애쓰셨구나."

"정말 힘들었겠어요."

"왜 그랬는지 알겠네요."


애썼다. 잘했다. 그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저 내가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의 밑바닥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애썼다"라고 해주는 말이 그렇게 절실했던 거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Should'로 가득 차 있던 인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학생,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들, 어딜 내놔도 자랑스러운 자식, 모두의 사랑을 받는 동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직원,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는 멋진 선배.. 내가 내게 씌우고는 벗어나지 못했던 프레임이 가득한 삶.


남들이 보는 그 껍데기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들이 절대 명제인 것처럼 살았다. 나쁜 마음이 생기거나, 질투심이 들고, 미움이 생기는 걸 죄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무수한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에 따라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거라고 두려워했지만, 내가 귀 기울이고 있었던 건 정작 내 안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목소리였다. 그러니 그 어느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예요."

"이런 모습의 주혁 씨도 있고 저런 모습의 주혁 씨도 있는 거죠."

"주혁 씨가 화가 나는 건, 분명히 화가 날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화를 내야 할 땐, 내는 게 맞아요."

"그건 그 사람의 감정이지, 주혁 씨의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아요."

"이제껏 애썼고, 그걸로도 충분해요."


식상하다고까지 생각하던 그 평범한 말들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왜 그렇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상담치료를 처음 시작할 무렵,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생방송 프로그램 원고 마감을 매일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고, 항상 시간에 쫓기듯, 죄책감을 이고 지고 살았다. 무언가가 애매하다 싶으면 내게 가장 갈급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포기했다. 끼니를 거르고, 잠을 줄이고, 쉬고 싶다는 마음의 여유를 차단했다.


그 무렵 나는, 걸려오는 그 어떤 전화도 받지 못했다. 나에겐 '전화 공포증'이 있었는데, 그게 극으로 치달은 거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하루를 털어놓거나, 예상 못한 부탁을 하거나, 만나자고 제안을 해 오는 걸, 물 흐르듯이 받아낼 몸과 마음의 기력이 마모된 상태였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무심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혹은 했던 약속을 취소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아예 그 기회를 애초에 만들지 않기로 했다. 거절할 일을 만들지 않았기에, 거절하지 않는 사람, 약속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애초에 약속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되길 선택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짐스러웠다. 더 살아나갈 에너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거나,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건 아니었지만, 간신히 버틴 오늘도 다 지나지 않았는데, 내일 다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잠이 들었다. 마음이 시들어 죽을 것 같았다.


"운전을 하면서 너무 화가 나요. 평소랑 너무 다른 제 모습이 보여서 무서워요."

"그럴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어떨 때 화가 나시나요?"

"원활한 흐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나, 너무 느릿느릿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치밀어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붓곤 해요."

"그럴 때 보통 뭐라고 하시죠?"

"와, 진짜 한가롭고 여유 있어서 퍽이나 좋겠다. 인생 아주 맘 편하게 사니 차암 좋겠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미운가 보네요.
아마 주혁 씨한테 그런 여유가
간절했나봐요.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던 날 아침, 나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주말 동안 먹었던 수면제와 항히스타민제 같은 약이 문제였는데, 아침마다 울리는 8개의 알람을 무시하고 깊이 잠들어 버렸다. 깨어나 보니, 스튜디오에서도, 혹시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걱정하는 친구들의 전화가 여러 번 와 있고, 생방은 끝나 있었다. 그것도 일한 지 딱 1년이 되던 날에. 그때 생각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수입을 줄이더라도 일을 줄이자. 살고 보자.


친한 친구가 상담치료를 권해주었다.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오래된 마음의 부담이 있지 않을까? 그럴 때 상담치료가 참 좋다던데. 네가 모르던 너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아."


또 다른 지인에게 추천받았던 상담치료 센터의 문을 두드리기도 결심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상담치료를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


나를 완전히 바꾼 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른 우주여행, 스쿠버 다이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