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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an 16. 2022

상담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너무 몰라서

왜 더 실수가 잦고,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을까? 왜 마냥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날까? 왜 나는 그토록 인정에 집착하는가? 왜 나를 갈아 넣어 일을 하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할까? 왜 모든 일을 극단적으로 해야만 후련하다고 느낄까?  왜 상대방의 말들이 나에 대한 지적과 공격이라는 생각이 들까? 왜 나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기가 힘이 들까?


혹시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 걸까.


상담치료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에, 하루 종일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은 도무지 잦아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숨어있고 싶은 마음을 발가벗겨 들추어내듯이, 날이 새면 어김없이 떠올라, 앞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라도 누구를 찌르고 벨 수 있는 무기를 붙들고 살아야 한다. 그게 상대를 찌르든, 나를 찌르든 상관없다는 듯이, 불안은 편안으로 방향을 틀려는 사람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잡다한 생각들은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일까?" 

"나는 너무 오만한 사람인 걸까."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걸 누군가 알게 된다면 날 미워하겠지?"

 

그때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알아봐야겠다고.




기질 검사부터 시작한 상담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대체 선생님이 던지는 이 질문들은 뭘 뜻하는 걸까. 나는 상담을 통해 나을 수 있을까. 더 속 시원한 정답은 없는 걸까,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걸까, 의심과 고민을 반복했다. 눈물을 쏟고, 한숨을 내쉬면서 어그러진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어렵고 고생스러웠다. 


언젠가 마음이 무척 힘들었던 날에 상담이 잡힌 바람에, 괜히 퉁명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질문이 정말 꼭 필요한 것들인가요?"

"아 제가 혹시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나요?"

"아니, 사실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왠지 압박을 느껴서요. 제가 무슨 숙제를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아 그런 의도로 하는 질문은 아니고요...."


훗날 인정하고 선생님께 사과를 하기도 했지만, 그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사실,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거든요.


기질 검사에서 알게 된 나는, 타인의 감정과 주변의 정보를 놀랍도록 흡수하는 -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 사람이었다. 이 세상이 나에게는 꾸역꾸역 소화해야 할 신호와 메시지, 감정의 말풍선들로 가득 차 있어서, 남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파악하고 혼자 그 모든 것들을 조율하느라 기력을 다 써버리면서 살아온 것이다.

동시에 혼란형 애착 유형이라, 내가 제때에 토해내야 할 감정은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차피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과, 나약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키기 싫다는 두려움, 나의 모자란 면을 드러내면 상대가 나에게서 등을 돌릴까 봐 겁을 먹고, 껍질을 쓰고 살아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단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된다는 긴장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하루를 견디고, 충분히 기대도 되는 존재들, 혹은 내가 기대기를 바라던 상대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건, 낮은 자존감 탓이었던 걸로.


그러니 나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노력을 해도 너무 했다. 강박적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것도 병이었다. 두 번 공부하면 될 걸 열 번 공부하고, 대충 봐도 될 시험에 매일 밤을 새웠다.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잊기 위해, 나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과도한 집중과 탈진의 수레바퀴에 자발적으로 올라탔던 거였다.


그리고 신경정신과를 옮기면서 새롭게 확인한 사실.

나는 성인 ADHD를 앓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ADHD일 수 있을 거라고 항상 품고 있었던 생각을 확인하게 된 것뿐이고, 거기에 맞는 약을 하나 더 먹게 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


"그런데 선생님, ADHD는 주의력 결핍, 산만, 뭐 그런 거 아닌가요?"

"아, 단순하게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떻게 증상이 나타나는지는 다 다를 수 있어요. 재미있는 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저는 수업시간에 꼼지락 거리면 세상 두쪽 나는 줄 알았던, 얌전한 모범생이었는데..."

"주혁 씨가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한 방식에는, ADHD 학생들의 전형적인 행동이 녹아 있어요. 불안을 잠재우려고 과도하게 예복습 사이클을 돌리면서, 자신을 불태워 공부하는 거 말이죠. 대치동 학생들 중에도 주혁 씨랑 똑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많아요.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올 수밖에 없지만, 사실 그 성적의 자양분은 극도의 불안인 거죠."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해보면, 성인 ADHD의 증상을 설명하는 글 속에, 상담치료센터에 발걸음을 옮길 때쯤 내가 경험하던 거의 모든 것들이 언급된다.

1) 항상 바쁘고 2) 내적으로 초조하고 3)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4) 자꾸 실수하거나, 5) 성급하고 6) 걸핏하면 화내고 7)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며, 술, 담배, 게임, 섹스, 운동 등 하나에 빠지면 잘 헤어나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 경우... 이야기를 잘 듣고 기억하지 못함, 해야 할 일을 자주 잊음, 일을 시작하기 어렵거나 끝내지 못함, 자주 지각하고 시한을 넘김, 시간 관리나 계획 세우기 어려움 등...


1) 번부터 7) 번까지는 실제 나의 고충들이었고, 나머지 항목들에는, 나만 알고 있는 사연들이 있다. 괴롭도록 탈진하거나, 안 하려고 애쓰다 지치거나. 친구들이 '너는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라고 말해왔던 데에는 이유가 있을 법도 했다.




또다시 경로를 이탈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의미가 달랐다. 변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이 지긋지긋한 틀을, 그래도 한 번은 깨보고 싶었다. 


내가 나를 너무 몰라서 길을 잃었다면, 마치 제3의 관찰자가 되어 나를 돌아보는 여행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수십 번 골목을 꺾고, 유턴을 하더라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지향점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있다면, 그 흔한 경로이탈 쯤은 괜찮지 않을까.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마흔이 되더라도, 느릿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침반은 결국 여기가 네가 갈 길이라고 상냥하게 알려주지 않을까.


다시 천천히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모서리를 접고, 밑줄을 그어두고는 한 번도 다시 펼쳐보지 않았던 내 마음을 꺼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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