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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May 21. 2023

안 쓰면서 잘 쓰려는 건 욕심이다

그냥 더 잘 하고 싶은 영어, 망상에 대하여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한다. 평생 물을 무서워한다며 수영도 하지 않았던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꽤 의아해했다. 수영을 못해도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지,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는게 수영하는 것보다 무섭지 않은질 묻곤 했으니까. 열정적으로 다이빙을 시작하고 푸른 바다의 매력에 깊이 빠진 후, 나는 이렇게 즐겁고 흥미로운 취미를 다른 사람들도 많이 알았으면 하고 바랐다. 까다로운 교육을 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나이에 크게 상관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서 평생 취미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다른 교육 과정을 신청하고 연이어 자격증을 따면서 전 세계의 더 많은 바다 속을 신나게 탐험했다. 내친 김에 다이브 마스터 교육과정까지 듣기로 했다. 다이브 마스터가 된 이후엔 강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딸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특별한 꿈이 없다면 다이브 마스터 교육을 들을 결심을 하게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한시라도 안전을 소홀히 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취미 활동이기 때문에 다이빙에서는 그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다이빙 횟수가 아무리 많고, 험난한 환경에서 적응해왔던 베테랑 다이버라고 해도 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니 꾸준한 훈련과 연습, 엄격한 장비 관리 등도 즐거운 다이빙을 위해서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영어 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왠 스쿠버 다이빙이냐 싶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제 아무리 다이빙 경험이 많은 숙련자라도 오랜만에 다이빙을 할 때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Reactivated program인데, 오랫동안 다이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한 다이빙에 필수적인 수신호, 장비 착용법, 부력 조절 방법,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 등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목적으로 거쳐야 하는 코스다. 그동안 수십번 혹은 수백번 많게는 수천번까지 바다에 뛰어들었던 '바다 사람'일지라도, 오랫동안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면 기본기조차 깜빡하거나 잊었을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영어 학습에 반드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칼이 녹슬고, 오래 여닫지 않은 문이 삐걱이듯, 한동안 쓰지 않았던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고, 하지 않았던 표현이 바로 튀어나올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수행평가를 위해 줄줄 외웠던 시가 아직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떠오른다면 분명 그 사람은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혹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했던 명작이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거나. 


쓰지 않으면서 언제고 원할 때마다 요술램프에서 튀어나오는 요정처럼 영어가 유창하고 매끄럽게 흘러나오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해 보자면 망상에 가깝다. 10년 전, 20년 전에는 시험 성적을 위해서라도 반복해서 외웠던 단어가 10년,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내 입에서 술술 나올 수 있을까. 초등학교 학예회에 선보이기 위해 연습했던 춤동작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똑같이 해낼 수 있을까. 40대 초반인 나는 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가 뭔지도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서 묻는 질문도 여전하다. "와, 우리 언제 어디서 만났었는지 기억 나냐? 애가 이제 몇 살이라고?"라는 질문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나이가 됐다. 


경기가 좋지 않아 주가가 곤두박질 친다는 표현을 할 때 흔히 '곤두박질치다, 급락하다, 낙하하다'라는 의미로 plummet, plunge 와 같은 단어가 자주 쓰이곤 하는데,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혹은 소셜 미디어 타임라인을 훑다가 당신이 이 단어들을 처음 보았다고 치자.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가가 상승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아마도 '급격히 상승하다, 치솟다, 뛰어오르다'를 의미하는 soar, skyrocket, jump to 등의 단어나 표현을 보게 될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었던 당신이라면 '아, 이런 단어가 이런 상황에 쓰이는구나? 좋은 거 배웠네?'하고 뿌듯해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는 하루, 이틀이 지난다. 일주일, 한달이 또 흐른다. 그 후 또 수개월이 흘러 plummet, plunge, soar, skyrocket, jump to 라는 표현을 어려움 없이 꺼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가 '곤두박질치다'라는 단어를 써보라고 했다면, 스펠링이 수월하게 떠오를리는 만무하다. '내가 그런 단어를 알았던 적이 있었나?'까지만 안 가더라도 성공이다. '분명히 봤었는데 제대로 익히지 않았더니 기억이 도무지 나질 않네'라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친다면 평균적인 반응이라고 가정해도 될까?


그렇다. 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매일 같이 반복훈련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반복훈련이 경기에 나가 상대를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기본이자, 무언가를 익히는 본질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스포츠 선수들이 눈을 가리고도 과녁을 맞추거나, 셔틀콕을 날려 촛불을 끄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가? 보는 사람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흥미로운 광경일 수 있겠지만, 선수들에겐 수천, 수만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던 인내와 고난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보통 자막에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때 그 동작과 그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몸에, 손에,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새겨질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했던 노력과 열정 때문이라는 걸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번 눈으로 훑고 지나간 단어를 평생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을 울리도록 감동을 느끼며 보았던 영화의 명대사들을 언제 어디서나 꺼내어 대화 주제로 삼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을까. 생소하다고 느꼈지만 무척 흥미로웠던 관용어구를 원어민을 마주한 상황에서도 막힘없이 꺼내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라고 표현해도 될까나. 


다만 이런 기분 좋은 상상들은, 오랫동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망상으로 그치게 될 뿐이다. 쓰지 않으면 녹슨다. 반복하지 않은 정보는 언젠가 까맣게 잊힌다. 다용도실 구석에 쳐박아두고 잊고 지낸 연장들은 꼭 필요할 때 쓰려고 찾아보면 그새 못쓰게 된 고물로 변해버린다. 


언어란 그런 것이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다. 쓸 수 없는 표현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돈다. 애써 잡아보려고 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된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평소 꾸준히 반복학습을 하지 않은 내 탓이지 그게 달리 누구 탓이겠는가. 그러니 영어 공부를 10년이나 했다는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농담 중 하나가 큰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Are you okay?"를 물어오는 상대방에게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고 만다는 에피소드 아닐까.  


언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나 역시도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지만, 졸업한지 십수년이 흐른 지금 스페인어 단어나 표현들이 가물가물하다. 단수, 복수를 정확히 표현하는 게 헷갈릴 때도 있고, 남성, 여성을 나타내는 관사를 반대로 쓰는게 아닌가 착각할 때도 있을 정도이니, 이제 스페인어 실력이 어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 어디에라도 가 숨고 싶어질 것이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적어도 수천만원의 학비를 쓰고 공부 깨나 한다고 대학 다녔던 제가 이제 스페인어를 못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갖고 산다. 누구보다 유창하게 말하고 싶고, 어느 순간에도 당황하고 싶지 않은 마음, 당당하게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 직장에서 멋지게 영어로 발표하고 싶은 마음......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마음은 어느새 억울함과 한심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또 손을 놓는다. 나는 영어에 소질이 없나봐. 내 평생 영어를 잘 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기면서.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만큼 자주 쓰려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평소 영어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정리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영어로 일기를 쓰거나, 영화를 보고, 팝송을 듣는 것도 좋다. 영어 스터디에 참석하거나, 전화영어를 하든, 영어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TV, 라디오로 영어 프로그램을 보고 듣거나, 유튜브로 매일 10분이라도 영어에 노출되어도 좋다. 


핵심은 우리에게 그동안 쓸만한 교재가 없고, 적절한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니라는 거다. 안 쓰면서 잘 쓰려는 허황된 마음, 망상에 가까운 욕심이 문제다. 꾸준한 연습과 반복, 인내와 훈련의 시간도 들이지 않고서, 언제 어디서나 꺼내 쓰려는 기대와 현실과의 큰 간극이 문제다. 애쓰지 않으면서 애쓴 이상으로 잘 하고 싶은 게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영어는 언제쯤 완벽해질까?'를 궁리하는 그 마음이 문제다.

천재 과학자로 불린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같은 행동을 똑같이 반복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정신병이나 다름없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면, 오늘부터라도 달라져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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