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의 2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8월 22일. 말레이시아로 떠나온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날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싶으면서도, 그동안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면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도 없지 않다. 태어나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땅에서, 울고 웃고, 싸우고 부대낀 지난 2년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또 그동안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었는지, 진지하고 여유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여덟 가지 이야기로 지난 시간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다양함의 공존 속에서 사는 축복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중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잠깐 거리를 걷고 시내 쇼핑몰을 걸어도, 말레이어, 중국어, 인도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각기다른 인종의 성향, 행동, 옷차림, 말투까지, 총천연색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한겨울 한국에 방문했을 때, 온 거리가 검고 긴 패딩으로 물들어 있는 걸 보고 언젠가 '숨이 막힌다'라고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 획일적 단조로움 때문에 한국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졌달까. 이곳에서의 2년은 분명 내게 '가슴을 뛰게 해주는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2.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진짜 많다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루틴한 틀을 과감하게 깨 보면, 정말이지 세상엔 실로 다양한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것도 나름대로 아주 잘 산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랄까. 이름도 모르고 있던 훌륭한 회사들, 다양함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꿈과 목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등바등하고 살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 길 끝에 또 다른 기회는 없을 것만 같고, 적당히 안주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삶을 과감히 탈피해 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한 것들에 손끝을 가져다 대고, 여행을 해보는 것. 분명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던 엄청난 행운이었다.
3.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그 달콤 씁쓸한 과정
법인장으로, 해외사업 개발이사로,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2년을 보냈다. 20명의 직원과 함께 일해보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에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IPTV 홈쇼핑 채널을 개국하기도 하고, 한국 신문에도 나오지 않아봤던 내가 말레이 일간지에 한국인 대표로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한국 대사님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코트라, 상공회의소과 긴밀히 협업해 도움도 얻었고, 현지 가장 큰 규모의 굴지의 통신회사,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협업을 해보기도 하고. 한번 실패했지만 새로운 채널 론칭을 위해 막무가내로, 정부 산하의 최대 방송사 사장 미팅을 신청해, 선입금도 없이 신규 채널을 구두 약속으로 따내는 미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보기도 했다. 유명 글로벌 기업들과 독점계약을 성사하기도 했고,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니며, 새로운 상품을 소싱해 홈쇼핑에 론칭하는 보람도 느꼈다.
물론 뜻하지 않았던 법률적 이슈로 로펌에 가서 고소 접수를 해보기도 하고, 작가, 프로듀서, 감독, 구매담당, 매니저, 협상 담당, 회사 대표 등 다양한 얼굴로, 때론 힘에 부쳤을지라도 최선을 다 했다. 힘들고 지난한 과정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먼저 알려주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부딪혔던 모든 일들이, 씁쓸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내게 달콤한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잃은 사람, 얻는 사람
한국을 떠나오면서 잃은 사람, 역으로 한국을 떠나왔기에 얻은 사람도 있다.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만나게 된 귀한 인연들도 있다. 내가 어떻게 찌그러져 있건, 어떤 돌파구를 찾지 못해 주저앉아 있건, 내게 도움을 주고 방패막이 되어준 사람들. 영원히 잊지 못할 고마운 인연들이다. 반면 철석같이 믿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터지는 사건 사고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다. 다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순진했었는지를 배우고, 그들을 상대하는 방식을 바꿔나가는 계기를 만들었고, 별것 아닌 인정 욕구 때문에 애매하게 커뮤니케이션했던 그간의 업무 방식을 새롭게 정비하는 기회도 찾게 되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응원해주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 신명 나고 좋은 기회로 만났지만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좋았던' 사람들. 그런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진짜 내 옆에 남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5. 그래도 살아나가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
결국 내 선택이고 내 의지로 떠나온 이곳에서, 그래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명제가 남아있기에, 나는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충실히 채우는 시도를 해보자는 것으로 나를 채찍질했다. 한국에선 지쳐 쓰러져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운동을 위해 주 4회 요가를 배웠고, 주말마다 시간이 나면 가까운 근교, 이웃나라로 여행을 했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1년에 한두권 간신히 읽었던 한국 직장인의 변명 같은 핑계를 떨치고 150권의 책을 읽었고,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꾸준한 연습으로 이제는 수영을 하게 됐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지금처럼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가끔 '고추장이 당기는' 날엔 직접 요리를 해 먹다보니 요리 실력도 엄청 늘었다. 누군가는 업무적 역량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이런 것들로, 나는 결국 더 단단해졌고, 순간순간 충만한 행복을 더 많이 느끼게 됐다. 결국 내가 충만해지지 않으면, 텅 빈 구석 한켠에서 끝없이 자라나는 공허함이 온몸을 휘감게 되더라.
6.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
38살이 되고 나니, 이제 내 능력과, 내 건강과,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음에 뭔가 허망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물론, 선택은 두 가지. 주어진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돌계단을 올라, 정상을 밟기를 택하느냐, 아니면 초라해진 무릎을 탓하며 하산을 하느냐. 물론 나는 더 나아갈 것을 택했다. 그것이 불안하고 힘겨울 지라도, 아직 1km라도 더 걸을 힘이 남아 있다면, 수평선 위로 떨어지는 해가 지기 전에, 뜨거운 태양을 막 삼키려 하는 바다 앞에 우뚝 서고 싶다. 헐떡이는 숨일지언정 뜨거워진 두 발을 파도에 담그며, 오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고 외치고 싶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후회하지 않고 살아보겠노라'라고 다짐하는 길을 가고 싶다.
7. 무엇을 하더라도, 어떻게 되더라도 온전히 내 길
해외생활 2년, 참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아도, 내 나이로 환산해 보면 5% 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얻은 게 있든 없든, 모두 내 길이었다. 너무 어두컴컴해 얼른 피해버리고 싶은 길, 작은 꽃들이 피어 있어 발길을 멈출수밖에 없던 길, 억수 같은 비를 피해갈 수 있던 작은 처마가 있던 길도 있었다. 이 골목만 지나고 나면 예쁜 테라스와 새하얀 테이블이 놓인 햇볕 아래 카페에서 달콤한 카푸치노를 한잔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인생은 언제나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늘도 결국 쉼 없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이길 위에서 나는 나아감을 택할 것이다. 막다른 길에 부딪히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만 고민하면서, 그렇게 현재에 집중할 것이다. 등불을 들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며, 아무도 밟지 않았던 풀숲에 발자국을 내는 사람처럼, 나라는 사람의 온기를 남기며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느리든, 빠르든, 한걸음 한걸음.
8.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한동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의 지나온 길은 과연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애정과 열정과 투지가 있었는가.
오랜만에 이력서를 고쳐 썼다. 4년 만에 다듬는 이력서가 꽤나 생소했다. 인정한다. 내가 게을렀다. 다만 혼란과 좌절, 무의미함과 허탈함을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던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결국 조금은 성장했고,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의미를 남기는 일들을 해오고 있었다는 걸, 눈앞에 있는 활자들을 보고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또 어디론가 나아갈 것이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나만의 '용기'와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의 합에, 마흔까지의 새로운 2년에 또다시 모든 걸 걸어보겠다는 나의 의지와 패기를 더한 또 다른 그림을 그려 볼 것이다.
쉼 없이 물을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답할 것이다. '어디로 가든 그것이 네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