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이루는가 보다 중요한 것들
한때 60살이 되기 전에 '죽고 싶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평균수명이 길어질지도 몰랐고, 60살이란 나이가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늙음'이란 단어가 왠지 초라하고 약하고 외로운 느낌인 데다가 '제대로' 나이 듦의 미덕을 한창 모를 10대 후반의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아플 일도 없고, 인생의 무거움도 깨닫지 못했지만 믿을 거라곤 윤기 나는 피부와 건강한 팔다리 밖에 없던 내게, 그런 '초라함', '약함', '외로움'을 허락(?)하는 게 두려웠던 터라고 여긴다. 웃음이 난다. 그때 내가 했던 '60살이 되기 전에 죽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그 말을 '취소한다'며 '나의 어리석음'에 용서를 구하고 싶다.
물론, 내가 60살까지 살 수 있을진 모르겠다. 뭐, 죽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내일이, 모레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니까. 그저 충실히 살아가는 걸로 세상에 태어난 내 '본분'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갈밖에 없는 나라면, 그 본분을 잘 가다듬고 실천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을 채우고 싶다. 때문에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덕에, 설령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오늘이 아쉽지 않았으므로 후회하지 않게 눈감고 싶다. 내가 떠나고 나서도 당분간은 나를 기억해줄 고마운 모든 사람들에게도 아쉽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60살이 될 때까지 이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
기억으로 8살 때 나와 아프리카의 아이에게 유니세프 아동 결연을 해주셨던 어머니, 제철 과일을 이웃과 주변에 나누셨던 어머니, 식당을 하시면서 주변 노인분들과 결손아동들에겐 공짜로 밥을 주시곤 했던 어머니에게서 나는 많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지금도 군인들이 고생이 많다며 군부대에 매주 봉사활동을 하러 가시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나는 진정 행운아였다 생각한다. 다만 어머니처럼 내가 그동안 제 아무리 베풀려고 노력했다 자위한다손치더라도 그동안 세상과 고마운 사람들이 내게 준것들에 비할 데가 없겠지만.
위험에 처한 행인을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도블록을 힘겹게 넘어가는 리어카를 밀어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바쁘고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내 순서를 양보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을 잃은 아이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외로운 이에게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없이 버텨준 내 가족과,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선뜻 장학금을 주셨던 많은 분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림잡아도 5천만 원은 될 것 같은 그 돈은, 역시 내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간과 선행의 증거였다.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잊을 수가 없어서 마음이 무거운 적도 많았다. 굳이 물질적인 목표를 잡자면, 그보다 두배를 장학금으로 주고 싶다. 나 역시 누군지 모르는, 영원히 나를 모를 그들에게.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많이, 아주 더 많이.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다. 그래서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는, 기분이 좋다.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사람
인정하자면, 너무나 예민한 사람인지라, 사소한 일들에 괜히 민감 해질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가끔은 이 예민함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도,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쩌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것을.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 상대방의 변화나 기분을 알아차린다든지, 주변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해낸다든지 하는 것들로 나는 꽤 많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으며 '풍요롭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로, 그 많은 '역할'과 '배려'와 '착한 사람 콤플렉스', '센스 있는 직원'과 같은 억지스러운 타이틀 때문에 적잖이 괴로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겪어야 할 일들이 태산이지만, 그동안 숱하게 부서지고 넘어지면서, 어리석어 모르던 많은 것들을 조금은 알게 되었어도, 여전히 사사로운 일들에 붉그락푸르락하는 나를 볼 때면, 언제쯤 너른 아량과 이해심을 '득'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아직 '다행히도' 성낼만한 힘이 남아서인지, 너무 원리원칙에 매달려 사는 건지, 나를 몰아세워가며 피곤하게 사는 건지,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미소와 여백, 여유와 관용이 더 어울릴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럴 순 없잖아'라는 말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5초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욱'해서 상황을 '우격다짐'으로 끌고 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밤을 자고 나면 내일 아침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곁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쉼'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
누구나 영향을 주고받고 산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기운이 솟는 게 우리 아니던가.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와 위로에 가슴이 저릿해 본 사람은 알 테다. 그 선한 힘은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오래도록 나를 나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준다.
이왕이면 불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외면보다 내면이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말로 힘을 주고 행동으로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전이 아름답고, 실패가 교훈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서있는 길, 내가 가는 곳, 나의 발걸음이 적어도 비겁하고, 치사한 모습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문에 매일 용기를 내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자신감을 불어넣는 연습도 마찬가지다. 그 용기를 꼭 필요한 곳에서, 적시에 꺼내어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건강한 사람
마음과 몸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몸이 아프면 마음에 병이 들고 마음에 근심이 자리 잡으면 몸이 아파지는 게 사람이라, 이 둘 모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마음이 건강치 못하면 나뿐 아니라 주변을 힘들게 할 수 있고, 몸이 건강치 못하면 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니, '건강이 최고야'라는 말은 기실 한치도 틀림이 없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위해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여행을 한다.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고 사람을 만난다. 요즘은 그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다행이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행운이며,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게 축복이라 여긴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 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서면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후회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두려워서, 주저해서 하지 못한 일, 더 많이 경험하지 않은 것, 더 사랑하지 않은 일, 더 노력하지 않은 일, 진정한 용서를 주고받지 않은 일, 알면서 외면한 일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는 정말이지, 내가 60살까지 살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매우 바쁘다.
두려움을 이겨야 하고, 주저함을 버려야 하고, 더 경험해야 하고, 더 사랑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용기를 내야 하니, 배우고 익히고 실패하고 깨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의미 있고 값지다. 한순간도 아쉽지 않은 순간이 없으며, 어제가 좋았고, 오늘이 알차며,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 순간들을 내가 헛되지 않게 쓰고 있음을 느낄 때, 진정으로 '잘 살아 있다'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오늘이 아쉽지 않았으므로 후회하지 않게, 슬프지 않게 눈감고 싶다.
그래서 경험에 투자하고, 생각을 가다듬고, 더 읽고, 쓰고, 배우고,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순간이 소중해야 시간이, 하루가, 한 달이, 1년이 소중해진다는 걸 우리는 너무 흘려보내면서 산다.
끝이 없는 꿈을 꾸고 싶다.
자신의 꿈, 혹은 이루고 싶은 일들을 말한다면, 우리는 보통 '***를 갖고 싶어요', '***를 하는 건 저의 꿈이에요', '성공한 ***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끝없는 노력을 통해 오르고 싶은 위치 등, 모두 의미 있고 중요한 꿈일 테다.
다만, 무엇을 갖고, 어떤 걸 이루는가 보다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가의 주제가 인생에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잘 알겠다. 모든 일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꿈에도 마땅히 시작과 끝이 있다. 경찰이 되는 것, 내 집을 갖는 것, 취업을 하는 것, 부모가 되는 것, 남미 여행을 가는 것, 자격증을 따는 것, 모두 그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나는, 어떤 꿈의 끝에서 허무해지는 황망함보다,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꿈을 더 꾸고 싶다. 그래서 매일이 다른 사람, 하루를 소중히 하는 사람,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직업을 갖고 나면 무엇이 되어야 하지? 내 집, 내 차가 생기고 나면 뭘 가져야 하지? 남미 여행을 끝마치고 나면 어딜 또 가야 하지? 이 자격증을 따고 나면 어떤 자격증을 또 따야 하지?...
람보르기니를 갖고 나서 또 뭔갈 가져야 하는지 다른 꿈을 꾸어야 하는 사람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현명하고 너그러워야겠기에 매 순간 계속 나를 돌아보며 조금 더 나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이 아주 조금만 더 나았다면 그걸로 족하다.
목표가 꿈이 아닌, 과정이 꿈인,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을 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만약 60살이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인생은, 무한한 순간의 ‘현재진행형’이다. 나의 꿈도 미래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길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