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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Nov 04. 2017

0. 공황장애

말하지 못했던, 말해도 되는 이야기

27살, 흉추가 부러졌다. 수술을 할 수가 없다며, 6개월을 그대로 누워 뼈를 굳히는 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다시 아프게 될지, 또 부러지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을 당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대체 이유라도 알면,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볼 텐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양말도 신지 못하겠고, 신발 신는 게 무서웠다. 공부를 하다 책상에서 연필이라도 떨어뜨리는 순간엔, 또르르 식은땀부터 흘렀다. 난 분명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지치고 고생스럽긴 했어도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공황장애였다.


쉼 없이 너무 긴장했던 것 때문에 흉추가 부러진 것이라 했는데, 다친 흉추 때문에 또다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으니 매일 등 여기저기가 콕콕 쑤셨다. '찌릿'하는 느낌만 와도 공포가 밀려와 발작이 시작되곤 했다. 6개월을 집에서 누워 뼈를 굳히고 나서도, 간신히 복학한 학교 수업도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지하철에서 누가 나를 살짝 밀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운 좋게 자리에 앉아도, 손잡이를 잡고 서있어도, 등을 항상 곧추 세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24시간 식은땀을 흘려 항상 티셔츠가 흥건히 젖어 있곤 했다.


'다시 부러지면 어떡하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걸어야 하는 날엔, 한두 시간만 지나도 현기증이 났다. 예전엔 친구들과 함께 그럭저럭 좋아했던 축구도 못하겠고, 술 한잔 걸친 친구들이 길거리를 지나다 야구 배팅 게임을 하자하면,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행여나 넘어지거나 몸을 비틀어 뼈가 다시 다치게 되면, 이제는 영원히 누워있어야 할 것만 같은 두려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마음의 '잘못된 위기 경보'가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삶은 그야말로 차근차근 무너져 내렸다.


1,2호선 출퇴근길 지옥철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앞뒤에 꽉 찬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어오면 으레 발작이 시작되곤 했다. 한숨을 크게 쉬며 열차에서 내려, 지하철역 계단 앞에 서면, 저 끝에서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날 구해줄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공포에 질린 잔뜩 굳어진 얼굴로는 차마 퇴근을 할 수가 없어서, 빌딩 숲 사이 어딘가로 걸어 들어가 한참 숨을 고르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 팀장님과 미팅을 하다가 발작이 시작되면, 테이블 밑에서 볼펜으로 손바닥을 꾹꾹 눌러 지압해가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야 했다.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걸 참 좋아했던 나였는데, 공황이 시작되고 나선 누구를 만나는 게 그렇게 두려웠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공황이 시작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퇴근하면 털썩 쓰러져 자기 바쁘고, 주말엔 밖에 나가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이렇게라도 다시 힘을 채워야 다음 한주를 간신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반가운 자리도 나에겐 대단한 용기를 요구했다. 거절할 수 없는 그 약속을 '치러내기 위해', 밖에 나가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행여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힘을 쌓아두어야 한다고 믿었던 터라, 만나러 가는 길, 만나는 순간, 만나고 난 뒤까지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벌벌 떨었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나 한창 얘기를 나누다, 공황이 온 적도 여러 번. 뭐, 공황이 한참 심하게 올 땐, 하루에 열 번 스무 번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힘들어도 밝게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를 위해 나와 준 친구에 대한 예의라치면, 최소한 밥 먹고 차 마시는 정도까지는 멀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물을 들이키고, 자꾸만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 스트레칭을 하고 한참 심호흡을 하고 나와야만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그나마 어렵게 수년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을 앞에 두고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나 미안한데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인과 함께 영화를 보려고 운전을 하고 가다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영화를 취소하고 응급실에 갔던 날. 손발 끝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을 쥐어짜는 느낌 때문에 '회사에 다시 들어가 봐야겠다'며 거짓말을 하고 친구와 헤어졌던 날. 퇴사 면담을 하던 중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 때문에, 앉아있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것 같았던 날들. 그걸 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거의 탈진이 되어 집에 돌아올 때면 너무나도 비참했다. 반가운 친구 앞에서도 공황발작이 시작되면, '제발 다른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한다고 말해줘'라며 마음속으로 울면서 빌었다. 지하철, 버스를 타면 숨이 막히고 탈진할 것만 같아 매번 택시를 타고 돈을 뿌리고 다녔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데, 나만 이렇게 죽을 것 같이 사나, 한심하고 외로웠다.


아픈 게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걸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공황장애가 있다'라고 말하면, 마치 어디가 모자란 사람처럼 여길까 두려웠던 것 같다. 언제나 밝고 유쾌했던 내 모습이, 이젠 온데간데없는 손 안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렸다고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힘들고 어려워도 나름대로 잘 살아온, 최선을 다했던 내가 '나 지금 이렇게 죽을 것만 같아'라고 고백하는 게, 공황발작보다 더 무서웠다.




한 번은 직장을 새로 옮기고 나서 직원들 사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혼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면서 심장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다가, 이내 호흡이 가빠지고,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틀거리며 택시 정류장에 서서 안절부절 택시를 기다리다 풀썩 주저앉듯 택시에 올라탔다. 야속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날 살려주곤 하던 날들과 다르게, 집까지 가기 전에 이 차 안에서 죽어 버리고 말 거라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뭔지.


당장 숨이 막히고 죽을 것만 같아서, 죽고 싶지 않아서,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놓고 글을 썼다. 정신을 집중하고 나를 바짝 챙기지 않으면 정말 그대로 생을 마감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온전하다. 지금 잠깐 힘들지만 다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심장이 아픈 사람이 아니다. 요즘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고 무리해서 좀 놀란 것뿐이다. 나는 그동안 아프지 않고 잘 지내왔다. 나는 멀쩡하다. 나는 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응급실에 간다 해도 역시나 아무런 증상이 없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집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중략) 나는 괜찮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온전하다. 지금 잠깐 힘들지만 다 괜찮아질 것이다. 나는 괜찮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거의 세 페이지에 달하는 이상한 자기암시를 손가락을 벌벌 떨며 스마트폰에 쓰고 또 쓰면서, 소리 죽여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이 지나 왜 우냐고 묻는 기사님에게 설명을 할 방법이 없어, 그냥 친한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었다. 내가 마냥 죽을 것 같았던 날, 우습게도 남을 죽이고 말았던 너무도 비참했던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저릿저릿하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마음의 동굴'


공황장애가 두려웠다. 아니, 10년을 말도 못 하고 끌어안고 살았던 공황장애 그 자체보다, 사람들에게 '내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그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 같다. 비참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 알 수 없는 공포감, 시도 때도 없는 불안, 그런 것들이 나라고,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걸 더 두려워했다.


그냥 지치고 피곤할 때 찾아오는 감기 같은 거라고, 몸살 같은 거라고 생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 정말 힘들어. 나 정말 지쳤어.'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프고 때론 삐끗해 발목이 아픈 것처럼, 지쳤던 내 마음이 너무 '열일'하느라 고생해서 '마음에 살짝 병이 왔다'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용기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걸 내려놓지 못하고, '멀쩡한 척', '괜찮은 척', '밝은 척'하느라 나는 나를 얼마나 학대하고 있었을까. 무섭고 두려워서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힘껏 끌어안아주지 못할 망정, 울지 말라고 이내 다그치며 방 한구석에 몰아둔 것처럼, 나는 이런 나를 철저히 모른 체 했다. 바보같이.




처음으로 공황장애를 고백한 건, 그로부터 10년 후였던가. 가장 친한 녀석들에게 공황장애가 있었다고 말을 꺼냈다. 쉽지는 않았지만, '방 한구석에 내버려져 있던 마음을 이제는 좀 보듬고 어루만져 주어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주는 인연들이 있었던 덕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왜 아프다고 말 안 했어?'

'아프면 아프다고 하지 대체 그동안 왜 숨겼어? 몰랐던 게 너무 미안해'.

'힘들어하는 거 숨기지 말고 그냥 말하고 편히 쉬었다면, 같이 있었던 내가 더 행복했을 것 같은데'.

'혹시 지금도 힘든 거 아니야? 그럼 집에 가도 돼'.


고마웠다. 마음이 아팠던 나를 보듬어 주고, 몰랐던 걸 미안해하며, 힘들고 지치면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에, 불쌍했고 버려졌던 내 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고 거리낌 없이 신경정신과에 찾아가 상담도 받게 되었다.


'음...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 맞고요.. 환자분 공황장애를 너무 오래 겪으셔서 그런가, 증상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가 거의 무슨 전문의 수준이네요. 너무 늦게 오셨어요. 10년이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처음 한 달치 약을 처방받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복용하면서 '잘못된 경보'가 쉽게 울리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신기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이미 지쳐 쓰러졌을 스트레스 상황이 와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흔들림 없는 물 잔' 마냥, 고요한 평안을 얻게 되었다. 아무도 쉽게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의 병이,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에도 다가가게 되었다.  


때론 이런 '못난 나도, 마음이 아픈 나도, 그저 나일뿐, 이 공포가 나 자신을 못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공포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정확히 다시 고쳐 쓰자면, '까짓 거 못나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마주하고 인정한 것이, 이제와 뒤늦게 나를 해방시켜준 유일한 나의 마음 챙김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친구들 앞에서 '야, 나 지금 공황장애 왔어. 그만 괴롭혀'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할 정도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포의 근원이 뭔지, 갑자기 내 마음이 왜 또 괴롭다고 소리치는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혹시나 공황발작이 또 오지 않을까 두려운 순간들도 맞닥뜨리게 되지만, 힘들어하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내가 있어서, 괜찮고 또 괜찮다.


사실 고백하자면, 언제 또 공포가 찾아올지 몰라, 퇴근길 택시에서 울면서 써 내려갔던 메모를 2년 동안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정말 다시 한번 그런 무시무시한 발작이 오면, 그 메모라도 얼른 꺼내 주문처럼 외야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애틋하고 아련하다. 지우지 않았던 메모를 볼 때마다 선명히 떠올랐던 그날의 극단적인 공포감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그건 정말 마음의 감기 같은 거였을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물론, 그 메모는 이제는 지워졌고, 이제는 약도 먹지 않는다. 워낙에 태어나길 예민하고 생각 많은 나인지라, 여전히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있지만,  정말 힘들 때, 고생스러운 날들이 지속될 때, 마음이 서러울 때도 약이 없어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물론 언젠가 또 두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나, 당신에게나, 우리 모두에게나.


다만, 지치면 쉬고, 힘들면 내려놓고, 아프면 눕고, 슬프면 울고, 괴로우면 멈춰 서서 크게 한숨도 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나. 지쳐도 너무 지치고, 괴로워도 너무 괴로운데, '마냥 괜찮다'라고 마음을 억지로 다독여버리면, 선홍빛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든다. 분명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야만 한다'는 어리석은 '당위'가 언젠가 나와, 당신과, 우리의 목을 조를 때도 있다. 지금 우리, 그렇게 멍들어버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내내 그러다 마음이 목을 놓아 힘껏 울어버리게 되면, '잘못된 위기 경보'가 울려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늦기 전에 멈춰 서서, 힘든 나, 못난 나, 작은 나, 지친 나를 껴안아 주자.


있는 힘껏. 아주 격하게.





* 의학적 지식을 토대로 설명한 글이 아닌,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서술한 글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숫자 0에서 시작하여 10까지, 열한 가지의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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