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은 분명히 있다.
첫 직장, 2009년 1월의 일기를 꺼내어 본다.
*** 2009년 1월 10일 일기
출근한 지 딱 일주일. 제대로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좋은 사람들 만나, 날 열렬히 환영해 주고 내가 가진 한 조각을 100개, 1,000개로 평가해 주는 사람들 만나 즐거운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몸은 너무 힘들고, 마음은 너무 답답하고, 출퇴근은 너무 괴롭고, 매일 회사를 나오며 남보라빛이 된 하늘을 보면 고개에 힘이 빠지면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늘 선배님이 그러셨다.
"이렇게 맨날, 책상머리에 앉아서 남이 보기엔 하는 일 없어 보이는데 스트레스는 있는 대로 받고
보고서나 계속 고쳐 만들면서 사는 인생, 재미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엔 너무 멋진 분이고, 너무 자랑스러운 프로인데 선배님도 이런 생각을 하시나 보다. 아직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힘든 거지? 내 인생은 그냥 앞으로 이렇게 흘러가는 건가?
참고 참으면서 일해 보고 머리 터지게 싸우고 경쟁해서 4명이었던 사람이 3명으로 줄고, 3명이 2명으로 줄고, 2명이 또 줄어 나 혼자가 되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선, 언제 내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웃고, 참고, 또 참으며 더 오래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제발 실수하지 않기를, 제발 밉보이지 않기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살아야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보장받게 되는 건가?
종일 17층 하늘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일하고, 허락 없인 하루 15시간 동안 저 아래 땅위에 발자국 몇 번 찍을 수 없는 그런 신입이다.
***
1년이 지나고, 인사고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월급도 문제없이 받았다. 저축도 많이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KPI를 달성했고, 아무도 해보지 못한 프로젝트를 받아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는 퇴사를 했다. 누군가는 미쳤냐고도 했고, 누군가는 배가 불렀다고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이건 회사의 문제인가, 나의 문제인가.
보통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우리는 하루 많게는 10-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인생의 반이다. 다시 얘기해보자. 눈치 보는 야근이며, 빠지면 눈밖에 나는 회식이며 그 온갖 것들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직도 인터넷 댓글에는 '칼퇴하고 회식 빠지면서 인사고과 높게 받길 원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라는 말이 눈에 띈다. 자, 이제 인생의 반 이상이다. 또다시 얘기해보자. 주말 근무며, 카톡 업무 지시며, 집에 일을 끌고 와 밤을 지새우고, 아침엔 미처 풀리지 않은 쓰린 속으로 다시 회사로 달려가 이 루틴을 반복한다. 인생의 3분의 1만 간신히 가족과의 시간, 자신을 위한 투자, 휴식에 남겨두고 이 빌어먹을 쳇바퀴를 다시 돈다. 눈치 보면서 쓰지도 못하는 연차와 다음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깨나 안정적이다. 이 루틴을 영원히 반복할 인내와 깡이 있고, 두 눈을 막고 귀를 닫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이 루틴으로 가득 채워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아량'을 가졌다면.
기업은 이윤 추구가 절대 당위인 곳이고, 그건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그런 이윤 추구를 위해 회사는 나를 고용했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 내게 주어진 목표에 부합하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고, 보상으로 30일에 한번 돌아오는 '월급'을 받는다. 마침표.
다만, 쓰인 그대로 그렇게만 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고, 내가 했던 일에 대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적절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고, 과도하거나 부당한 업무 지시가 없었으면 좋겠고,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선배들이 아주 아주 많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현실은 원래 생각지도 못하게 여기저기 숨어있는 시궁창이다. 발을 빼고 나면 또 다른 시궁창이 나온다. 또 빠진다. 무한 반복한다.
내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나는 거기서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재미와 즐거움은 원래 다른 곳에 있는 거라고, 일에서 무슨 행복을 찾냐고, 일이 재미있을 순 없는 거라고, 직장은 돈일 뿐인 거라고, 받는 돈만큼만 일해주면 된다고, 그냥 더럽고 치사해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참아주면서, 상사 비위 맞춰 주면서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고 해도, 그게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다. '윗분'이 그러시는데 어떡하냐며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라는 말이 그렇게 와 닿지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요즘 너무 거지 같네요. 분위기 왜 이래요? 진짜 일 할 마음 안나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냥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거지 뭐".
"선배님은 이직하실 생각 없으세요? 여기 진짜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벌써 여기 몇 년 차인지 알아..? 난 갈 데도 없다".
"왜요, 안 찾아보시고 그런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회사가 별거 있냐? 그냥 시키면 시키는 거 하고, 월급 잘 나오면 되는 거지".
그의 눈동자에선 그 어떠한 열정도, 어떠한 희망도, 변화에 대한 열망도 읽을 수 없었다. 그렇게 5년 뒤, 10년 뒤에 그가 '윗분'이 되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며 직원들을 다그치게 될까? 적어도 7-8년 전에는 그도 열정과 신념이 가득한 멋진 신입사원이었는데.
"혹시... 내가 저 자리에 가면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질문이 아닐까.
물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인생이며, 타인의 기준을 힐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참으로 아쉽게도 나도, 당신도, 우리도, 우리가 뭘 원하고 충분히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경험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라왔다. 어렸을 때 꿨던 꿈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어른이'가 되어버렸다. 요즘 대학생들은 노는 방식도 몰라, 놀 줄을 모른단다. 20년을 학원 가고, 과외받고, 공부만 했으니 그럴밖에.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진정으로 내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치,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니, 이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면 평생 '어른이'로 살아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소득 수준이 높아졌고,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겪어온 경제, 사회적인 고통과 트라우마들을 '자기 위로' 받는 방법으로, 훨씬 더 풍요로운 것들을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리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경험의 기회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해 배우고 즐기거나 고민해 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진정으로 내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치,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다만 답해야만 한다. 최선을 다해서. 보고서에 최선을 다하지 말고, 야근에 목숨 걸지 말고, 이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매일매일, 매 순간, 평생, 최선을 다해서.
다짜고짜 일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감히 누군가에게 그런 얘기를 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더 나아가 그걸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산이자, 꼰대 짓, 오지랖이 아닐 수 없다. 나 아닌 그 누구의 인생에도 내 마음대로 개입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첫 직장, 옳지 못한 것들을 옳다고 가르쳤던 두 번째 직장에서 나는 저렇게 중요한 질문들에 답할 수가 없었다. 일 외의 자그마한 행복이라도 찾아가며,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가는 힘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6개월을 주말까지 출근해가면서 새벽 2-3시에 집에 도착한 적도 있었다. 새벽 5시에 집에 와 샤워만 간단히 하고 또다시 의미 없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10분을 쪽잠을 자고 출근한 적도 있었다. 나는 피폐해졌고, 몸과 정신이 망가졌다.
끝도 없는 야근, 산더미 같이 쌓인 일, 일을 위한 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윗분'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일을, 단지 '최선을 다해'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걸 최선을 다했더니 내가 망가져버렸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 아니, 3분의 2를 보내는 '일터'라는 곳에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데 쓸 수 있는 나의 인생을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데, 그런 게 회사라는데, 그래서 너 월급 받는 거 아니냐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적응해서, '시키는 대로 해', '나 때는 다 그렇게 했어'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되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했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진짜 원하는 게 이거냐고, 다른 것은 없냐고, 무엇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나가가고 싶은지, 그 힘이 내 안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질문들을 덮어두고 살았다.
'여기가 안정적인 곳이야', '여기가 편하잖아', '지금 잘하고 있잖아, 그냥 계속해'라고 세상이 말해주는 대로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면 내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어떻게 더 이겨내야 하는지, 무엇에 더 가슴이 뛰는지 모르고, 평생 높은 빌딩의 엘리베이터만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언젠가 크게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러기 싫어서 나는, 도망쳤다.
나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그래서 넘어진다. 부딪히기도 한다. 아프다. 눈물도 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3년 전, 7년 전의 나보다 조금 더 강해졌다. 단언컨대, 다른 삶은 분명히 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순진한 희망을 심어주려는 말이 아니다. 이미 처절하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안다. 이미 얘기했듯 현실은 원래 생각지도 못하게 여기저기 숨어있는 시궁창이다. 발을 빼고 나면 또 다른 시궁창이 나온다. 또 빠진다. 무한 반복한다.
그 시궁창에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인생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이 될 수 있지만 그래야 살 수 있다.
최근에 읽은, 마크 맨슨이 쓴 [ 신경 끄기의 기술 ]이란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일로 몸부림을 친다. "난 뭘 하고 살아가고 싶은 거지?",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게 뭘까?", "내가 잘하는 게 뭐지?".....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 짓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하게 해주는 질문들이다. (중략) 우리 인생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길일 것이다."
다른 선택은 반드시 있다. 다른 삶의 모습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다만,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 누가 감히 인생이 이렇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끝을 모르는데. 적어도 그것을 찾길 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30일마다 돌아오는 '평안'의 마약에만 인생을 저당 잡히지 마라. 행여나 그게 선택이었다면, 투덜거리지 말자. 결국 수단이었고, 돈일 뿐인 회사를 선택한 건데, 망하지 않고 월급 꼬박꼬박 잘 주는 회사를 왜 욕하나. 저당 잡히기로 마음먹은 건, 나, 그리고 당신이었다.
가치를 두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더 많이 경험하자. 여행하자. 대화하자. 독서하자. 운동하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것들을 당장 실천해라. 아는데 못하겠다고 눈 돌리지 말고, 있는데 미루지 말고, 부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실패해서 더 빠르게 더 좋은 답을 더 많이 찾길 간절히 소망한다.
인생의 3분의 2를 더 가치 있게 보내야 할 곳은 푸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내리쬐는 '보고서 위'가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촛불이 비치고 있는 지금 당신 인생의 '일기장'이다. 그 일기장 위에 오늘도 그 어떤 중요한 질문에 답했는지 꾹꾹 눌러 예쁘게 써내려가는 것이 오로지 당신이 집중해야 할 일이다.
인생 까짓거 한번 사는거라 쿨해지는 게 YOLO가 아니라, 단 한번이기에, 의미있는 일을 충실히 살아내는 게 YOL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