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인생에 도움이 될 이야기들이 담겼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기 시작한 건 햇수로 벌써 4년 전인 듯하다. 2016년 1월, 론칭 초창기엔 볼만한 게 너무 없다고 생각돼서 조금은 실망했었고, 반대로 도대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롱런한 시즌제 작품들은 함부로 시작할(?) 엄두도 못 냈었다. 부먹이냐 찍먹이냐, 자장면이냐 짬뽕이냐처럼 둘 중에 하나 고르기도 힘든 일도 더러 있지만, 반대로 메뉴판에 500개의 메뉴라도 있는 식당에서 하나의 메뉴를 고를라치면, 아마도 나는 음식을 먹기 전에 체할 것 같은 사람이니까.
4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젠 웬만한 시즌제 드라마도 맘 편히 잘 보고, 때론 최초 공개되는 신작들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포레스트 검프나, 죽은 시인의 사회, 티벳에서의 7년 등, 수작에 꼽히곤 하는 오래된 영화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꽤 쏠쏠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넷플릭스 플랫폼 안에서 꽤 쓸만한 콘텐츠를 빠뜨리지 않고 보고 싶은 마음에, 기십분씩 하염없이 '수작' 브라우징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아직 못 보고 쌓여있는 시즌제 드라마들 볼 시간도 부족한데, 행여나 내가 다큐멘터리나 다른 장르물을 볼 생각이 들기나 할까 싶었는데 웬걸. 기우였다. 최근 시청한 다큐멘터리나 예술 영화들은 '나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작인 경우가 많았다.
그중, 분명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메시지들이 담긴 작품들이 있어, 마음속에 선명한 잔상으로 남은 작품들을 추천해 보고자 한다. 당신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 ㅣ들여쓰기 부분은 넷플릭스에 작품 개요를 한글 그대로 옮겼다.)
1. 브레네 브라운 - 나를 바꾸는 용기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면의 결핍과 두려움은 극복해야 하는 감정에 불과한 걸까? 공감과 유머의 작가 브레네 브라운과 함께라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 적은 많지만, 넷플릭스를 보고 책을 산 첫 주인공. (그것도 원서를 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불안, 공포, 결핍, 두려움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열강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브레네 브라운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깊은 고민과 성찰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잘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이 느껴진다. 어느 누구나 '두려움'과 '나약함'을 갖고 살지만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끌어안아야 하는지, 삶에 어떻게 '담대하게' 맞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나약한 존재 모두를 '엄마'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그녀의 열강, 꼭 볼만한 콘텐츠로 추천하고 싶다.
2. 아메리칸 밈
패리스 힐튼, 조시 오스트롭스키, 브리트니 펄린이 떴다. 소셜미디어 스타가 직접 전하는 인터넷 제국의 비밀. 환호와 비난이 교차하는 네트워크의 세계로 초대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베인, 틱톡 등,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의 '플랫폼'들은 오늘도 더 예쁘고, 더 멋지고, 더 화려하고, 더 떠들썩한 인생의 순간들을 큐레이션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자신을 어떤 특정 방식으로 소위 '브랜딩'하는 세상 속에서, 21세기의 부와 권력은 바로 '유명세 FAME'에 달려 있다. 바로 그 유명세를 타기 위해,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빨간 '하트'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려는 요즘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허상은 무엇 일지를 때론 공감도 하고, 관찰도 하면서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는 다큐멘터리.
3. 앨런 디제너러스 - 공감 능력자
15년 만에 스탠드업 무대에 선 앨런. 유명하지, 돈 많지, 남부러울 것 없는 스타가 된 그녀의 이야기가 여전히 공감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엘런이다, 일단 한번 보시라.
언젠가 앨렌 디제너러스가 진행하는 토크쇼 클립들을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서 몇 번 보고 난 뒤, '아, 이 사람은 정말 뼛속까지 좋은 사람이구나'를 느끼고,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앨런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해주는 본능적이고 특출 난 재주를 가졌다. 그녀의 토크쇼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편안한 공기'는, 바로 앨런이 보여주는 상대에 대한 '수용'과 '공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시간 조금 넘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들부터 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단 너무 재미있다.
4. 미니멀리즘 Minimalism :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 새롭고 더 근사한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행복과 물질의 관계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이라는 화두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였다. 더 갖고, 더 소유하고 싶은 인간과 세상의 속성을 뒤로하고, 더 비우고 가벼워지는 삶을 택한 두 남자의 '미니멀리즘'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왜, 오늘도, 무엇을 욕망하며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남자의 과감한 '버림'을 통해 영감을 받고 인생의 변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형 아이폰을 사기 위해 사나흘 노숙을 하는 현대사회의 인간들에게, 과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의 화두를 던지는 수작.
5. 토니 로빈스 I am not your guru 멘토는 내 안에 있다
라이프 코치 토니 로빈스가 진행하는 초대형 세미나 ‘운명과의 데이트’. 이것은 발견으로 가득한 여정이다. 그 감동의 순간과 뒷이야기를 담은 6일간의 기록.
무너지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인생의 Guru를 찾는 이유는 '변화에 대한 절실함'과 '절박함' 때문이리라. 토니 로빈스는 '인생'에 대한 강연을 전 세계로 다니곤 하는 유명한 라이프 코치로, 그의 강연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엔터테인먼트 '쇼비즈'의 한 장면일까 의심도 하게 된다. 하지만 토니의 특별함은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돼요'라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스스로 나의 절박함을 깨닫고 절실함을 털고 일어나게 하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토니는 자신이 'Guru'가 아니라고 말한다. 분명 이 다큐멘터리는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잘 걸러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서 울컥하는 뭔가가 용솟음친다.
6. 나는 마리스 I am Maris
거식증을 앓던 10대 소녀. 결국 병원에 입원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했다. 퇴원 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요가 덕분. 요가의 치유력과 자아 인식으로 다시 일어선 그녀.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그간의 여정을 밝힌다.
10대 소녀인 마리스가 요가 강사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다큐멘터리. 공황장애와 거식증, 우울증, 불안으로 수도 없이 손목을 긋는 자학까지 서슴지 않았던 마리스. 인생의 마지막 변화를 위해 선택한 요가가 마리스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목격할 수 있다. 요가의 장점을 충분히 느껴 보았고 요가 수련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린 마리스의 좌절과 고독함이 절절하게 와 닿는 다큐였다. 나약했던 한 소녀가 자신의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절실함이, 결국 어떻게 세상 전부를 바꿔놓았는지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7. 로마 ROMA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70년대 멕시코. 바깥세상만큼 가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아카데미 수상 감독 아론소 쿠아론이 한 가족의 삶을 생생하고 섬세하게 전달한다.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3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모든 시퀀스'들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고, 그렇게 '중허지 않은' 아무개들의 인생의 굴곡들이, 한 사회와 시대,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느긋한 롱테이크로 관객을 집중하게 하는 연출, 마치 당시 그대로를 재현한 것 같은 세트와, 인위적이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 대사와 배경음, 감정선 모두가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된 예술이었다. 역사와 시간 앞에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수작. 오늘의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또 끌어안으며 '버티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