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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un 03. 2019

아스달 연대기

투머치 설명으로 느낀 애꿎은 자격지심

아스달 연대기 첫 회를 기다리다가 '스페셜 영상'이 시작하는 바람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슉' 김이 빠져버렸다. 마침 한국에 머무르던 중이라, 요즘 잘하지도 않는다는 '본방사수'를 해볼까 했는데. 넷플릭스 구독 외엔 별다른 TV 시청을 하지 않는 내게도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건, 새로운 소재라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고, 자그마치 540억이라는 투자가 이루어진 '대작'인 만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장황하기 짝이 없는 스페셜 방송이라니.

스페셜 방송은 시청률 높은 드라마로 한주 더 시청률 뽑아낼 때나 만드는 '짜깁기' 아니었나. 해당 방송이 '기대감을 높였다'는 어마어마한 보도 자료가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기대보다는 '무시'만 느끼고 대략 30분 만에 TV를 껐다. 스페셜 방송에 주연 배우들이 출연해 '새로운 시도', '새로운 장르'라는 얘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는데.


요즘처럼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끌고, 관심을 끄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제작비를 쏟아붓고, 넷플릭스 방영까지 될려치면, 절대로,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압박감이 PD와 작가를 너무 힘들게 했을까. '제발 한번 봐주세요. 진짜 돈 많이 들였어요. 일단 이해만 하시면 분명 재밌을 거예요'라고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설득하느라 진을 뺀다. 300페이지짜리 책 중에 150페이지가 목차인 책 같았다. 3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보기 위해서, 'Skip' 버튼도 못 누르는 5분짜리 광고를 보는 느낌.  




부자연스러워졌다. 인물들의 모든 대사에 '설명'이 따라붙었다. 상황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을 대사에 녹여보려는 시도겠지만, 이건 정말 '투 머치too much'일 수 있다. 자연스레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게 되는 사실, 반전, 배경까지도 '나올 때마다' 듣고 이해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모든 장면에 '시청자가 상상해도 될 여지를' 모두 날려 버리고 쉴 새 없이 자막을 넣는 느낌.


이런 장르가 만들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그걸 감안하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시청자의 수준을 아무리 낮게 보더라도 스페셜 영상으로 모든 걸 설명하고 시작해야 하는 드라마가 과연 쉽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일지 모르겠다. 그냥 2회에서 은섬이가 도망가는 장면, 도울이가 은섬이를 따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했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치 않았을까. 자고로 방송 편집이란 건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로 진득하게 갔으면 좋겠다.


각 부족과 나라의 상황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를 수 있다는 설정은 이해되지만, 어차피 회차가 진행되면서 모두가 곧 '같은 말'을 쓰는 상황만 펼쳐질 것이 뻔한데, 어디가 쓰는 말은 '외계어' 같고, 어디는 '우리말'을 쓰며, 어떤 사람들은 '시조를 읊듯이' 대화하니, 부족과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이질감이 든다. 게다가 탄야와 은섬이는 '어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송리단 길에서 데이트 중인 연인' 같다. 다들 '읍니다, 습니다'하다가, 나중엔 '당근 당근 야자타임'하다가, 갑자기 '나는 푸른 객성의 아이야. 와한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해'라고 대사를 치고 만다면, 보는 내가 너무 오그라든다.


은섬이 도울이-사실 도울인지 도우리인지, 도우미인지 알수 없는-라는 말을 타고 도망가는 2회에서 '칸모루'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장면 전환을 하면서 '칸모루'가 왜 대단한 말인지를 굳이 설명을 해야 한다면, '자 다들 교과서 펴'라는 소리를 들은 '교실로 뒷목 잡혀 들아가는 느낌'이 든다.


이런 류의 연출과 대사처리는 '어색함'말고는 남길 게 없다. 굳이 모든 장면에서 모든 걸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이때다 싶어 '밑줄 쫘악', '돼지꼬리 땡땡'을 끼워 넣은 것 같다. 16부작 드라마에서 16부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드라마들도 있는데. 마치 '집중하고 잘 봐'라며 시청자 이해를 돕기 위한 대사를 십자수로 떠가는 느낌이다.


인물 관계도 정도야 완전 Okay. 하지만 모든 '뒷이야기'는 진짜 '뒤에' 듣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며어어어언.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정도 제작비와 노력을 들여 '대작'을 만들려면, 애초에 3부작 시즌제로 18회를 만들고 싶었다면, 차라리 24회, 32회, 60회로 기획하고 편성해 '느긋하게', '진득하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굳이 안 팔리는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남은 시간'에 전전긍긍하면서 말이 빨라지고 자꾸 설명만 늘어놓는 홈쇼핑처럼 굴지 않아도, 고객은 마음에 들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것이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영화를 보고도, 대체로 관객은 무언가를 얻고 나온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마블'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이제 '엔드게임'이 깔끔히 마무리됐으니 시리즈를 모두 모아 '정주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마블의 세계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블이 좋고 재미있어서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받은 것이다. '내가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가 궁금해 '다시 보기', '뒤로 감기'를 누르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콘텐츠의 자체의 힘으로 터뜨려야 한다. '동시통역'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16회는 '교실' 코스프레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즘 시청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다. 'LIKE'를 누를 마음이 들게만 해준다면 방영 채널이 뭐든, 콘텐츠의 길이가 어떻든, 'N차 관람도 마다하지 않는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잘 만든 콘텐츠에 '성덕'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시즌 8까지 나온 GOT, <왕좌의 게임>도,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시즌 2에서 차마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을 시즌 5에서 알게 된다 하더라도 '#핵소오름'이 해시태그로 달리지, '#난해', '#이해불가', '#시청포기'가 해시태그로 달리진 않는다. 오히려 그 '궁금해 미치겠는 포인트' 때문에 몇 년이 걸리더라도 '오매불망'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곤 한다. 그만큼 요즘의 콘텐츠들은 '재밌게', '잘빠진', '빠져들게' 등의 키워드에 방점을 찍는다.


굳이 '참고 봐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2부작까지 갈 흥미가 안 생기는데, 3부작에서 '제대로 재밌습니다'를 말해야 뭐하나. 초장에 'SKIP', 'SWIPE' 누르게 만들면 3부작까지 다다를 수가 없다. 3부까지 '참고 볼' 인내심이 없다. 유튜브 동영상 '시청 지속시간'은  그래서 중요하다. '끝까지 보고 싶은 영상'이 아니면, '대체제'가 너무나 많은 게 작금의 콘텐츠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석테일'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김원석 PD가 제작 발표회에서 언급한 부분이라고 한다.  

“기대는 조금 낮추시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 같이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적어도 1, 2회는 꼭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첫 방송이 끝나고 본인의 SNS에 남긴 심경글이 또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아프니까”

참고로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는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였다. 닉네임에 걸맞게 편집의 묘라도 살려주시면 어떨까.


여기에 늘어놓기도 입 아픈 주옥같은 드라마들을 집필했던 김영현, 박상연 작가까지 합류했는데, '좀 어려우니까 잘 이해하시고 참고 봐주세요'로 가면 안 된다.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작가와 PD의 진짜 능력일 테니까. 제대로 풀었어도 실패할 수 있는 게 드라마인데,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하고 봐 달라는 건, '맛은 없을 수 있어도', 리뷰는 '미슐랭'으로 남겨 달란 말이다.


식당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고객에게 '미슐랭 별점을 받는다는 의미와, 무슨 재료를 넣어서 만든 건지 하나하나 설명하기 위해 열 장 짜리 전단을 뿌리고 '설명 다 듣고 나니까 왜 미슐랭 레스토랑인지 알겠지?'라고 물어볼 수는 없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뭘 넣어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맛을 본 순간 'JMT'라서 '그릇까지 싹싹 핥아먹는 건' 오로지 시청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다고 남겨도 시청자를 욕할 수는 없다.

뇌안탈의 이름은 '네안데르탈'에서 왔다는 설명을 들어버리는 바람에, 보면서 'A는 공들여 지은 이름 같은데, B는 왜 대충 지은거 같을까 라는 상상만 잔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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