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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un 17. 2019

만들어진 이미지, 비주얼 메모리, 또는 허상

넷플릭스, 블랙 미러, 현실에 눈을 감다

(*스포일러 주의)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정말로 이런 이야기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꽤나 몰입해, 나만의 '블랙 미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대 사회의 인간이 어디서나 마주하고 있고, 미래의 우리가 앞으로 절대로 외면하지 못할 그것. 바로, 블랙 미러. 전원이 꺼져 있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스마트폰을 상상해 보자. 그게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을 어둡게 비추는 '블랙 미러'다. 


LCD 모니터든, 스마트폰이든, TV든, 우리 모두는 '비주얼'에 매여 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정보와 생활 팁, 인생의 교훈을 얻고, 손가락으로 감정을 나눈다. 진짜 대화다운 대화를 위한 유선 통화를 해 본 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13인치짜리 블랙 미러를 마주하고 있다. 나의 촉각을 지배하며, 하루에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 배터리가 끊어질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는 나는, 길도 찾을 수 없고, 추억도 만들 수 없고, 대화도 나눌 수 없는, 불안하기만 한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하는데, 가령 이런 것들이다.

전 세계를 클릭 몇 번으로 잇는 페이스북이 사라진다면? 인스타그램 서버가 해킹되어 전 세계 수억 명의 모든 '비주얼 메모리'가 사라진다면? 스마트폰 기술이 더 발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의 모든 것들이 공개된다면? 해외여행을 가서 그 누구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법으로 모든 것이 금지된다면? 기억력이 좋지 않은 이가, 중요한 정보를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더 이상 스마트폰 '캡처'를 못하게 된다면? 나의 5년의 모든 추억이 담긴 아이클라우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넷플릭스에서 시즌 5까지 방영되고 있는 [블랙 미러]는 나의 이런 엉뚱한 상상을 넘어서, 더 공포스럽고, 이상하며, 괴기스러운, 미래의 암울한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는 우리의 '블랙 미러'와 관련한 기술 발전의 폐해, 정보 공유의 그늘, 통제 불가능한 미래의 암울한 단면들을 빼어난 연출로 그려낸다.


지금까지 블랙 미러 모든 시즌을 쭉 봐왔지만, 시즌 5의 세 작품인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스미더린], [레이철, 잭, 애슐리 투] 그런 면에서, 비주얼 메모리, 이미지, 또는 허상에 대한 공통적인 주제를 말하고 있다.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할 블랙 미러,
그러나 우리는 블랙 미러 때문에 우리의 '진짜 눈'을 감는다는 것.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두 친구가 오래전 즐겨했던 게임의 최신판이 VR로 출시되고, VR세상 속에서 리얼한 싸움을 즐긴다. 하지만 결국 둘은 예전에 즐기던 게임이 아닌, 게임 속의 다른 유혹에 빠져들고, 우정과 사랑, 현실과 공상은 모두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리뷰]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LCD 모니터 속의 VR 세상이, 얼마나 진짜에 가깝게 구현될 수 있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자극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진짜와 현실을 구별할 수 없게 될 정도의 생생한 느낌. 유혹 그리고 중독. 게임 접속을 위해 VR기기를 착용하면 주인공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뜨지 않은 상태가 된다. 가족, 사랑, 내 눈앞의 배우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VR속 환각과 중독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중독이 결국,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온기와 애정에 눈을 감게 만든다는 주제. 결론을 보고 나면 주인공 모두가 비틀거리는 인생의 위기에 '눈을 감아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딱, 한마디 더] 설정이 참신하거나 신기하다기보다는, 주인공들이 감정을 설명해 내는 모습이 잘 와 닿았던 에피소드


[스미더린]

런던 시내에서 소셜미디어 회사 스미더린의 직원이 납치를 당하고, 그를 납치한 범인은 인질을 붙잡고 소셜미디어 회사의 CEO와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한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리뷰] ★★★☆☆

세상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으로 공유되는 세상. 영국 최고의 소셜미디어사인 스미더린은 사용자가 스미더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중독'시켰다. 그렇게 해야만 서비스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면서, 사용자를 묶어둘 수 있으니 말이다. 스미더린 사용자였던 주인공이 운전 중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심각한 자동차 사고로 약혼녀를 잃게 되고, 자신이 약혼녀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스미더린 CEO와 통화하며 울분을 터뜨리고 싶어 한다는 스토리. 또 다른 블랙 미러인 스마트폰이, 운전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진짜 현실-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에 눈을 뗄 수 없게 되어 운전 시야가 작동하지 않는-에 '눈을 감게' 만들었고,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잃는다는 내용. 이 에피소드의 가장 중요한 역설은, 모든 사용자를 '중독'에 빠지게 한 스미더린의 CEO가, 이른바 '스마트폰 디톡스'를 위해 모든 연결이 차단된 사막 한가운데서 '묵언 수행'을 한다는 설정이다. 결국 통화를 나눴지만 주인공은 사살당하고, 스미더린 CEO인 바우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현실에- 눈을 감고' 묵언 수행에 들어간다.


[딱, 한마디 더] 현실 세계에서 이미 너무나 잦게 목격할 수 있는 소재-스마트폰 사용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라, 소재가 참신하진 않았고, 유명한 주인공 앤드류 스콧의 내면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꽤나 인상적.  



[레이철, 잭, 애슐리 투]

모두가 선망하고 사랑하는 팝스타 애슐리 O. 그녀를 본떠 만든 인공지능 로봇 인형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레이철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다. 하지만 레이철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애슐리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리뷰] ★★☆☆☆

이제 모든 세상은 '이미지'가 지배한다. 모든 이들이 시각적인 이미지에 빠져들고, 인간의 모든 기억은 '비주얼 메모리'로 저장되며, 이제 사진마저도 식상한 사람들은,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 사진을 찍기 좋은 식당이 맛집이 되고, 그럴싸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관광명소는 퇴물로 전락한다. '인스타그래머블' 스폿을 찾아가기 위해, 여행 일정을 바꾸고, 누구보다 스릴 넘치는 사진으로 '사랑'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목숨을 던진다.' 그런 세상 속의 아이돌 '애슐리', 그녀를 사랑하는 레이철, 그리고 애슐리를 본떠 만든 로봇 인형 '애슐리 투'.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대중에 '눈에 보이는' 스타의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며, 진짜 현실의 애슐리는 '만들어진 비주얼'로 목숨을 연명할 뿐이고, 외롭고 쓸쓸한 현실에 눈감고 싶은 왕따 소녀 '레이철'은, 자신이 그리는 애슐리의 '허상'과 같은 이미지 외엔, 의지할 것도, 믿을 것도 없다. 모두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서 '눈을 감고' 있다.


[딱, 한마디 더] 로봇 인형인 애슐리 투가 만들어지고, 코마 상태의 애슐리의 본모습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약간 과한 느낌이어서, 중반 이후의 에피소드가 '청소년 성장 코미디물' 같은 인상을 주고 말았다.




거울은 나를 비춘다. 비주얼 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외면하고 싶은 나의 본모습. 하지만 '블랙 미러'는 클릭 한 번이면, 초라하고 비루한 나를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서 쉽게 벗어나게 해 준다. 스마트폰 속 나보다 예쁜 나는 없고, TV 화면 속 스타들의 실제는 때로 추악하며, 현실의 나는 비루하지만 게임 속 나는 세상을 구하는 전사다. 이렇게 우리 주변의 '까만 거울'들은, 진짜 우리가 바라봐야 할 현실에 눈을 감게 만든다.


앞으로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바스락 거리는 종이 위의 둥글 거리고 매끈한 활자를 바라보는 시간 보다, 목소리를 듣는 시간보다, 블랙 미러를 바라보는 시간으로 우리 인생을 메꿔나갈 것만 같다. 한시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맑은 하늘 한번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블랙 미러'를 손에 쥐고, 비주얼 메모리에 목을 맨 채 살아가게 될까.



* 이 글은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에 선정되어 쓰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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