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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10. 2020

<16화> 아직은 춤이 아닙니다

파닉스 배우는 아이처럼, 기획사 첫발 디딘 연습생처럼

다양한 연령, 다양한 사연


기초 Level-1반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춰본 적이 없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쌤처럼 멋지게 춰보고 싶어 온 사람, 조금 춰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기본부터 배우고 싶어 멀리서부터 온 사람(KTX 타고 매주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강생들도 있다), 다른 장르의 춤을 오래 춘 사람 등등 실력도 경험도 다양했다. 다른 반에는 현직 댄스강사까지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쌤의 교수법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나이도 고등학생부터 50 전후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건 특히 놀랍고도 기쁜 일이었다. 기존 댄스학원에서 K-pop 댄스 배울 때 잘 적응해서 10대 20대들과 어울려 배우긴 했지만, 최고령자라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내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 시대착오적일까 봐, 혹은 가볍게 낸 의견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일까 봐 항상 자기검열을 했고, 이 학원은 어떤가 둘러보러 온 10대가 나를 보고 '40대 아줌마라니, 여기는 주민 생활체육센터 분위기야?' 하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눈치도 봤다. 그런데 여기는 내 나이대 사람들도 꽤 있고 (아마도) 최고령자가 아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인적사항과 히스토리를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은 만큼 자신한테만 집중하라고, 남들 실력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셨다. 특히 춤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에게, 백지에 그리는 것이 더 쉽지 추던 사람들에게 밴 안 좋은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 더 어렵다면서 기죽지 말라 격려하셨다. 



Level-1에서는 춤을 배우지 않는다


제일 기초반에서는 석 달 과정 내내 춤을 배우지 않는다. 아직은 춤이 되기 전 단위인 기본 동작을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목적이다. 영어로 치면, 파닉스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직은 단어도 아니고 문장이 되기엔 더더욱 먼, 알파벳 1~3개가 모여 어떤 발음을 내는지 익히는 과정. 그리고 파닉스는 아무리 재미있게 익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다 익힐 때까지 좀 지루하다. 


하지만 파닉스를 익히고 나면 버벅거리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다. 물론 파닉스 없이도 영어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미 기초 없이 복잡한 안무를 배웠을 때 문제가 많다는 체험을 한 뒤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솔레이션(다른 부위는 움직이지 않은 채 한 부위만 움직이는 것) , 웨이브, 기본 스텝 같은 것을 수업마다 세네 가지씩 배우고, 다음 시간에는 첫 시간부터 배웠던 것을 다시 쫘악 훑으며 점검을 마치고서야 새로운 동작을 익혔다. 배운 동작이 누적될수록 이전에 배운 것을 연습하고 교정하느라 2시간 수업의 2/3가 훌쩍 지나갔다. 

자신의 모습이 나오게 폰을 거울에 기대 놓고 동작을 녹화하는 시간. 영상으로 봐야 자신이 어떻게 추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하신다. 가운데 밀리터리 바지가 나.


목 아이솔레이션 같은 건, 제일 처음 배운 거라 이미 8번 수업하고 연습을 거듭해도 여전히 난항이다. 목아! 제발 내 어깨에서 멀어져 주라...


칠성사이다 광고에서 목 아이솔레이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방탄소년단 진.(세 번째 등장) 맨날 춤 제일 못 춘다고 구박받는 맏형이지만 목 아이솔레이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선생님이, 기획사 연습생들은 다운스텝(기본 중에 기본인, 정박에 무릎을 구부리는 스텝)만 6개월 하기도 한다 하셨다. 하긴, 댄스동아리나 학원에서 춤 잘 추는 걸로 유명하던 연습생들도 기획사에 들어가면 우리들처럼 기본기부터 다시 한다고 들었다. 기분부터가 딱 기획사 연습생이 된 것 같다. 



책임지도란 말의 무서움


일반인에게 댄스 안무가로 제일 유명한 사람은 배윤정쌤이다. Mnet의 아이돌 데뷔 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호랑이 선생님 말이다. 4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에서 연습생들은 윤정쌤만 나타나면 하나같이 덜덜 떨었다. 

그런데 우리가 딱 그 짝이었다. 우리가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도, 쌤이 호통을 치는 것도 아닌데 한 명씩 봐주기위해 쌤이 다가오면 엄청 긴장했다.  


'책임지도'를 내세운 만큼 마일리쌤은 한 명 한 명 꼼꼼히 교정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는 일반 학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 지도를 받기 위해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낸 것이다. 


런데, 선생님이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던지! 선생님 눈만 보면 갑자기 아득해지는 느낌? 스텝이 이상하니 다시 해보라는데, 방금 무슨 스텝을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고 멍하게 서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어떻게 해보라 고쳐주셔도 몸이 안 따라주다 보니까, 그래서 다시 해도 똑같이 틀리게 하고 있으니 막 자신이 바보 멍충이 같고 그렇다.  


선생님도 그걸 아신다. 자기를 왜들 이렇게 무서워하냐고. 쳐다만 봐도 긴장으로 몸이 굳어서 잘하던 동작도 이상해진다고. 그래서 되도록 부드럽게, 칭찬과 격려도 많이 하려고 하시지만 그렇다고 지적을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책임지도라는 것은 그래서 참 무섭다. 하지만 그 과정의 긴장감이, 영 안 되는 동작을 화두처럼 붙들게 하고 어느 순간 결국 할 수 있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다음 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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