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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07. 2020

<17화> 모든 몸짓에는
과거가 묻어난다

나를 스쳐간 온갖 춤과 운동까지도

일생 내가 해왔던 몸짓 모두가 누적된 것이 현재의 나

아... 그런데 베이직 Level 1반을 시작하면서 나는 선생님의 분류상 "꽤 춰봤던 사람"에 들어갔다! 어떤 동작을 배웠을 때 어버버하고 있으면 "그게 아니고 이렇게... 애구 잘못 습관이 들어서... 그거 고치는 게 더 어렵다니까" 하시는 거다.


억울합니다 쌤. 저는 그 동작을 생전 처음 해보는 건데요, 나쁜 습관이 들 겨를도 없었다고요 ㅠㅠ 


11개월간 주 3회 K-pop 댄스반 수강이력은 얼마나 쳐 주는 것이 온당할까? 친구들까지 "너 꽤 오래 배우지 않았니? 그런데 기초부터 다시 배운다고?" 하는데, 기본동작 그 어느 하나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체감상 한 2-3개월 맛보기 한 기분일 뿐이었다.


나의 억울함을 곱씹다 보니 이상해, 언젠가 들어본 소리야. 완전히 까먹었던 스무 살 적 기억이 번득 살아났다. 


아, 나 탈춤 췄었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4년....

고등학교 탈춤부 때는 매주 연습 외에도 두 번의 학교 축제 때 한 달간 밤늦게까지 공연 연습을 했었고, 대학생 땐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이 계신 각 지역 탈춤 전수회관에서 일주일씩 합숙하면서 하루 종일 춤을 배웠었다. (어라, 나는 아이돌 경연프로에서 연습생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춤 연습하는 걸 짠하게 보곤 했었는데,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니!! 이 신기함은 뭐지)


탈춤이 거기서 왜 나와? 하겠지만 어쨌든 모든 몸짓에는 과거가 어떻게든 묻어나는 모양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양주별산대 전수회관에서 춤을 배울 때였다. 무서운 전수조교들의 감독 아래 기본춤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한 조교가 나한테 소리 질렀었다. "넌 왜 은율(은율탈춤) 느낌이 나냐? 예전에 배운 건 버려!! 여긴 양주라고!"


아니 저는 그 춤은 듣도보도 못했는데 그 느낌으로 추고 있다 하시면....ㅠㅠ 


나중에 찾아보니 은율은 황해도 지역인데,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강령(탈춤)과 가까운 지역이었다. 아마 강령탈춤 스타일이 배어 나왔던 모양이다. 


살면서 나를 스쳐간 모든 종류의 댄스 무브 -볼룸댄스, 에어로빅, 줌바-까지, 다 짬뽕이 돼 내 몸에 각인돼 있는 모양이구나. 춤 동작뿐 아니다. 3년간 운동으로 했던 필라테스와 발레핏도 마찬가지다. 항상 광배근(팔 아래-가슴 옆쪽 근육)에 힘을 주면서 어깨를 바짝 내리고, 동작을 할 때 손끝부터 발끝까지 에너지가 뻗치도록 해야 했는데, 힘 빼고 리듬을 타야 할 춤에서도 나도 모르게 온몸에 빡! 힘을 주고 있었다. 발레음악과는 비교도 안되게 빠른 팝 음악에 맞출 때는 힘이 들어가면 보기 안 좋은 건 둘째치고 박자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안된다. 

 


교정하는 과정의 속상함을 이겨내야 해


일반 댄스학원 취미반에서는 수강생들에게 지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누군가 티 나게 동작을 잘 못하더라도 전체를 향해 뭉뚱그려서 말하거나 그 부분을 반복해 다시 설명해줄 뿐이다. 사실 춤은 '흥'이고 즐거우려고 추는 건데, 전공자도 아니고 재미로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엄격히 할 시간도 없고 기를 죽여서 흥미를 잃게 할까 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해가지고 춤은 도통 늘지 않는다. 


마일리 선생님의 수업을 시작하고 5-6번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즐거움보단 괴롭고 주눅이 들었다. 2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지적받는대로 '아~ 네! 이렇게요?' 하고 고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론 알아들었는데 몸은 요지부동 똑같이 틀리고 있으니, 내 머리를 막 쥐어박고 싶었다. 선생님이 근처에만 와도 심장이 내려앉으면서 몸이 굳어 잘하던 동작까지 틀어지니 속상하고 억울했다. 


7주 차쯤 들어서서야 지적을 들어도 덜 창피할 만큼 마음이 단련됐다. 강습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긴장도 풀리고, 간혹 "처음보다 정말 많이 나아지셨어요. 연습을 많이 하셨나 봐요!" 하는 말씀이라도 들을라치면 하늘을 날 것처럼 기분이 좋아서, 지하철 안에서 슬쩍 스텝도 밟고 리듬을 타면서 돌아왔다.  



거울 속의 나와 영상 속의 나는 전혀 다르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암 웨이브 연습. 앞 분홍색 팬츠가 마일리쌤, 가운데 검정 팬츠가 나. 저때만 해도 참... 지금은 된다! 연습해도 절대 안 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수업 중에 종종 폰을 가져오라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전면 거울 앞 바닥에 폰을 기대 놓고 각자 자신의 모습이 나오게 선 다음 배운 동작을 연습하며 영상녹화를 한다. 반드시 영상으로 확인해야 자신이 어떻게 추고 있는지 안다는 것이다.


아니 수업 내내 내 모습을 보면서 하고 있는데, 굳이...?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괜찮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귀찮게 녹화하고 확인까지 해야 하나?


그런데 안 그랬다. 깜짝 놀랄 정도로 거울 속의 나와는 다른 어버버가 있었다. 나는 분명 거울로 확인해 가며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으로 보니 가만히 있어야 할 턱이 몸을 따라 들썩이지 않나, 부드러워야 할 웨이브가 힘이 빡 들어가 삐걱대고 있었다.


선생님이 지적하실 때는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선생님은 전문가라 일반인들은 모를 사소한 오류까지 순식간에 잡아내시네' 했었는데, 웬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제3자의 눈(영상)으로 보니 나는 정말 어색한 초보자일 따름이었다.


거울로 완벽히 체크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뇌의 수용능력이 충분치 못해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몸을 움직이라 명령도 해야 하고, 귀로는 박자를 맞춰야 하고, 눈으로는 내 동작이 선생님과 같은지 비교도 해야 하니까 완벽히 보질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댄스학원에서 직접 춤을 배우거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함께 출 기회 갖기가 어렵다 보니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따라 추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이 많다. 정말 잘 추고 싶다는 진지한 열망이 있다면, 거울에 폰을 양면테잎 같은 걸로 붙여놓고 자신의 모습을 자주 촬영해가며 연습을 하길 추천한다. 촬영한 걸 보며 내 동작이 이상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나니까 고치기가 훨씬 쉬웠다. "내가 나 스스로의 선생님이 되는 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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