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아 Oct 19. 2020

<18화> 먼저 잘 춰야 춤연습을 한다

근육이 많아야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고

반대입니다. 반대라고요.


잘 못 추니까 연습을 많이 해서 발전시켜야 하고, 운동을 해야 근육을 만들어야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아닙니다. 난 반대라고 믿는다. 그런 흔한 일반론이 맞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연습량이 많은 순서대로 춤을 잘 출 것이고, 근육이 건강상으로나 미용상으로 그렇게 좋다는데 운동을 실천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접근하니까 춤이건 운동이건 무더기 중도하차자가 나온다. 좋다는데, 하면 된다는데, 왜?


일단 운동부터 말하면 이렇다. 참고로, 나는 사는 동안 꽤 많은 운동을 해왔다. 근래에는 3년 반 넘게 진지하게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에, 간간히 발레핏과 매트 요가를 기분전환으로 병행하고 있다. 작년에 매주 주 3회 출석에 케이팝 안무 하나를 다 외워야 하는 숨 막히는 댄스학원 수업+개인연습을 소화할 때도 그 핑계로 운동을 빼먹은 적이 없다. 그것도 주 3회 1시간 단체수업받는 게 성이 안 차서 다음 수업까지 슬쩍 버티고 앉았다가 연강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플라잉 요가를 특히 열심히 하는 건, 애초에 내가 상체 근육이 많아서다. 남들보다 팔힘이 좋아 고난이도 동작을 잘하니까 우쭐해서. 그러다보니 상체 근육이 더더 발달한다.

이런 건 의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체 근수저로 태어났고(최근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 근육을 자극할 때 느껴지는 쾌감-엔돌핀-을 금세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 중독돼 절로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운동하고 다음날 눈을 뜨면 내 몸이 바로 오늘은 언제 운동 갈 꺼냐고 보챈다. 하루 종일 산책 갈 시간만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그러니 애초에 근육이 적은 사람들이 곧잘 운동을 포기하는 것을 의지박약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굳은 결심으로 센터에 등록했다가도 몇 번 수업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겔겔거리고, 가기 싫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수십 번 가지 말까 하다가 간신히 신발 질질 끌며 가고, 다른 일정이 겹치면 바로 핑계 삼아 운동을 빠지는 유형의 사람들 말이다. 근육이 없으니 운동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뿐 아니라 운동 후 스며드는 그 상쾌하고 개운한 '엔돌핀' 맛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근육량이 적은 사람들은 몇 배의 노력과 의지가 아니면 '꾸준히 운동하고-근육량이 늘고-체력이 강해질 확률'이 상당히 적다. 그 성취감을 확실히 느끼기까지 긴 기간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한다.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서 어느 정도 근육이 단련될 때까지.  


걸그룹 <여자친구>의 막내로, 젖살이 통통했던 엄지가 8-9kg 감량과 함께 탄력 있는 몸매로 재탄생한 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운동을 시켜서 벌 받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젠 자발적으로 열심히 해요."라고. 그 '어느 순간'이 바로 근육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때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누군가로부터 몸에 대해 심하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거나, 실연을 당했는데 그게 외모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큰 충격을 받으면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해 바로 운동에 올인할 수 있다.


잘하니까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춤 연습도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몸치인 거 창피해. 댄스학원 열심히 다녀서 멋지게 변신해봐야지! 클럽에 같은 데도 자신 있게 가고 말이야!'로 성공하는 사람 사실 못 봤다. 야심차게 시작해서 초반에는 몸개그 하는 자기 모습도 웃어넘기며 씩씩하게 다니던 사람도, 몇 달 지날 때까지 별로 나아지지 않으면 웃음기가 사라지다가 결국 얼굴을 볼 수 없다.  


춤도 태생적으로 잘 추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연습한다. 이건 전문가가 판단하기에 잘 추는 사람일 필요는 없고 '자뻑'이나 친구나 가족 몇 명의 평가면 충분하다. 거울에 비친 내 몸짓이 멋져 보이면, 주변에서 칭찬해주면, 신나서 열심히 연습한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눈을 갖추고 돼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느라 더 열심히 연습한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중간쯤인 것 같다. 잘 추지 못하니 연습할 마음이 절로 막 생기지도 않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정도. '배운 거 연습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은 끊임없이 하지만 막상 실제로 자주 하게 되지는 않는다. 거울 앞의 내 모습이 괜찮아 보일 때가 반, 이게 뭐야 할 때가 반. 어쨌든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보니 아주 천천히 발전하고 있다. 


목 아이솔레이션(몸의 나머지 부분은 그냥 둔 채 목과 얼굴만 앞뒤 좌우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본 동작 같은 경우, 그냥 편히 앉아있다가 언제든 할 수 있는 건데도 아예 안 될 때는 정말 하기 싫었다. 몇 초 시도해 보다가는 목 아프고 맞게 하고 있는 건가 감도 안 잡히고 내 꼴이 안습이고 해서. 안 되니까 집중해서 더 연습해야 하는 게 맞는데, 마음은 안 되니까 하기 싫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3개월의 기초과정 내내 선생님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시니까 할 수 없이 조금씩 연습하다 어느 순간 꽤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제야 아무데서나 막 연습한다. TV 보다가, 화장하다가, 갑분 목 아이솔레이션! 


작년에 배웠던 케이팝 댄스도, 내가 90% 이상 잘 따라 했던 곡만 나머지 10%를 마저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지,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이 있는 안무는 상대적으로 열심히 안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결국 '나르시시즘(=자뻑)'으로 사는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보기 싫으면 할 마음이 안 생긴다.  


물론 이쪽에도 예외가 있다. 팀을 이뤄서 무대에 올라야 하는데 자신이 멤버들에 비해 부족할 때. 팀에 피해를 끼칠까 봐, 또 혼자 못 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엄청 연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혹은 사회초년생 때나 그런 장기자랑 무대라도 있는 것이지 이후에는 그런 자극을 받을 일도 드물다. 


이래저래 내 말이 맞다니까? 근수저들이 원체 운동 수행능력이 좋다 보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으쓱하는 기분에, 또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돌핀 때문에 실제로 기분이 좋아져서 더 달려드는 것이고, 애초에 흥이 많고 춤추는 모양새가 좀 그럴듯했던 사람들이 리듬 타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돼 자발적으로 거울 앞에 서다 보니 점점 더 춤꾼이 되어 간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17화> 모든 몸짓에는 과거가 묻어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