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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Oct 02. 2021

<23화> 안무를 외우는 나만의 비법

내가 왕년에 공부 좀 해봤다 아이가

일단은 외우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부터


사실 제목은 낚시다. 내 수준에 비법이라니. 정확히는 내가 2년 반 정도 댄스를 배우며 정립한 개인적인 '루틴' 소개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외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자기가 만든 방법이 최고다. 학창 시절 한참 외국어를 배울 때도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이 친구들마다 다 달랐다. 누구는 어근, 어미 등 구조를 분석해서, 누구는 단어의 소리를 비슷한 우리말과 대입해서 연상법으로, 누구는 문장 째로 소리 내서 읽으며, 누구는 연습장에 수백 번 쓰는 '빽빽이'로...


그런데 왕도는 없었다. 친구의 방법이 좋아 보여서 따라 하다가도 결국은 안 맞아서 자기 방식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사실 디테일은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단어를 외우고자 하는 의지와 시간 투자였으니까. 


안무 암기가 그리 중요해?


나는 8개월째 매주 이틀 반 사이에 3분 30초 내외의 곡 전체에 맞춘 안무를 외워 간다. 목요일 저녁 7시 업로드된 선생님의 안무 영상을 보면서 연습한 뒤 일요일 오후 4시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각자 본업으로 바쁜 와중에 취미로 댄스를 배우는 성인들이 매번 안무를 다 외워가는 건 큰 부담이다. 시간이 있다고 한들, 연습할 장소가 없는 것도 문제다. 가족들이 있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얼레벌레 연습하는 모습 보이는 것도 민망하고, 연습에 필수적인 거울도 작기만 하니까. 선생님도 그런 상황을 다 아신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외워가는 것이 좋다. 예습 없는 수업 참여는 춤을 배우는 즐거움은커녕 굉장한 스트레스가 된다. 정신은 하나도 없고, 다음 동작이 무엇인지 모르니 몸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펴질 새가 없다. 선생님이 빠진 채 학생들만 춰보는 단계에 이르면 거의 정신이 아득할 정도다. 십수 번 반복해서 드디어 안무를 좀 외웠나 싶으면? 이제 좀 멋지게 춰보자 했는데 허무하게 수업은 끝나고 만다. 


나의 안무 외우기 루틴


1. 노래를 많이 듣는다

안무는 음악에 춤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니, 먼저 그 곡의 분위기, 리듬에 충분히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귀로 듣는 것도 좋지만 뮤비를 보면 그 곡의 분위기를 빨리 캐치할 수 있어서 꼭 뮤비를 보면서 감상하곤 한다. 섹시한지, 화려한지, 파워풀한지... 안무가 원 가수의 안무와 다르더라도 그 바이브는 갖고 오기 때문에 가수의 잔상이 남아 있으면 춤을 출 때 분위기 내기가 좋다.     


2. 가사 내용을 숙지한다

안무는 또한 가사 내용을 몸짓으로 형상화한 것이 대부분이니까, 가사를 열심히 챙긴다. 외국어로 되어 있을 때는 우리말 해석을 꼼꼼히 찾아본다. 가사는 시와 같아서 읽을 수 있다고 해석이 안 될 때도 많은데, 검색해보면 자발적으로 해석을 올려놓은 고마운 블로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상징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엉뚱하게 해석한 경우도 있어서 꼭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가면서 보곤 한다. 


3. 곡의 구조를 분석한다

팝송 가사 번역을 하는 분들 중에는 친절하게도 곡을 구조화해놓고 파트별로 번역을 제공해 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어떤 곡은 intro / pre-chorus / chorus / 1절 verse / chorus / 2절 verse / bridge / chorus / post-chorus / outro로 구성돼 있고, 각 파트의 가사는 이러하다, 고 말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안무 암기에도 도움이 된다. 반복해 나오는 코러스라도 2절 뒤에 나오는 코러스는 1절과 달리 네 마디가 생략돼 있다면 그에 따라 어느 동작이 빠졌는지, 브릿지 파트는 완전 새로운 것인지 다른 부분의 동작에서 하나를 따 온 것인지...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구조화되어서 머리에 남는다. 그리고 이런 기억은 꽤 오래간다. 기억을 기댈 뼈대가 있기 때문이다.


4. 천천히 따라 하며 동작을 몸에 각인시킨다

가장 중요한 건 안무 순서를 외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동작을 하나하나 제대로 표현하는 것 아닌가? 그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려면 아무래도 느리게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 영상을 다운받아 놓은 뒤 0.1배속씩 높여가며 연습하는 방식을 쓴다. 처음엔 0.5배속으로, 몇 번 해서 동작이 몸에 익으면 0.6배속, 0.7배속으로... 중간에 엄청 어렵고 복잡한 구간이 나오면 과감하게 0.3배속으로 내리기도 한다. 내 사랑 '다음 팟플레이어'는 단축키 하나로 0.1배속씩 빠르거나 느리게 하거나 반복 구간 설정을 할 수 있어서 엄청 편리하다.  


5. 튜토리얼을 본다

동작을 해설해놓은 튜토리얼 영상이 있다면 원 안무 영상을 먼저 몇 번 연습한 뒤에 본다. 처음부터 해설 영상부터 보면 어느 부분이 포인트인지, 내가 유독 못 하는 동작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자기가 먼저 따라 해 본 동작이 맞는지 확인도 하고, 이해 안 돼서 갸웃하던 부분을 튜토리얼에서 확인하는 식이어야 효율이 높다.      


6. 정속으로 할 수 있어도 때로는 다시 낮춘다! 

음악을 느리게 해 놓고 연습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 선생님들도 많다. 음악 없이 카운팅으로 느리게 연습하다가도, 음악에 맞춰볼 때는 정속으로 틀어준다. 느리게 튼 음악에 귀가 익었다가는 원 속도로 틀었을 때 말도 안 되게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그렇다. 하지만 어쨌든 혼자 연습할 때는 누가 카운팅 해주는 것도 아니니, 나는 느리게 하다가 0.1배속씩 높여서 정속까지 간다.

그런데 그랬다가도 어설픈 부분이 있으면 다시 0.8배속쯤으로 늦추고 표현을 제대로 하는데 집중한다. 근데 느린 배속은 꼭 전날까지만 한다! 자고 일어나면 살짝 느린 음악을 정속으로 인지했던 뇌가 리셋돼서 정속으로 틀어도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나만의 꿀팁이다. 
     


버퍼링 없이 끝까지 다 췄을 때의 행복감


사실 나는 정말 댄스 연습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요즘에는 드문 단독주택에 사는 데다 반지하에 작은 작업실도 마련해 놓았는데, 거기에서 가족들 눈치 안 보고 밤에도 연습할 수 있다. 잡다한 가구들이 없는 빈 공간인 데다 큰 거울도 들여놓아서 연습실로 부족할 것이 없다. 

이 정도면 혼자 댄스 연습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다!

내가 안무를 예습해 가면 다른 수강생들이 어찌 다 외워 왔냐고 칭찬해 주는데, 그런 환경이 있는 걸 알면 반대로 어떻게 못 외워올 수가 있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 4화(https://brunch.co.kr/@infinitysun/11)를 보면 케이팝 댄스를 배우면서 뇌에 쥐가 나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상황에 대해 토로한 내용이 한가득인데, 어느덧 이제는 나만의 방식을 정립할 만큼 컸다. 안무 한 곡을 외우는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두려움은 여전하다. 중요한 일로 바빠서 예습을 못하고 가면(여태까지는 놀랍게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얼마나 따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예습을 안(못) 해오고 반복연습해도 못 따라오는 사람들을 비웃을 수 없다. 나는 더 못 할 것 같아서이다. 천천히 예습해 오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현장에서 바로 외워서 따라 추는 능력은 더 없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미리 익혀서 수업에 가려고 한다. 실력적으로 완벽히 표현 못하는 동작은 어쩔 수 없더라도, 박자에 딱딱 맞춰 망설임 없이 시원한 동작으로 추고 피날레 동작까지 힘차게 마무리하고 나면 너무너무 행복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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