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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Aug 29. 2019

<1화>망설이는 사이에
오늘도 하루만큼 늙었다

40대 중반 아줌마도 할 수 있나요

집에서 1분 거리, 그러니까 건물 몇 개를 요리조리 지나 있는 큰 길가 건물에 댄스학원이 생겼다.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어서, 1분 거리라 하면 안방에서 나와 신발을 꿰어 신고 골목을 지나 건물 계단을 뛰어올라서 3층에 있는 학원 문을 여는데까지 걸리는 실제 시간이 1분이란 소리다. 


원래 복싱 학원이 있던 곳이다. 작지만 대학 선배도, 아들 친구도 다닌 적이 있는 곳이라 지날 때마다 쳐다보던 곳인데, 댄스학원으로 바뀌다니. 


요즘 복싱 학원들은 여성들도 다이어트 목적으로 많이 등록한다. 10년쯤 전에 설렁설렁 다니던 월 9만 9천 원짜리 헬스장에서 G.X(단체수업) 프로그램으로 다이어트 복싱 클래스가 생겨 몇 번 참여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 쉴 새 없이 팔다리를 차대는 고강도 근육+유산소 운동이었다. 선생님을 포함해 우리 모두 몸에서 땀을 폭포수처럼 뿜어냈고, 몸에서 튕겨나간 그것이 다른 G.X 수업을 위해 정리돼 있던 각종 운동기구들에도 사정없이 떨어져서 너무 '드럽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밖에 없다. 근육질의 그 젊은 남자 선생님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으나 자신을 이롭게 한 운동과 30-60대 여성들이 대부분인 수강생들을 '결론적으로' 이롭게 하는 운동의 차이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난이도 조절의 실패로 그 클래스는 두어 달만에 사라졌고, 그래도 이 고통을 이기면 뭔가 나아지겠지 하며 꾸역꾸역 수업에 들어왔던 몇 명 안 되는 수강생들에게는 근육통과 복싱 공포증밖엔 남은 것이 없었다.


잠시 다이어트 복싱에 대한 추억으로 얘기가 샜는데, 하여튼 댄스학원이라니! 드디어 K-pop 각 영역이 완성됐네 싶었다. 대로를 따라 보컬, 랩, 건반, 작곡 등등을 가르치는 실용음악학원들이 여럿 생겨서 이 동네가 대중음악 관련 입시-오디션-취미 학원의 지역 중심지가 되어가나 하는 와중이었다. 이 학원들은 대중음악계로 진로를 꿈꾸는 중고등학생들을 주축으로, 취미반-주로 20대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을 곁다리로 운영한다. 연예예술 특성화고나 대학교 실용음악과, 실용무용과 등의 진학을 위해서, 또 오디션을 뚫고 연예기획사 연습생이 되기 위해서 10대들이 많이 찾는 학원들이다. 크고 유명한 학원의 경우는 엔터테인먼트사 A&R 담당자가 직접 와 학원 내 오디션을 보고 데려가기도 한다. 


근데 왜 내가 들썩들썩, 두근대고, 초조하고, 뭔가 해야 하는데 잊어먹은 듯한 불안감이 드는 거지?


그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몇 주가 흘렀다. 그러고서야 나는 내 마음을 읽었다. 네가 추고 싶었던 거구나? 유튜버 '퇴경아약먹자'가 유행시킨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들에 한참 빠져 있었다. 무려 20년도 더 된 핑클의 춤부터 나온 지 1주도 안된 최신곡 안무까지 자유자재로 추는 외국 젊은이들의 K-pop 댄스 사랑을 보며 자랑스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그들의 젊음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열혈 아미로서 그 모든 것의 시초에는 나의 소년들이 있었지만.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클래스들을 확인했다. Urban, Girlish, Jazz, House, Hiphop, Poppin... 어마어마했지만 K-pop(방송댄스) 취미반도 있었다. 성인, 직장인들을 위한 취미 클래스라는 친절한 안내를 여러 번 확인했다. 하지만... 수업 영상을 보니 어마어마해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취미반이라면서, 거의 전문 댄서들 같이 추고 있었다. 아... 안 되겠구나.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또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다시 초보자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다섯 번 읽고, 다시 영상을 보고, 다시 안 되겠구나 영상을 닫았다. 따로 걸음마 기초반 같은 건 없었다. 다른 댄스학원들을 검색해봤는데 조금 만만해 보이는-나이 든 사람도 있을만한-클래스가 있는 학원들은 너무 멀다. 나는 운동을 위한 학원은 집에서 15분 내 걸어서 갈 수 없으면 나와 인연이 없는 먼 곳으로 친다. 멀면 결국 귀찮아지거나 시간을 놓쳐서 못 가게 되니까 말이다. 무슨 춤 귀신이 붙었다고 매주 3번씩 버스 타고 20분 이상 이동해서 힙합 기초를 듣겠냐고. 


그런데 왜 포기가 안 되느냔 말이다. 춤을 출 자신도, 나이 든 몸뚱이를 학원에 들여놓고 등록 가능 여부를 타진할 용기도 없으면서. 차일피일 시간이 흘렀다. 그 날들만큼 나는 나이를 더 먹고 있었다. 나이 들어 그런 걸 하고 싶다는 것이 창피하다면서, 포기는 못 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이걸 어쩌나. 의식적으로는 '에이, 재미있게 잘하고 있는 필라테스나 더 열심히 잘 하자' 했는데, 무의식에서는 계속 뭔가 궁리하고 있었나 보다. 결국 나는 액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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