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새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살펴볼까. 명절과 공휴일은 주말과 얼마나 겹치지 않을지, 그래서 연휴는 얼마나 있을지, 아마도 그것이 제일 궁금할 것이다. 그 다음은 아마도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아닐까. 부모님의 생일, 친구들의 생일, 그리고 '내 생일'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생일에 대한 감각이 뚜렷이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내 생일과 이틀 간격으로 엄마, 아빠 생일이 연속으로 있어서, 그냥 항상 이 세 명의 생일을 한 번에 챙기며 넘어갔던 터라, ‘오늘이 바로 내가 축하 받아야 할 내 생일’이라는 생각이 매우 희박했던 것이 첫 번째이고, 그러다보니, 내가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날이라는, 의젓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버릇했던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때가 항상 시험기간 직전이어서, 서로 생일 챙긴다고 시끌벅적했던 친구들도 갑자기 시험공부 한다고 바쁘고 왠지 예민해져 있어서, 시험이 끝나면 이미 내 생일이 지나버린 것이 세 번째 이유이다. 어쩔 때는 나조차도 깜박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으니, 그냥 생일에 무던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나만 아는, 조금은 부끄러운 마지막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달력 밑에 작은 글씨로 적혀져 있는 기념일을 찾아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각자의 생일이 ‘바다의 날, 지구의 날, 북극곰의 날’과 같은 의미 있고 왠지 모르게 귀여운 날과 겹치면 서로 신기해하며 축하해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 생일 밑에 적혀져 있던 기념일은 바로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냥 수십 개의 기념일이 각자의 이유로 적혀있을 뿐이고, ‘장애인의 날’도 그런 기념일 중 하나였을 뿐인데, 짓궂은 동급생의의 장난 섞인 농담, 물론 농담이 될 수 없는 말이지만, ‘장애인의 날에 태어났으니 장애인인가?’라는 말에 너무 쉽게 상처 받았고, 그냥 왠지 모르게 달력에서 내 생일이 사라져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렸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건 분명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20대부터, 나는 수많은 기념일 중에서 장애인의 날이 분명히, 4월 20일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준 내 생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아보고, 생각하고, 찾아볼 수 있었기 떄문이다. 아주 우연히 장애를 갖지 않고 태어난 것에 불과한 비장애인으로서, 다수의 입장으로 쉽게 휩쓸려 버리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섬세하게 살펴보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방황하던 20대 시절에 스스로에게 용기가 되어 줄 수 있었다.
‘장애인의 날’은, 1년 365일 중 하루, ‘장애인을 위한 날’이 되어서는 안 되며, 365일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 차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끄럽게도, 나 또한 이렇게 1년에 한 번, 이렇게 글로 적어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밖에 실천하고 있는 것이 없기에, 늘 반성한다. 그래도 작년보다 나은 올해가 되고 싶어서, 오늘 이렇게 추천 도서를 정리해 덧붙여 본다. ‘장애’를 주제로 학생들과 같이 읽고 싶은 책들이다. 독서로 연결되는 마음을 경험해 보자.
생일 축하받던 것을 쑥스러워하던 나는, 이제 뻔뻔하게 생일을 핑계로 이런 얘기를 잘도 적어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교사가 되었고, 그 덕분에 다른 날은 몰라도 ‘장애인의 날’이 언제인지는 알게 되었다는 제자들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다. 무엇보다 그대들도 세상의 ‘작은 글씨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달력의 ‘작은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추천도서 : 청소년 문학 중심으로
1. 선인장의 기나긴 일생에서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는, / 더스티 볼링
장애를 가진 주인공인 소설 중에서 아마도 가장 밝고, 가장 따뜻한 소설이 아닐까. 주인공 에이븐은 두 팔이 없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바람에, 책을 읽는 시간의 절반 정도는 그 사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을 정도. 가끔은, 아 맞다, 에이븐이 팔이 없었지! 그랬다. 에이븐은 전학 간 새로운 학교에서 틱장애를 가진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의지로 제어되지 않는 틱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친구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같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실은 두 팔이 없어 발로 밥을 먹고, 발로 글씨를 쓰는 ( 근데 사실 너무 능숙해서 발인지 팔인지 자세히 읽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려운!)에이븐은 정말 멋진 이 소설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2. 우리가 함께 달릴 때 / 다이애나 하먼 애셔
학교에서 특수반 학생들이 체육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내 국어 시간에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사실 장애 유형, 정도가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또한 너무나 각각 다르긴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표정들. 가끔 틀어주는 영상에 흥미를 보이며 순간 보았던 짧은 미소. 혹시 내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 것이 있었을지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차분하게 펼쳐 놓는 생각들을 따라 읽으며, 세상과 연결된 주의력이 다소 부족할 뿐, 자기 자신과 연결된 주의력은 너무나도 섬세함을 알게 되었다. 그 섬세함과 '함께 달리며'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3. 제멋대로 버디 / 김아영
바닷속에서는 누구도 말할 수 없고, 누구도 들을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이렇게 적어놓기 전에는 미처 알아라치지 못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 한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바닷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바닷속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려요? / 이렇게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바닷속에선 내가 살아있는 소리가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