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보람이 되리라는 것을, 5월 17일.

성소수자차별철폐의 날

by 이주현

처음부터 교사가 꿈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교사이셨기 때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으나, 난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에 비해 교사라는 직업은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 저마다의 성장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최고로 속상하고 화나는 일들은 꼭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선생 같지 않은 선생들이 많은지, 어쩌면 그렇게 학교 분위기는 억압적이고, 우울한지, 어쩌면 그렇게 믿을만한 친구 한 놈 없는지.


나름대로 행복하고 평온한 학창 시절을 보낸 내 과거를 새삼 돌아보며, 평범하고 괜찮은, 아니, 꽤 괜찮은 스승님과 친구들을 만나 좋은 교류를 해왔던 내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그런 내 얘기를 듣는 그들은 진심으로 의아해했었다. 그런 학교가 있어? 그런 선생이 있었어?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지나치게 긍정적이어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도 미화시켜버린 걸까. 아니면 진짜로 좋았던 사람들만 주변에 있었기 때문일까.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즈음의 대화에 있다.


제일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최악의 공간이 된다면 얼마나 슬플까. 10대라는 아름다운 시절을, 학교에서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다. 그 조그마한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아니,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뒤늦게 생긴 사명감으로 시험에 합격하여, 바라던 교사가 되어 학교로 출근한 첫날부터,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모든 학생들이 좋아해 줄 것이라는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유명한 교사, 인기 많은 교사, 그런 것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관심을 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남들을 웃기는 재능이나, 쇼맨십 비슷한 것도 거의 없다. 무대 앞으로 나서기 보다는 그저 방 안에 처박혀서 혼자 뒹굴 거리는 게 성격인 사람이 교사라니, 서른 명 가까운 학생들 앞에서 한 시간 내내 떠들어야 하는 직업을 선택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견디고 버텨서 내가 교사로서 되고 싶었던 모습.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나, 이 사람에게는 말해도 되겠구나, 하고 마음먹게 해주는 사람.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얘기해도 좋을 것 같고, 무엇을 얘기해도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으며, 누구보다도 진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그 어떤 교사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그 어떤 교사도 믿어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그래도 그 선생에게는 얘기하고 싶었어, 그 선생은 왠지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았어. 그렇게 떠올리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다른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다. 다른 세계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 학생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쓰는 학생이 있다. 하라고 하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하는 학생이 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그저 믿어주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 학생이 있다. 나는 그 학생의 유일한 옆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 암호 같은 세계와 그 암호 같은 문자를 부디 눈치 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매일 소망한다.


저 선생님, 아니에요. 하며 한 발 물러났다가, 그런데요, 선생님. 하고 조심스레 다가왔던 몇 명의 학생들을 기억한다. 혼자서 울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위로와 격려와 용기의 말도 아닌 어떤 다른 의심도 없이 너의 눈을 바라봐 주며 또 어떤 의문도 없이 너의 말을 들어 주며 같은 온도로 손을 잡아주는 것.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마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매일 용기를 내며 살아가겠지. 먹먹한 이름과 얼굴들. 마주보며 웃었던 모습들을 오래 떠올려 본다. 그리고 여기 5월 17일 성소수자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등장한 많은 소설이 있지만, 가장 청소년다운, 아름다운 소설들을 골랐다.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소중한 이야기들.


학교에 있는 시간은 언제나 외로웠지. 학교에는 내 편이 아무도 없었어. 라고 말하는 학생이 제발 없기를. 내가 있었던 학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 제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그것이, 내가 교사가 된 유일한 보람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F71C03DC-6147-4E31-91D2-7759F169404B.heic



<5월 17일 성소수자차별철폐의 날> 추천도서 : 청소년 문학 중심으로


1. 오, 사랑 / 조우리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한국 청소년 소설이 있다니. 너무 멋져서 살짝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디엔가 오사랑과 이솔과 같은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웃고 있겠지. 그런 비슷한 장면들이 곳곳에 떠오른다. 우리들은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삶의 모습들과 선택들을 알아야만 한다.

“이기적인 것은 내 마음대로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이기적인 것은 다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2.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 마리암 프레슬러

1950년대, 전후 독일의 보육원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사춘기 소녀 힐링카가 로우 이모에게 자신의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이야기. 자신이 처한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담담하고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힐링카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는다. “행복은 의자를 내줄 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행복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를 내가 먼저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3. 첫사랑은 블루 / 베키 앰버텔리

이 소설의 아름다운 부분은 사춘기 소년 사이먼의 놀랍도록 차분하고 명랑하며 성숙한 태도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아웃팅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출발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이 소년이 막 방금 시작한 설레는 ‘이메일 연애’를 끝내야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성애자가(그리고 백인이) 기본으로 여겨진다는 건 확실히 짜증나는 일이야.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는 것도. 정말이지 이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을 겪어 봐야 해.”


4.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 박서련 외 7명

한국 작가들이 쓴, 한국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짧은 사랑 이야기들.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에 얽힌 아름다운 여덟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아우팅에 대한 두려움, 그것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 더 먼저 이야기되어야 할,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 그리고 그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차별 없는 웃음과 울음과 기쁨과 슬픔. ‘사랑’에 대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르며, 그 자체로 귀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책.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의 작은 글씨들을 찾으며,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