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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Nov 03. 2018

나만의 아이덴티티, 어떻게 찾을까?

[공공작당4] 펜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 설동주 작가의 독립출판의 기술 

                                                                                                         글. 콘텐츠 매니저 여름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 


ⓒ 공공그라운드


“저는 펜 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설동주입니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도시의 풍경을 그렸는데요. 제가 ‘시티 트레킹'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네 번째 공공작당의 주인공은 설동주 작가님이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에반게리온'을 보며 애니메이터로서의 꿈을 키우고, 대학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지만, 20대 시절 작가님 역시 ‘언젠가 내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꿈만 어렴풋이 꾸던 직장인이었습니다. 직장생활도 즐겁게 하던 중 휴가차 여행을 몇 번 떠났고, 그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들이 묘하게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 설동주


“도쿄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안 오는 거예요. 저쪽에 간판 하나 그려볼까 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친구가 늦게 와서 완성을 해버렸어요.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이때 처음 그렸어요. 여행 중간에 그리는 그림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예요. 시간을 뺏긴다는 느낌보다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때의 기억들, 노래들, 풍경이 깊게 남는 거예요. 어, 이런 그림을 좀 더 그려볼까? 여행 중에 더 그렸어요. 아직 좀 어색하죠? 덜 다듬어진 그림이에요.”


그렇게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렬하게 들었답니다. 결국 퇴사를 하고 자기 그림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만 작가님은 이 순간에 또 한 번 큰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퇴사했는데, 과연 내 그림이라는 게 뭘까? 하는 질문이죠.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게 된 호주로 떠나면서 ‘내 그림’에 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나의 아이덴티티가 뭘까? 답이 금방 나오지 않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리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내 그림을 많이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의 캐릭터를 만들고, 호주에서의 목표를 세웠어요. 뭐가 됐든, 그림으로 1년간 먹고 살기. 그림으로만 먹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사진보다 오래 남는 펜드로잉


ⓒ 설동주


호주에 가서 버스킹 자격증까지 따서, 그림 버스킹을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호주에 풍경을 담은 엽서를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기부 형태로 원하는 만큼 돈을 달라고 했는데, 호주 사람들은 타국에서 온 젊은 예술가에게 흔쾌히 돈을 건네며 응원해줬습니다. 마음에 든다며 100불을 주고 간 사람도 있었답니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시간을 그리며, 풍경 드로잉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드로잉은 그만큼 여느 사진보다 더 많은 기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호주에서의 시간은 ‘아, 그림 그리는 거 재미있다’ 느끼게 해준 1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비로소 ‘내 그림'에 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돌아와서 도쿄를 갔어요. 내가 이런 펜 드로잉을 해야겠다 생각하니까, 구체적으로 이 작업에 어떻게 아이덴티티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 생각했던 게 스타일적인 부분이었어요. 눈에 딱 보이는 스타일적인 부분.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건물에 대한 표현이나. 기본적으로 선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많이 했었던 시간이었어요. 여러 가지 재료도 써보고, 알 수 없는 캐릭터도 넣어보고 시도를 많이 했어요.” 


이 사람들, 정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구나!


여러가지 종류의 펜으로,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외주를 받아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드로잉 모임을 만들어 실험도 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방향성 없이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방향점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요. 바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었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들르게 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너무나 새로운 현장이었습니다. 


ⓒ 설동주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너무 멋졌어요. 전시를 많이 보긴 했지만, 여느 미술관 전시보다 더 예술처럼 보였어요. 이런 것도 만들어 팔아? 너무 놀랐어요. 와, 이거는 난해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데도 멋지다. 이 사람들이 정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구나. 그래서 보고 나서 이런 생각 뿐이었어요! 저도 정말 저기에 끼고 싶다!” 


회사 다니던 시절,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처럼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겁니다. 작업의 동기를 만들고 싶어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를 시작으로 작업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려둔 그림이 많아서, 출판물 형태로 엮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독립출판의 영역은 처음이었지만, 몇 번의 페어에 참가하고 다양한 형태의 출판, 인쇄물을 만들어내면서 방법을 익혔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의뢰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만들어보고 싶은 제작물을 "난해한 것부터 흥미로운 것까지 자유롭게" 만들어냈습니다. 또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요. 그런 작업의 시간이 누적되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꿈에 그리던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한 부스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원하는 결과물에 가깝게 가려는 시도 


ⓒ 공공그라운드


그 역시 모든 것을 알고 계획하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계속해서, 지금의 펜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공공살롱에 참여한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라며, 설동주 작가는 그동안의 경험을 충분히 나누어주었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자신의 작업을 인쇄물이나 출판물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주문 방법과 제작 과정도 설명해주었습니다. 


“기본적인 간단한 독립출판 서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주문하려고 해도 제본 방식, 무선제본이 뭔지, 중철제본이 뭔지 기본적 이해가 있으면 좋아요. 이런 정보는 인쇄업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요. 사이트에서 주문하면서 오히려 배웠던 것 같아요. 


200부 아래로는 소량인쇄인데요. 소량인쇄는 '인디고' 기계로 한다고 알고 있고요. 500부 이상 1000부짜리 인쇄는 '옵셋인쇄'로 맡기는 게 저렴합니다. 거기에 제작 용지는 뭐로 할건지, 컬러나 별색을 추가할 건지, 글씨가 튀어나오는 식의 후가공을 할 건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요. 업체마다 가격이 다르니 비교를 많이 해보면 좋아요. 처음엔 어렵지만, 소량씩 인쇄를 해보면서 원하는 결과물에 가깝게 만들어보면 됩니다."


그리고 여느 작당의 마지막 당부처럼, 설동주 작가도 이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만들어봅시다!" 


공공작당, 시즌1을 닫으며 


9월, 10월 두달 동안 진행된 공공작당, 첫 시즌의 네 번의 작당을 마무리했습니다.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의 기술을, '직장인의 난'을 통해 팟캐스트의 기술을, '딴짓매거진'을 통해 독립출판의 기술을, 그리고 이날 설동주 님을 통해서 나만의 일러스트로 작업물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 받았습니다. 


작당을 전수해 주신 분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상의 피곤함에 하루를 놓아 버리지 않고, 잠깐이라도 자기만의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누군가는 딴짓이라고 부르는 것을, 누군가는 나만의 것이라고 부르는 작당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래서 매일 놓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즐거움을 추구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그 일들이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누적되고, 쌓이고, 알려져서 이제는 자기의 본업보다 자신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연사분들은 생각만 가지고 있던 초기 단계부터 한 걸음씩 내디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공공작당 참여자들을 독려했습니다. "여러분도 어서 시작해보라고요." 두 달밖에 남지 않은 2018년. 여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라지만, 공공작당에서 내내 나눈 이야기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요. 공공그라운드의 공공작당은 더 흥미로운 주제로 잘 정비해서 시즌 2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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