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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Nov 08. 2018

서울의 역사 공간,
이렇게 바뀌고 있어요

[공공살롱#02] 서울, 근현대 역사 도심 속을 걷다




도심 곳곳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장소들


종로와 안국동, 익선동, 정동을 걷다가 역사적 유적지를 우연히 발견해본 적 있나요? 평범한 건물 앞에 이곳이 역사적 장소였다고 명시된 비석을 우연히 마주칠 때가 있는데요. 조선 시대 성곽에 둘러싸인 지역, 즉 한양 도성이라고 불렸던 도심 곳곳에 역사 문화적 건축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서울시는 사대문 안 지역을 역사 도심이라고 설정하고, 지역적 특색과 역사성을 살릴 수 있는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두 번째 공공살롱에서는 서울시의 역사 재생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서울시의 양병현 역사도심재생과장님을 모시고 서울 곳곳의 역사적 장소들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 랜드마크는 산 


도시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일까요? 바로 높이입니다. 특히 사대문 안 건축물의 높이는 굉장히 중요한데요. 사대문은 백악산, 인왕산, 낙산, 목멱산 -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이중 가장 낮은 산이 바로 낙산입니다. 그 높이가 91.4m라 사대문 안에는 90m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외국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중시합니다. 이전의 건축물을 살펴보면, 산 아래 외진 데에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지어왔습니다. 건축하는 데 있어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 문제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외국에는 랜드마크의 의미로 일부러 도심에 상징적인 건축물을 설계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양병현 과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바로 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도심 중요한 위치에 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높은 건물을 세워서 랜드마크를 손상하면 안되는 거죠. 이게 서울시의 주요한 높이 관리 원칙입니다.”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 돈화문로 





서울시의 도시 계획은 일반적으로 관리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도심재생과에서는 도시를 관리만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여기고, 재생 차원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날은 역사도심재생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줬습니다. 돈화문로, 삼일대로, 그리고 정동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왕이 가장 오래 산 곳은 창덕궁이었습니다. 안국역 동쪽에 위치한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자, 왕의 행차길로 이용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예전 자료들을 보니 이 길에 많은 일이 있었더라고요. 이 길을 걷다가도 왕이 지나가면 백성들은 저 멀리 가야 하는데, 여기는 길이 좁아서 백성들이 앞으로 나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했어요. 한번은 한 관료가 그런 백성을 막으려고 하니 정조가 ‘왜 백성의 말을 막느냐?'고 한소리 한 게 역사 자료에도 나와 있어요.”

두어 달 동안 서울시와 역사 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돈화문로를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으로, 역사를 주제로 재정비하기로 정했습니다. ‘왕이 걸었던 거동길을 지금의 우리가 걷는다.’라는 컨셉으로 걷기 좋은 길, 그때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길로 만들고 있습니다. “연말부터 공사가 들어가서 내년이면 완성된 돈화문로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길은 돌로 포장하고요. 주변의 건물들도 통일된 느낌이 나도록 지원할 예정이고요. 이런 물리적인 일을 넘어서 역사문화축제를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입니다.” 



최초의 자발적 시민운동, 3.1운동 



돈화문로 왼쪽은 삼일대로입니다. 삼일대로는 삼일운동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도로입니다. 탑골공원에서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그 근처 역시 중요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천도교가 활동했던 장소, 자급 조달했던 장소,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인쇄소 등등 근처에 독립운동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내년이면 삼일운동 100주년이 됩니다. 지금 다시 100년 전 그 순간을 되새겨봐도 삼일운동은 의미 있는 전환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점으로 많은 것이 바뀝니다. 백성은 국민으로, 대한제국은 민국으로, 왕토에서 국토로 바뀝니다. 이런 정신이 삼일운동 속에 다 들어 있어요. 이런 정신이 깃든 장소를 그냥 둘 순 없다. 이것을 알리고 싶었고, 사람들을 오게 하고 싶었어요.” 


삼일대로는 크게 공사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 채, 역사적 사실을 보기 좋게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안국역 바닥에 삼일운동 역사를 담은 상징물을 새기고, 곳곳에 역사 정보판을 세웠습니다. 그 근처에 있는 서북학회 터와 그 시절 도시 풍경을 볼 수 있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태화관 옛터도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하고 우르르 몰려나왔던 탑골공원 후문도 현재는 주차장이지만, 주차장을 비우고 사람들의 발자국을 새겨 상징성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대한제국의 흥망성쇠가 담긴 길, 정동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지금의 국기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선포했습니다. 또 국가의 중심을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시기의 흔적은 지금의 정동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걷기 좋은 돌담길 정도로 여기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에 고종의 깊은 고민과 비통함이 서려 있습니다.


“대한문 앞 태평로에 프랑스식 방사형 도로가 있어요. 당시의 도시 계획적 유행이었습니다. 고종이 만든 길이에요. 소공로도 고종이 뚫은 거고요. 근대국가를 모방하기 위해 근대 의료, 근대교육, 종교까지 받아들였어요. 정동에는 당시 일본을 제외한 각국의 공사관, 영사관이 있는 외교타운이었는데요. 혹자는 고종이 이쪽으로 도망쳤다고도 말하지만, 제가 보기엔 제대로 해보려고 들어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의혹에 분해 일어난 게 삼일운동인데요. 고종은 불운한 왕이긴 하지만, 삼일운동 일어나게 한 장본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 고종의 존재와 노력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런 것들이 정동에 다 담겨 있거든요.” 


이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직접 들어보세요 :)



매일 출퇴근 길로 오가던 종로의 길, 정동 길에 담긴 역사를 알고 나니, 어쩐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주변을 좀더 살피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 넣을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또 500년 전의 역사적 흔적을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는 점이 도심에 사는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요? 


공공살롱에서는 매달 우리 주변의 공간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건물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12월에 이어지는 네 번째 공공살롱- 혜화동 이야기에 함께 해주세요. 공공그라운드 콘텐츠 매니저 여름이었습니다. 





다음회차 공공살롱은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혜화동의 변화, 

그리고 그 당시 혜화동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 


* 일시; 2018년 12월 1일 오전 11시-12시반

* 장소: 공공일호 5층 공공그라운드 

* 예약은 여기서 >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165405/items/288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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