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공그라운드 Nov 15. 2018

어린이에게 충분히 좋은
'놀이 공간'은 어디일까요?

[공공살롱#4] 어린이와 공공 공간



도시와 공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공공살롱 세 번째 주제는 ‘어린이와 공공 공간’입니다. 어린이의 놀이 공간과 환경에 대해 어린이의 눈높이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는데요. 우리 주변의 어린이 공간은 어디일까요? 아파트나 학교의 놀이터일까요? 그 놀이터는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좋은 공간일까요? 새삼 어린이의 시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돌아보게 한 이번 공공살롱은 EUS+ 건축사무소의 지정우, 서민우 소장님과 C Program의 신혜미 매니저님과 함께했습니다.


#1. 아이들의 관찰과 이야기로 시작되는 놀이 공간


지정우, 서민우 소장님은 EUS+ 건축사무소를 좋은(EU) 이야기(S)를 더하는(+)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홈페이지의 개인 소개 페이지에서는 두 분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개만으로도 두 분이 어떻게 어린이 공간에 접근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어렸을 때 놀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놀이 공간에 어떤 좋은 이야기를 더할까 고민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건축가의 일에는 지금도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공간이라면 누구나 놀이터를 떠올리지만, 지금 아이들의 놀이터 환경은 어떨까요? 놀이 공간을 둘러싼 고층 아파트의 감시 아래,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기구들이 채워져 있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놀이터의 재료는 건축만큼 중요합니다. 따뜻한 재료는 따뜻하게, 무른 재료는 무르게 느껴져요. 그런 걸 통해서 손의 감각과 감성이 놀이와 같이 어우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지정우 소장님이 사진으로 소개해준 한 놀이터에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구가 모래밭 한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여름엔 열을 받아 달궈지고, 겨울엔 차가워지는 재료입니다. “정직한 재료와 구조가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 주변의 놀이터는 가짜 재료가 많아요. 돌이 아닌데 돌인 척, 벽돌 아닌데 벽돌인 척하는 재료들이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안전하게 놀 수는 있지만, 재료에 대한 감각과 감성을 놓치게 됩니다.” 


재료 뿐 아니라 놀이터 공간에 있는 도구들도 비슷비슷합니다. 시소, 그네. 미끄럼틀, 모래. 4S로 불리는 조합의 기구가 어느 놀이터에 무심하게 놓여있습니다. 1960년대 놀이터 풍경이 지금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놀기 위해 모이는 공간이라고는 여기 뿐인데, 우리 주변의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충분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은 놀이터를 만들 수 있을까요? 두 건축가는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의 잠재성, 상상력, 스스로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여지를 담은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면 놀이터가 될까요? 건축가가 혼자 만들면 놀이터가 될까요? 저희가 ‘아빠 건축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아빠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의 희망이나 바람을 반영해서, 건축가의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작업한 몇 가지 공간 사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대문구의 동탑 초등학교에서는 두 달 동안 30여 명 학생들과 구령대라는 공간을 두고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학교 내 권위를 상징하는 구령대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아이들과 함께 구상했습니다. 놀이기구 없이 놀 수 있다면? 그네 없이 그네를 탈 수 있고, 트램펄린 없이 점프하는 공간이라면 어떨까? 아이들의 상상력을 반영해, 추상적인 공간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운동장에서 쓸모를 잃었던 구령대 공간이,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어떻게 놀라고 제안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공간에서 스스로 놀이 규칙을 찾아 나갑니다.” 



파주의 해솔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워크숍을 통해 놀이 공간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습니다. “놀이터는 무엇일까?” 마음의 쉼터, 위로, 인생… 여러 대답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스케치한 내용을 건축가의 언어로 재해석했고, 신도시의 학교가 가진 전형적인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워크숍 할 때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학원에 대한 부담감, 아파트 브랜드가 아이들 대화 속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상황, 이런 것에도 주목했어요. 신도시의 일상 상황, 쳇바퀴 도는 생활 방식, 평면적 공간감- 이런 걸 과감히 깨고, 적어도 놀이터 공간 만큼은 입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원래는 산도 있고 구릉도 있던 공간을 평평하게 펴서 신도시를 만들었으니, 평평한 판을 한번 두번 접어서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모이고, 오르락 내리락하고 매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의 시선에서 공간을 해석한 놀이 공간이 완성됐습니다. 




소다미술관에서 진행한 구름 산책 놀이 공간도 흥미로운 사례였습니다. 찜질방이었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바꾼 소다미술관 안에, 마치 설치미술처럼 놀이터 공간이 전시됐습니다. 가볍고 저렴하고, 여러 용도로 쓰이는 바구니를 활용했습니다. 바구니를 걸어놓고, 쌓아놓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게 설치해두기만 했습니다. 무심한 회색 콘크리트 벽 공간에 빨래 바구니 구름이 뭉게뭉게 달려있고, 엮이고 흩어져있는 바구니가 공간의 활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바구니 사이로 들어가 너나 할 것 없이 어울려, 자신의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생각은 우리가 했지만, 우리가 의도한 대로 노는 경우는 100중에 10도 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스스로 방식을 찾으며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배울 때도 있어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고, 저희는 이런 작업을 하고 아이들이 놀거나 공간을 느끼고, 거기에 햇볕이 계속 변화하는 그림자를 만드는 풍경을 볼 때, 저희는 이런 거에 감동하거든요. 이런 게 건축가로서 느끼는 기쁨입니다.”  


이밖에도 김포 유현 초등학교, 용산 전쟁 기념관 어린이 박물관, 남산 주작 놀이 골목 등 다양한 공간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 작업 역시 아이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간이 놓인 주변 지형을 세심하게 살피고, 아이들의 동선을 다양하게 계획하는 아빠 건축가들의 작업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경사진 골목이라면 그 경사를 활용하고, 화단을 놀이터로 만드는 방식으로 진부한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2. “오늘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몇 명이나 보셨나요?"


지정우 서민우 소장님이 공간을 설계한 사례를 통해 아이들의 공간을 고민할 수 있게 제시했고,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신혜미 디렉터님은 C Program이 투자한 실험 사례를 통해 아이들의 공간에 관한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벤처기부펀드 C Program 중 하나인 Play Fund는 어린이들을 위한 열린 공간을 늘리고, 놀이환경에 대한 대화를 확산하는 실험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작업 방식에 있어서도, 개념을 정의하는 일부터 체계적으로 설계해나갔습니다.


공공성의 공간이란, “모든 아이에게 열려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공간은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인지, 아이들이 공간에서 시간의 주도성을 가지고 경험하고 있는지, 이 두 가지 개념이 중요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C Program이 투자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는 ‘이문 238’이라는 어린이 작업실이 있습니다. 이문 초등학교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공간은, 혼자 작업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어른들은 나름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아이들이 제 속도대로 작업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합니다. 어떤 교육도 없고, 제약도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장치입니다. 


제약 없이 일종의 약속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주 세심한 기획이 선행됐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아이들은 제일 먼저 작업실에 들어온 시간과 이름을 기록합니다. 각자의 작업을 구상한 뒤, 필요한 재료를 재료 바에서 고릅니다. 그리고 적당한 테이블로 이동해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을 마친 뒤에는 작업 노트를 써야 합니다. 글을 쓸 수 없으면 그림으로 그립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공간을 설계하고 구성할 때,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도해 낸 것입니다. 


신혜미 디렉터는 “이런 장치 하나하나가 아이들을 위해 잘 기획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 기획된’이라는 말에는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셋팅되고 완벽한 커리큘럼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아이들이 공간을 사용하면서 본인의 경험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장치들이에요. 어떤 재료와 어떤 도구를 넣을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저는 잘 기획된 콘텐츠라는 생각합니다.” 


1년 반 동안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작업했습니다. 매니저들은 1년이 됐을 때 아이들이 남긴 7,000여 장의 작업 노트를 스토리별로 분류해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작업 노트에도 아이들의 또 다른 삶의 스토리가 기록되어 가는 것을 보고, 이곳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구나, 발견했습니다.” 


군산 놀이환경 개선 프로젝트도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은 한 놀이터에서만 놀지 않는데,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다양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으면 어떨까?” EUS+ 건축사무소가 그랬던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공공 놀이터 말고,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 공간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군산에서 새로운 놀이 공간과 환경을 구성하는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에게 놀기 좋은 동네 연구부터 시작해 아이들의 연령대와 놀이 활동성을 고려한 놀이터 설계를 진행됐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까지 가는 길의 안전성까지 고려해 주변 환경도 개선했습니다. 



세 번째 소개한 실험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네 연구'였습니다. 놀기 좋은 동네 환경을 정의하기 위해서 C Program은 도시계획 전문가와 놀이 공간 조성 전문가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놀이 환경이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놀이의 환경적인 요소가 아이들에게 놀이가 정기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놀이환경이 좋은 곳에 사는 아이들은 노는 시간도 많았지만, 정기적으로 노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반면 놀이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 사는 아이들은 놀기는 하지만, 때로는 일주일에 한 시간도 놀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학원가로 유명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더 많은 놀이시간, 일상적인 놀이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도시의 인프라가 아이들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놀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C Program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자체나 일반인이 활용할 수 있는 활용할 수 있는 놀이환경 진단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걸어가서 놀 수 있는 놀이터나 운동장 공간이 있는지? 가는 길에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장애물이 있지는 않은지? 정말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인지? 각각의 공간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그리고 신혜미 디렉터는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습니다. “오늘 우리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몇 명이나 보셨나요?” 


“동네는 아이들이 24시간 보내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관점으로 이야기되는 동네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어른들은 직장도 가고 상업공간도 쓸 수 있는데, 아이들은 갈 수 있는 곳이 그 동네뿐이에요.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기억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이 횡단보도는 어떤 의미일까? 학교 주변의 이 공원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들 공간에 관한 관심이 크게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오늘 나눠주신 질문을 들고, 주변을 산책해보면 우리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야 하는지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공살롱은 12월에도 이어집니다. 12월에는 혜화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의 장소를 직접 투어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 


예약하기 |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165405/items/2883264?area=bnl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의 역사 공간, 이렇게 바뀌고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