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작당Ⅱ] <식물> <잔> <루이스의 사물들>의 루이스 박
글. 사진 / 콘텐츠 매니저 여름
시청역과 신당 사이, 종로3가와 충무로 사이, 을지로3가역이 있습니다. 인쇄소와 철공소, 오래된 호프집이 모여있는 을지로는 몇 년 전만 해도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지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시청이나 명동, 충무로를 가기 위해 버스로 지나가는 길이었고, 때로 유명한 냉면집이나 감자탕집을 찾아갔다가도 식사를 하고 바로 이동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을지로를 검색하면, 수많은 카페의 이름이 먼저 뜹니다. 을지로 한복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는 일터의 공간이지만, 을지로 골목골목, 좁은 건물에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저렴한 임대료를 쫓아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만들었고, 낡은 건물 3층과 4층에는 뜬금없이 카페와 전시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픈 시간도 인스타로 공지하고, 가게 간판과 입구도 마땅치 않은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용케 찾아내 사진을 찍고 입소문을 냈습니다.
간판 없이도 찾아가게 만드는 을지로 공간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공간 기획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12월부터 시작하는 공공작당 두번째 시즌은 바로 을지로 이야기입니다. 3회의 공공작당을 통해, 을지로에서 작당을 꾸리는 기획자를 만납니다. 12월 18일 첫 번째 작당은 을지로에서 <잔>과 <루이스의 사물들>을 운영하는 루이스 박 대표님과 함께했습니다.
루이스 박 대표는 강연 내내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공간기획자로서 공간을 아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 전에 그 공간을 만드는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관찰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자기가 누군지 알면, 그것만큼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큰 단서가 없다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도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언젠가 패션 일을 하고 싶고, 유학가고 싶었는데, 늘 마음만 있었어요. 이대로 살다가는 결정을 못 하겠구나 싶어 30대에 유학을 떠났습니다. 마침 패션 스타일링과 사진을 복수로 공부하는 학과가 있어서, 런던에서 패션 스타일 포토그래피를 전공했어요. 그 공부를 할 때, 첫 주제가 자기 자신에 대해 표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나다운 게 뭘까? 내 감성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게 뭐였을까?
제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저는 항상 좋아하는 게 있었다는 겁니다. 유학 생활 중에도 동기들은 '뭘 하지?'라고 고민할 때 전 이미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좋아하는 게 있었거든요.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주제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주제에 맞게 대입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유학을 왜 왔냐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나'라는 사람은 어떤 한순간에 딱 결정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지금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살면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게 모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됐겠구나. 저는 그래서 경험주의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낀 게 전부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을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루이스 박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20대에는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여행도 자주 가고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30대에 유학을 떠나 패션과 사진을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와 포토그래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익선동에 <식물>이라는 카페를 열면서 공간기획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늘 자기 탐구에 열성적이었습니다.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할 때 그는 흉터 많은 신체를 고스란히 카메라로 담아낸 프라하의 사진가 얀 샤우덱의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다고 느낀 자신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몸에 있는 점도 흉터도 지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그의 스타일링에 접목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전시관에서 느낀 인상도 기억해두었습니다. 작품도 좋았지만, 작품과 어우러지는 공간의 분위기가 좋았고, 이를 통해 공간이 작품과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하루아침에 직업을 바꾼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렇게 자기를 자극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저 따라갔습니다. 공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체험 역시 그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었습니다.
"런던에서 일부러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어느 날 집을 알아보다가, 옛날에 초등학교로 쓰인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을 알게 됐어요. 집 주소가 그냥 '더 스쿨하우스'예요. 커다란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잔디밭이 나오는데, 교문과 운동장인 거죠. 교실이 건물인 셈인데, 1층에 커다란 흑백사진이 붙어 있는 거예요. 학교였던 시절에 초등학생들이 조회서는 모습이더라고요. 2층 복도에도 아이들이 생활했던 사진이 곳곳에 붙어있었어요. 당시에는 한국에서 그렇게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을 본 적이 없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정말 마음에 들어서 거기서 살았어요.
복층 공간이었는데 아래층은 나무 바닥에 벽돌로 된 스튜디오고, 2층은 침실이었어요. 운동장의 커다란 나무 그림자가 아침마다 침실에 드리웠어요. 커다란 창문으로 볕이 쏟아졌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행복을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는데,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곳이 이곳이구나'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0.1초 만에 답이 나왔어요. 나네. 저 역시 그런 기쁨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공간이 다르게 보이고, 인격체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매일 공간과 대화를 합니다. 제가 만든 공간에 매일 출근하는데,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겠지만, 저에겐 매일 달라요. 그건 자기 공간을 가져봐야 알 수 있어요. 공간과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상호작용을 그때부터 생각하게 됐어요."
루이스 박은 "공간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공간과 사람이 주고받는 에너지가 그 공간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겁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내가 행복한 공간, 내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이 발전되어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익선동 <식물>입니다.
익선동 <식물>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 세 채를 연결하고, 리모델링해서 만들었습니다. <식물>을 지을 때, 그가 가장 많이 고민한 것도 자신이었습니다. 과연 나다운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유년기 시절부터 떠올렸습니다. 나무와 숲, 꽃을 좋아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이라는 단어를 건져 올렸습니다. "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 위한 공간이고, 나로부터 시작한 공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공간은,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는 공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다가, 카페 곳곳의 소품, 인테리어, 분위기를 발견하면서 '이런 공간을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굴까?' 싶은 공간,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또 그 공간의 예전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곳곳에 자기만의 힌트를 남겼습니다.
깨진 기왓조각으로 벽을 쌓아 올리고, 창문 손잡이를 문에 붙였습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그저 자신을 위한 힌트였습니다. <식물>은 오픈하자마자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가 공간 곳곳에 남긴 힌트를 발견하고, 사진으로 찍고 공유해 '독특한 공간'으로 입소문이 났습니다. 또 그가 생각했던 바람대로 사람들이 '주인을 궁금해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빛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신경을 많이 씁니다. 햇볕만 잘 써도 최고의 인테리어예요. 자연을 공간 안으로 가져왔을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식물>은 낮에 라이팅을 하지 않아요. 낮에 드는 해를 고려해 설계했거든요."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시작한 <식물>에 이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연'이라는 테마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 <잔>을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도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잔>을 기획했습니다. 카페 <잔>에 들어서면, 한쪽 선반에 놓여있는 다양한 잔 중에서 자신이 마실 잔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공간을 찾은 사람들은 <잔>의 공간 속 사물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잔>은 공간의 소통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공간 사이의 벽을 허물고, 벽을 뚫어 벽 너머의 사물과 연결될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디자이너의 크레딧까지 박힌 벽지로 루이스 박이 '좋아하는 것'을 여기저기 전시해두었습니다. 어떤 건물의 창틀이었던 폐목을 이용해 테이블을 만들었고, 모자와 전등갓이 비슷한 형태 같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모자 모양의 전등갓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공간 기획의 힌트라고 설명했습니다.
인간과 사물, 그리고 공간 - 이 세 단어는 어떤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가지고 세 번째 공간 <루이스의 사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의자 하나가 있더라도, 루이스의 의자냐? 철수의 의자냐?에 따라 하나의 사물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사물을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탐구인 거죠. 나는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저는 사물을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루이스의 사물'을 표현하려는 겁니다. 인간과 사물, 그리고 공간의 소통이 저부터 궁금해서 만들게 됐습니다."
결국 '어떻게 좋은 공간을 만들까?' 하는 고민은 '나는 누구일까?'로 귀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루이스 박은 그 잠언을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2시간 동안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또 자신을 아는 일이 어떻게 공간을 만드는 일로 연결되는지까지, 공간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들려주었습니다. "당장 여러분을 표현하는 단어 세 개를 떠올려보세요. 바로 거기서 시작해보세요." 루이스 박은 참가자들에게 기획에 접근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권하며, 이날의 작당을 마무리했습니다.
재미있는 실험을 공유하는 만남 [공공작당]에 참여하세요!
다음 공공작당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은, 을지로 OF(오브)입니다.
오브의 두 기획자를 모시고, 을지로의 낯선 공간, 오브의 공간 기획의 기술을 들어봅니다.
[공공작당Ⅱ두번째] 오브 예약하기 https://bit.ly/2Sl0Ib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