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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Jan 24. 2019

카페도 아니고, 갤러리도 아닌
을지로 공간 '오브'

[공공작당: 을지로편] 오브의 한대웅, 오웅진 디렉터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오브" 


왼쪽부터 오웅진, 한대웅 디렉터님


  을지로의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 직접 공간 이야기를 듣는 [공공작당 : 을지로편] 두 번째 만난 을지로 공간은 바로 ‘오브’입니다. 오브는 을지로 낡은 건물 5층에 있는 세 개의 작은 방을 전시공간으로 꾸며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한대웅, 오웅진 디렉터는 시각미술과 영상 작업을 하는 예술가로, 건물의 4층을 작업실로 쓰며 오브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 세 개의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공간을 찾는 손님을 맞습니다. 이 공간에서 커피와 술을 팔기는 하지만, 여느 카페나 펍과는 분명히 다른 전시공간입니다.


오웅진: 함께 쓸 작업실을 찾던 중에, 을지로가 교통 접근성이 좋고 월세가 싸서 오게 됐어요. 물론 지금은 월세가 또 올랐지만. 작업실로 쓰려고 4층을 계약했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5층에 노는 공간도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어요. 근처 철공소 노동자분들이 사글세를 내며 달방처럼 쓰던 작은 방 세개가 있더라고요. 방이라는 콘셉이 좋아서, 한쪽은 영상이나 미디어, 한쪽은 오브제 작업, 한쪽은 드로잉 방이라는 콘셉을 잡고 세 명의 작가의 전시를 하게 됐어요.


한대웅: 하나의 기획으로 모아서 함께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서 매달 이런 식으로 전시하고 있어요. 1년에 25팀이 함께 했더라고요. 전시 이외에도 음감회라고 해서 청각 예술도 전시처럼 보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뮤지션 둘이 각자 녹음한 음악을 틀고, 이들의 음악을 듣고 싶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도 합니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 오브는, 공간의 정체성과 공간의 메시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을 단순히 카페로, 그렇다고 갤러리로, 딱 뭐라고 설명되는 공간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두 디렉터의 관점이 공간의 정체성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공공작당을 찾아온 사람들과 두 디렉터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오브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나만의 공간을 기획하거나 운영하는 분이라면, 특히 전시공간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오브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오브의 초록방 이미지 ⓒ오브


"어떻게든 옆에서 작품설명을 해드려요"


@ 오브라는 이름 


한대웅: 공간이 5층이에요. 5F잖아요. 그래서 오브가 되었고. 이 공간이 작가의 공간이란 뜻도 있어요. 전시할 때마다 포스터에 작가님 이름 옆에 오브라고 자연스럽게 쓰게 되니까, 작가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완성되잖아요. 


오웅진: 공간과 관련해서 의견이 어긋날 때, 항상 명제처럼 떠올리는 생각이 있어요. 이 공간의 주인이 작가의 작업이었으면 좋겠다. 인스타를 한 시간만 뒤져봐도 우리나라에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어요. 한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 인사동에서 자작나무를 그만 봤으면 좋겠다고요. 작가가 꼭 메이저나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작업할 때 다양한 기회가 주어져야 성장을 할 텐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금전적인 문제로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작가들에게 1000만 원이 상징적인 숫자라고 해요. 제작비, 운반비, 대관료 등등으로 소요되는 1000만 원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갤러리에 작품을 걸지 말지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치킨집도 아니고 한 달 하는 전시에 1000만 원은 너무 가혹하잖아요. 오브라는 이름에는 그런 게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의 중심은 작업이고 작가다. 을지로의 힙한 공간으로 불리는 건 감사한데, 그 와중에 작가들의 작업이 우리 공간에서 본질을 잃고 떠내려가지 않게 늘 경계하고 있어요.


@ 커피와 오브 


한대웅: 오브에서 커피를 팔긴 하지만, 여기는 카페가 아니라 전시공간이에요. 등으로 전시를 보는 안락한 공간은 아니에요. 다만 음료를 팔고 있는 것은, 제가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다녀왔는데 그때 보고 느낀 점이 있어서예요. 독일엔 피시방도 없고, 노래방도 없으니 파티를 열 때 자연스럽게 전시가 엮여요. 


  그런 공간을 빌리려면 얼마나 드는지 물어봤더니, 오히려 돈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전시장에서 입장료를 받기도 하는데, 술도 팔더라고요. 넓은 공간인데도 사람이 꽉 찰 정도로 많았고, 9시쯤 파티가 시작되자 걸려 있던 작품을 걷고 공연팀이 와서 클럽이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 담았어요. 


@ 작가들의 태도까지 전달하는 전시공간 


한대웅: 저는 손님이 오시면 어떻게든 붙어서 작품 설명을 해요. 카페로 알고 오시는 분들이라도 어떻게든 전시를 보게 해요. 다른 카페나 펍에서도 전시를 하지만, 전시란 건 작품을 볼 수 있는 일정한 거리와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전시하는 척하는 공간은 되지 말자고 생각해요. 



오브의 하얀방 이미지 ⓒ오브

   

"공간으로 할 수 있는 일들"


@ 작가에게 오브는   


오웅진: 저희가 별다른 지원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요. 작가님이 전시장을 지키면 작업은 언제 하지, 라고 생각해서, 전시 기간에 저희가 출근해서 공간을 지키고 작품 설명을 해드려요. 그게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공간이 되게 세잖아요. 이 공간에서 전시하고 나면, 남는 쪽은 작가일까? 이 공간일까? 관객이 보고 났을 때 뇌리에 남는 게 공간일까? 작업일까? 특히 화이트큐브 같은 공간은 잘하면 잘하는 만큼 돋보이고, 못하면 벌거벗겨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우리가 작가의 작업을 전시해준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작업이 공간을 빛내는 데 쓰고 버려지는 건 아닐까 늘 끊임없이 고민해요. 


  그런데 작가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나는 갤러리에서도 전시를 해봤는데, 사실 되게 외로웠다. 여기서 전시 공간을 같이 꾸미고, 조도도 마음대로 하면서, 부담을 덜었고 격려를 받았다. 그래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두 디렉터의 기획 전시 


한대웅: 이 친구가 저보다 책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어요. 이 친구는 좀 더 스토리텔링을 가미하고 라인을 많이 잡아줘요. 전시를 보는 순서나 흐름을 제시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던져놓는 편이에요. 저는 순서보다는 하나의 개념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서 어떻게 봐도 상관없는 전시를 기획해요. 제가 좀 더 가볍게 접근하는 편이죠. 이 친구가 이전에 라이트 리플렉스라는 전시를 했어요. 


오웅진: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 가면 동공검사를 하는데, 뇌가 죽어 있어도 시각은 반응한다고 하더라고요. 인지를 통한 시각이 아니라 인지하지 않는 즉각적인 시각에 관한 전시였어요.


한대웅: 저는 가위바위보라는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가위바위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잖아요. 그런 걸 비틀어서, 돌 사진을 찍어 프린트한 다음에 가위로 자르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서로 기획하는 주제도 조금씩 달라요. 


@ 오브의 신년 계획


오웅진: 올해는 음료 없이 입장료만으로 운영되길 바라고 있어요.


한대웅: 다양한 일들을 해보려고 해요. 주변에 공간을 운영하는 분들과 연계해서 전시 경쟁을 해보면 어떨까? 작품은 사실 경쟁하거나 평가할 대상이 못되지만, 전시는 어떻게 작가의 의도를 잘 반영할지 배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야기만 나온 거지만, 올해도 공간을 통해 다양한 일들을 해볼 계획입니다. 




"을지로가 이렇게 쉽게 없어져도 될까요?"



@ 처음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오웅진: 처음에 공간을 만들 때, 이 친구가 이걸 도와주고, 저 친구가 이걸 도울 수 있겠지, 하면서 청사진을 그리면 금방 되겠다 싶어요. 하지만 이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땅에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해야 할 일이다, 생각해야 해요. 그러다 막히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견적도 내가 내고, 내가 부딪혀서 논의하고 싸우고 할 생각으로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실제로 운영해보면, 내가 직접 손댄 부분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거든요. 운영에도 도움이 되고요. 상투적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런 걸 조심해서 계획을 짜면 좋겠어요.


한대웅: 친구 중에도 요즘에 을지로에 좋은 매물 없냐?고 물어요. 을지로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을지로에서 공간을 운영하면 왜 혼나는지 모르게 자꾸 혼날 일이 생기더라고요. 화장실 공사를 하려고 견적을 문의했는데, 기사님이 오시자마자 화를 내시더라고요. 이런 건 안 돼! 하고. 보자마자 화를 내시더라고요. (웃음) 이런 일도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해요. 부동산 계약을 맺을 때도, 분명 계약에 도움을 얻으려고 부동산에 간 건데, 부동산이랑 주인아저씨가 너무 친하셔서 내가 두 분을 상대해서 계약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 을지로 재개발 이슈 


한대웅: 입장은 명확하죠. 좀 어리석게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주상복합이 들어온대요. 공무원들이 지금 사는 사람들을 조사하러 나와요. 근데 그분들이 오셔서 신난 목소리로, ‘여기가 지저분하잖아요. 여기를 싹 다 밀고요.’ 이렇게 이야기해요. 저희 공간이 없어지는데,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싶은 거죠. 여기가 이렇게 쉽게 없어져도 될까요? 저희보다도 여기 오래 일하시는 아크릴 가게, 철공소가 있잖아요. 


  예술계통만 생각해도, 많은 학생과 작가들이 여기 직접 방문해서 작업해가던 곳인데요. 돈을 만들 수 있는 되게 좋은 도구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쉬운 방법만 생각해서, 돈이 안 되니까 싹 밀어버리자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 모르겠어요. 돈은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갖는 거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 재개발을 지혜롭게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오웅진: 저희는 을지로에 30년 있었던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발언권이 있어서 운이 좋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평생 거기서 일했는데도, 글이나 말할 기회가 없어서 더 억울한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정작 그 사람들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고, 을지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만 말할 게 아니라 나랏일 하시는 분도 이런 걸 알았으면 좋겠고, 서로 더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 오브가 궁금하시다면  https://bit.ly/2QL0H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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