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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Feb 01. 2019

"커피한약방에 담은 것들,
원칙은 하나였어요"

[공공작당 #03] '커피한약방' 강윤석 대표 


ⓒ 커피한약방 


                                                                                                       글, 사진/ 콘텐츠 매니저 여름 



  을지로3가역 1번 출구로 나가면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옛 혜민서 터가 있습니다. 혜민서는 조선 시대에 서민들을 진료하고, 약을 관리하던 국립의료기관입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혜민당’이라는 카페가 있고, 맞은편에는 을지로에서 핫 플레이스로 손꼽히는 ‘커피한약방'이 있습니다. ‘커피한약방' 강윤석 대표는 처음부터 정확히 그 자리가 혜민서 터인지는 모르고, 손수 정성껏 내리는 커피를 강조하기 위해 한약방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가던 분이 들러 “자네, 이 가게 이름을 알고 지은 건가?” 하며 이 맞은편 자리가 예전 혜민서 자리였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강윤석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설명했지만, 그 공간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간의 고민과 집요한 노력이 빚어낸 행운처럼 느껴졌습니다. 을지로의 개성 있는 공간의 이야기를 듣는 공공작당 세 번째 시간에는 커피 한약방의 강윤석 대표님을 모시고, 70년대 을지로 이야기부터, 커피 한약방의 공간 하나하나가 완성된 과정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습니다.



1960년 그 시절 멋이 있던 시대 


  “아버지가 이 근처에서 근무하셔서 제가 을지로를 잘 알아요. 아버지가 술자리나 모임이 있으면 꼭 저를 데려가셨어요. 그러면 제가 가진 옷 중에서 제일 좋은 걸 입고 따라나섰어요. 을지로에 가기 전에 명동에 들러 미제 사탕을 사줬거든요. 그거 하나 입에 넣고, 아버지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는 했어요.” 


  강윤석 대표는 60년대 을지로 거리에 흐르던 특유의 멋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해외여행 가서 찍은 낯선 흑백사진처럼, 과거의 을지로 풍경은 전차가 다니고 아기자기한 멋을 가진 공간이었습니다. 아치형의 가로등, 장식이 많이 되어 있는 창. 하나하나 뜯어보면 꼼꼼하면서도 미적인 요소가 많이 보여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에만 있던 문화들도 있었습니다. 멋진 옷을 입고 사교장에 가서 춤을 춘다거나, 다방의 멋들어진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풍경이 그랬습니다. “잘 차려입고 식사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기억나요. 극장식 카바레에 외국 무용수들이 나와서 춤도 추고 자연스럽게 노는 분위기였는데, 퇴폐적인 느낌이 아니라 정말 멋이 있었어요.” 


  다방에 디제이 박스가 있었는데, 다방마다 추구하는 음악이 달랐습니다. “어디는 팝송을 틀어주고, 어디는 지난 가요를 틀어줬어요. 듣고 싶은 사람들 오시요, 하는 거죠. 요즘도 가게 주인의 취향에 맞춰 가게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저 당시에도 주인과 손님이 취향으로 말없이 교류하곤 했어요.” 


  “그때는 친구와의 약속은 무조건 다방이었어요. 여기서 세상 얘기도 하고, 사적인 얘기도 하고, 연인들은 구석 자리에 앉기도 했어요. 그때는 휴대폰이 아니라 삐삐가 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전화하면 금방 약속을 취소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약속하면 무조건 만나야 했어요. 그래서 그때는 약속을 정말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한 시간, 두 시간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익숙한 일이기도 했고요.” 


  실제로 그 당시에도 붐이라고 할 만큼 골목골목에 다방이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60년대 서울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판코리아라는 나이트클럽이 있었어요. 극장식 나이트클럽인데 춤을 추고 마술을 하기도 해서 가족 단위로도 오곤 했어요. 그 주변으로 다방이 근처 구역에만 50개가 있었어요. 1층에도 있고, 2, 3층에도 있고요. 카페마다 ‘여기는 뭐가 맛있다, 저기는 뭐가 맛있다' 하는 차이도 있었고, 이 일대 자체가 요즘 가로수길처럼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어요. 제가 카페를 만들 때, 다른 것보다 그 시절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했던 시절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떠들썩했지만, 강윤석 대표는 이미 5년 전에 지금의 ‘카페한약방'을 차렸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좋아했던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뭔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들이 요즘 유행이지만, 조금은 엉성하고 촌스러운 것들이 제 눈에는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처음엔 정말 어렵더라고요. 복고풍 느낌, 빈티지 느낌은 많지만 진짜 빈티지는 없어요. 


  진짜 손때가 묻고 긴 시간을 통과한 물건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중에서도 한국적인 소품들을 찾는 건 더 어려웠고요. 제가 어린 시절 봤던, 외래적인 느낌과 한국적인 느낌이 섞인 개화기풍의 소품을 찾고 싶었어요. 저희 공간 본관과 별관이 비슷해 보이지만, 소품의 연대나 분위기가 달라요. 어느 공간은 개화기 중에서도 상위층이 사용했을 것 같은 소품으로 표현하고, 어느 공간은 소박하게 표현했어요.”


  강윤석 대표는 안암동 고대병원 응급센터 옆에 위치한 ‘커피 수공업’이라는 카페에서 처음 커피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는 도로도 없고, 건물도 없는 산이었어요. 여러 군데 물색하다가 제가 그냥 잘 아는 곳에서 시작하자고 이곳을 택했어요. 그때는 공사를 저 혼자 다 했어요. 공사에 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진행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어떤 공간을 만들겠다는 기획은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길고 좁은 공간이라 내부에 테이블을 세 개밖에 깔 수 없었지만, 테이블을 야외에 깔고 안에 로스팅 공간을 만들고 나니 흡사 배 모양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배의 공간처럼 만들어보자 하고, 선박에 쓰던 자재들을 찾아 나섰어요. 바닥은 배 간판을 가져와 붙이고요. 


  애초에 산이었던 곳이니까 산장 같은 느낌으로 꾸며서, 사람들이 쉬러 왔으면 좋겠다 싶어서 피크닉 테이블을 깔고, 의자도 고급스러운 낚시 의자를 놓았어요.” 원래 주 방문객은 학생들이었지만, 지금은 안암동에서 꽤 유명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곳이 제 커피 꿈이 시작된 곳입니다. 커피 한잔을 정성껏 내리되, 그래도 밥 한 공기에 비견될 가격은 아니었으면 싶어서, 시중 5,000원 6,000원 하는 커피값보다 낮게 책정했어요.” 커피 한약방 커피도 4,000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칙은 하나, 내 눈에 예쁜 것 


  커피한약방의 공간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벽과 세심하게 디자인된 창문과 문, 등이 어우러져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공간 이야기는 디테일 없이는 전달할 수가 없어요. 제가 특히 눈여겨본 게 자개장이었어요. 한때는 집마다 가지고 있던 물건인데, 오래됐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다 내버렸지요. 누구네 집에나 있는 거라 딱히 간직할 생각도 하지 않는 물건이에요. 하지만 특별한 기술로 만드는 물건이고, 지금은 또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저는 이거야말로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발에 챌 만큼 많다고 버려지는 게 슬펐어요. 지금 가게에 있는 자개장은 팀장 어머님이 결혼할 때 가지고 온 혼수품입니다. 굳이 트럭으로 싣고 와서 하나하나 해체했어요.” 자개장은 '커피한약방'의 1층 매대와 2층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커피 한약방에 담은 물건들의 원칙은 하나였어요. 내 눈에 예뻤어요.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고요.” 그렇게 진짜 빈티지, 진짜 레트로한 물건을 찾기 위해 대표님은 누구보다 발품을 팔았습니다. 엄청난 개발을 시작한다는 상하이에 가서, 특유의 형태를 갖춘 창문을 떼오기도 하고, 손때묻은 목자재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것들이 혜민당 옆벽에 몰딩으로, 한약방 어딘가의 창틀로 스며들었습니다. 예상했던 공사기간을 넘길 만큼 공간을 꼼꼼하게 만들어나갔습니다. 공사 중에 타일을 걷어내다가도 저절로 스며든 무늬나 그림을 발견하면, 그 사소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재대로 구현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공업사의 타일 창고였던 공간이 지금의 ‘커피한약방'이 된 건 생각보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까? 예측하고, 이해하고, 공간을 만드는 것도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계획을 할 때 꼭 남의 눈으로만 생각하기보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내가 만들 공간이라면, 나에게 맞는 아름다움을 찾는 게 중요하죠. 저도 창작하는 입장에서의 자존심이 있어요. 다들 미니멀한 게 좋다는데, 그 반대 것은 없을까?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기본적인 창작은 결국 내 안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빨리 알아내면, 거기서부터 뭐든 시작할 수 있어요.”


강윤석 대표는 이날 '커피한약방'의 공간 사진을 보여주며, 공간을 제작한 과정을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계획한 대로 '커피한약방'이라는 공간을 만드는데, 시작부터 함께 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며, 공간에 필요한 것이 단순히 유행이나 기획 뿐만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내부에서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동료, 찾아오고 편안해하는 고객이 있어야 좋은 공간의 완성이라고요. 


“결국 좋은 공간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희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좋은 배우인 스텝, 그들을 핸들링할 수 있는 연출력. 이 모든 조화를 이해하고 좋아해 줄 수 있는 관객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8년 12월부터 진행된 '공공작당: 을지로 공간기획의 기술'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흥미로운 공간, 개성있는 공간 이야기를 알아보는 공공작당은 새로운 공간 이야기로 다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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