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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Jun 13. 2019

기술의 디자인을 넘어 기획의 디자인을 합니다.

[공공일호 사람들] 디어라이프 박래환 대표

공공일호에는 실험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4층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LAB2050, 농사펀드 및 여러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가 입주해 일하고 있습니다. 3층 learning Lab에서는 거꾸로캠퍼스와 온더레코드가 다양한 교육 실험을 하고 있고요. 공공일호에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공일호 인터뷰]에서 전해드립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사, 생각,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글. 사진 커뮤니티 매니저 코난


                                                                         


 저는 래환 님과 식사하러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래환 님과 함께 가면 어디서든 서비스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떡볶이 가게에서는 쿨피스를, 백반집에서는 미니 찌개를 받았어요. 가끔은 어디선가 연극 티켓을 받아오기도 하십니다. 폭풍 서비스를 받는 비결을 여쭤보면 ‘인사를 잘하면 돼요!’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렇게 대학로에서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 같은 래환 님은 공공일호와 자타공인 보안관이시기도 한데요. 커뮤니티 모임의 프로 참석러이면서 냉장고 청소, 물과 전기 아끼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애써 주십니다. ‘공공일호에서 나의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은 없다. 나는 커뮤니티 매니저’라며 농담을 하실 정도로요. (사실 래환 님은 디자이너예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디자이너로서의 래환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디자이너와 ‘잘’ 일하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 독립 출판에 관심 있으신 분들, 무엇보다 래환 님의 일하는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 모두 모여 읽어보세요 :)




디어라이프 박래환 님과 래환 님의 캐릭터  ⓒ코난 / 디어라이프 박래환 님


웜톤, 쿨톤 말고 디자인에도 톤이 중요해요.


Q. 안녕하세요, 래환 님. 저는 공공그라운드 커뮤니티 매니저 코난입니다. 먼저 래환 님과 디어라이프를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디어라이프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박래환입니다. 디어라이프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속하는 작업을 주로 하는 스튜디오고요, 특징을 부여하자면 ‘브랜딩의 관점’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브랜딩 관점을 담은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일까요?


 저는 주로 포스터, 리플렛 이런 것들을 의뢰받아서 디자인하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A 회사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포스터, 리플렛, 카드 같은걸 만든다고 한다면, 소비자는 이 세 개 중에서 어떤 걸 봐도 ‘이거 A 회사스럽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브랜딩 관점을 담은 디자인이에요. 포스터 느낌 따로, 리플렛 느낌 따로 나지 않는 게 중요하죠. 그러려면 제가 A 회사스러움, A 회사의 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 회사가 원래 가지고 있는 톤이 있거든요. 그 톤을 무시하면 그 회사랑 어울리지 않는 낯선 디자인이 나와요.


 예를 들면 가수 현아는 섹시한 컨셉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현아랑 같이 일하는 코디가 현아의 컨셉을 잘 이해 못 하고 엄청 보이시한 옷을 입히면 어떻겠어요? 사람들이 현아를 보면서 낯섦, 혼돈을 느낄 거고 현아가 오랫동안 쌓아왔던 컨셉, 아이덴티티에 손상이 갈 거예요. 그 보이시한 옷이 아무리 비싸고 유행하는 옷이라고 해도 현아에게는 좋지 않은 옷인 거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유행하는 디자인보다 그 회사의 톤, 회사의 강점을 잘 살린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에요.


Q. 어떻게 그런 강점을 알아내시나요?


 방법론으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네요. 직관적으로 발견해낼 때도 있고요, 클라이언트와 함께 ‘우리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장점을 발견하죠 주로. 사실 조금 막연한 얘기이기는 해요. 가치, 장점 이런 것들이. 하지만 계속 얘기를 하면서 키워드들을 잡아가요.


Q. 디자인도 어렵겠지만,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쉽지 않으시겠어요. 래환 님께서 생각하시는 ‘디자이너와 잘 일 해보고 싶은 클라이언트를 위한 팁, 조언’이 있으실까요?


 그거 진짜 어려운 건데, 사실 해본 사람이 제일 잘해요. (웃음) 그래도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우선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 사람, 이분을 클라이언트라고 칭할게요. 클라이언트는 중간 커뮤니케이션 그러니까 전달을 잘해야 해요. 클라이언트는 대부분 중간자인 경우가 많아요. 실질적인 의사 결정자는 클라이언트의 상사인 거죠. 그러면 디자이너랑 클라이언트랑 열심히 얘기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도 결국 다시, 다시 해야 해요. 의사 결정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모두가 힘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에게는 의사 결정자의 의견을, 의사 결정자에게는 디자이너의 의견을 잘 전달해주셔야 해요. 말만 들어도 쉽지 않죠?


 또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걸 꼭 알고 계셔야 해요. 가끔 클라이언트분들 중에 ‘컨셉 시안’, 그러니까 첫 단계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디자인은 기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에 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워요. 단계 단계를 거쳐서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맞추어가고, 여러 번 수정한 후에야 완성본을 만들어낼 수 있죠.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랑 함께 연구하고 기꺼이 시간과 애정을 쏟을수록 원하는 디자인,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마지막 팁은 그나마 쉬운 팁인데요. 의뢰할 때는 구체적인 워딩과 레퍼런스가 아주 큰 도움이 돼요. 이거랑 상반되는 의뢰 방식으로는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가 있어요. 디자이너는 ‘이런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렵답니다. ‘깔끔한 느낌이 좋아요.’보다는 깔끔하다고 생각하시는 디자인의 예시를 몇 개 알려주시면 디자이너도 더 빨리 감을 잡을 수 있어요.


Q.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모두에게 필요한 팁인 것 같아요.


 그렇죠? 아,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어요! 일이 잘 끝나고 났을 때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정말 좋아요.’라고 약간 뻥을 쳐준다.(웃음) 디자이너는 정말 칭찬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게 좋은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해주시면 디자이너는 ‘다음에 또 이 클라이언트에서 의뢰 들어오면 완전 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래환 님의 포트폴리오 일부 / 디어라이프 홈페이지





기획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요.


Q. 요즘 래환 님께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신가요?


 공공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요.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자 ‘문제를 포착하고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서 해결해가는 과정 자체’를 말해요. 어려운 말이죠? 네, 서비스 디자인의 예시를 말씀해주세요.


 우리나라에는 ‘염리동 소금길’이 대표적인 예시 중의 하나예요. 원래 염리동 거리는 빈집이 많고 거리가 어두운 골목길이었어요. 당연히 사람들도 많이 안 지나다니려고 하고요. 이런 동네를 더 안전하고 활기차고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장치를 세팅했어요. 벽화도 그리고 소금길 코스 표지판을 만들어서 산책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했어요. 또 소금길 지킴이 집을 만들어서 위험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안전한 느낌이 잘 전달되게 했어요. 서비스 디자인을 통해서 낙후된 동네에 활기를 되찾은 사례죠.


 또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전기료 고지서에 캐릭터를 넣은 사례도 있어요. 전력 사용량이 많이 증가했는데, 사실 소비자들이 ‘전기 안 아낄래!’ 하면서 막 쓰는 것보다는 본인이 전기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감이 없는 상태에서 쓰다 보니 많이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전기료 고지서에 곰 캐릭터를 삽입해서 자신이 전기를 많이 쓰는 편인지 아닌지, 지난달에 비해서는 얼마나 많이 썼는지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어요. 이런 것들이 서비스 디자인 영역입니다! 


Q. 이해가 돼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네요. 이전에 하시던 일과는 조금 다른 분야인데,  왜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다르죠. 기술적인 디자인이라기보다 기획에 가까운 영역이에요. 제가 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이거예요. 기술자로서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거든요. 대학원 면접 때도 이렇게 말했고요. 그거 아세요? 우리가 아주 잘아는 사람 중에도 기획 디자이너가 있어요. 누구인가요? 박원순 시장님이요. 본인이 스스로 디자이너라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저처럼 그래픽을 다루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서울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기획자로서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신 거죠. 어떤 느낌인지 이해되시죠?


 이 중에서도 (공공) 서비스디자인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전부터 ‘내가 디자인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쉽게 말하면 제 디자인이 조금 더 의미 있게 사용되기를 바란 거죠.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요. (웃음)

 

Q. 그럼 앞으로의 디어라이프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는 일도 생기겠어요.


 그렇죠. 클라이언트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출판, 스터디 이런 것들을 하려고 해요. 디자인 회사가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하는 회사냐 아니면 자기 제품을 파는 회사냐 이렇게 구분되는 것 말고, 같이 디자인을 공부하기도 하고 클라이언트 서비스도 하면서 디자인이라는 영역을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강력 추천, 독립 출판



'북쪽'과 '디어라이프' 로고 ⓒ 디어라이프 박래환 님



Q. 독립출판 이야기를 해볼까요? ‘북쪽’이라는 독립출판사를 만드셨잖아요. 독립출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출판사만 있고 아직 출판은 하지 않았지만요. (웃음) 저는 무가지 시대 사람이에요. 무가지요? 네, 무료로 잡지를 배포하던 시대요. 통신사에서 잡지를 무료로 배포했어요. TTL, 카이 이런 거요. 모르시는군요(웃음). 제가 자랄 때가 한창 잡지 전성기였는데, 어느새 잡지는 이제 끝난다는 얘기가 돌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 요즘은 다시 조금씩 떠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을 겪은 저로서는 여전히 아쉽죠. 잡지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요즘 독립출판이 유행이잖아요. 때가 되었다 싶었죠. 잡지 출판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고, 또 한편으로는 저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기획자로서의 욕구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을 떠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되었어요. 그냥 취미생활 같은 거예요. 북쪽은.


Q. 래환 님처럼 독립 출판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준비하고 계신 입장에서 독립출판을 하면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알려주세요.


 장점은 역시 누구나 쉽게 도전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일반 출판사에서 출판하려면 어느 정도 상업성을 갖춰야 하잖아요. 어느 정도 잘 팔릴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들만 제작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독립출판은 그냥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자기만의 책을 만들고 싶은 분들께도 좋고, 또 출판 시장에도 다양한 컨텐츠들이 다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죠.


 힘든 점은 제 생각에는 단가에요. 독립 출판 자체가 일반 출판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낮지는 않아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인쇄, 포장, 물류, 교정 소소한 것들까지 챙기면 단가가 꽤 높아져요. 제작 수량을 늘리면 단가가 낮아지긴 하겠지만 그러면 재고 위험을 떠안아야 하잖아요. 딜레마가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독립 출판 책들이 일반 책들보다 조금 비쌀 수밖에 없어요.


Q. 그럼 독립 출판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래환 님은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만류하고 싶으신가요?


 추천이요. 강.력.추.천! 왜냐면 결과물이 남으니까요. 설령 남는 게 돈이 아니라 재고라고 해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책에도 챕터가 있잖아요. 책을 만든다는 건 이 챕터를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20대 후반에 책을 하나 만든다고 하면 그때까지의 삶을 반추해보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거죠. 꼭 삶의 전체를 다루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취미든 취향이든 정말 소소한 분야든 뭐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물론이건 제 생각일 뿐이기는 하지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아이디어로만 두지 마시고, 아웃풋으로 바꾸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추천하는 거죠. 아, 하지만 단가 계산은 꼭 잘 하셔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래환 님은 공공일호의 공식 보안관이시잖아요. 공공일호에서의 래환 님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한다면 무엇인가요?

 

 (깊은 고민 후) “커뮤니티 매니저 서포터. 커뮤니티 맨. 오지라퍼.” 저는 공공일호에 깊은 애정이 있어요. 제가 공공일호에 입주한 때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요. 그때는 이것저것 세팅할 게 많아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어요. 제가 일할 곳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좋았고, 그때마다 공공일호 분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시니까 더 힘이 났죠! 이게 공공일호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요. 덕분에 공공일호에 와서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어요! 정말 진심입니다! 모두 커뮤니티 매니저와 페어(공공그라운드 대표) 덕분이에요. 이거 꼭 써주세요. (웃음)


저야말로 늘 함께 해주시고 또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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