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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Nov 25. 2020

당신의 밤 낱말들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4 <유희경과 밤> 리뷰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은 텍스트를 낭독하고, 텍스트 안팎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텍스트클럽의 멤버, '텍스트클러버'의 더 깊은 영감을 위해 책 너머 창작자의 생각과 나의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합니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텍스트를 '읽는' 일방향의 경험이 '읽고 나누는' 쌍방향의 경험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합니다.


글 | 우주

사진 | 아침달, 공공그라운드



코로나 19로 잔뜩 움츠러든 마음, 어떻게 돌보고 계신가요? 네 번째 텍스트클럽은 고요한 밤에 어울리는 산문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과 함께 했습니다. 유희경 시인님이 10년 동안 모은 낱말과 문장을 사이에 두고, 텍스트클러버들과 서로의 밤에 떠오른 낱말을 나누었습니다. 11월 저녁을 따뜻하게 채워준 텍스트클럽 04 "유희경과 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텍스트클럽 04 <유희경과 밤> ⓒ 아침달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불빛을 밝혔습니다. 노트를 펼치고 창문을 열고 서늘한 밤바람을 등지고 앉았습니다. 타박타박 적어갔습니다. 적어가던 낱말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이어져 무수한 계절을 지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때로 멈추고 잊기도 했으나 매번 돌아와 다시 적어가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가 나의 것이 아닌 줄 알게 되었지요. 아니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당신만이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신호를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먼 별의 빛으로 여기와 거기 간의 거리를 재는 과학자처럼. 나는 이야기의 주인을 두고 적어가는 사람. 

당신이 보내준 이 이야기가 좋습니다. 좋아서 밤이 내게로 옵니다. 저녁이 어둑어둑해지고, 당신이 좋아서 귓속이 따뜻해집니다. 좋아서 책상은 어두워지고 불빛을 밝히고 거기에 앉습니다. 어둑어둑해진 손끝으로 그 신호를 받아 적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오는 밤을 맞이합니다. 

- 유희경,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16~18쪽 발췌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이하 <밤 낱말>)을 읽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두운 밤, 밤을 밝히는 스탠드 불빛,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시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책상 앞에 홀로 앉아 무언가를 쓰는 장면이었죠.


‘글을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이고, 읽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척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번 텍스트클럽은 사회자 없이 창작자만 무대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텍스트클러버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텍스트클럽은 책이 다루는 콘텐츠를 텍스트클러버와 공유하고, 책 너머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행사니까요.


유희경 시인(이하 ‘유’): 제가 일하는 서점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총 두 번의 길을 건넙니다. 한 번은 로터리에서, 또 한 번은 KFC 앞 횡단보도입니다. KFC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요. 새삼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위에 까치가 무리 지어서 앉아있는 걸 보는데, 갑자기 가로등이 불을 탁 밝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이제 밤이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기 오시는 여러분들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들은 어디서 밤을 맞이하실까.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택시 안에서, 혹은 걸어오면서 밤을 맞이하셨겠구나. 그 밤, 어느 타이밍, 언제일까. 그런 걸 궁금해하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보고 싶더라고요. ‘어서 만나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입장할 때 <밤 낱말> 노트와 고맙게도 다 깎여있는 연필을 받으셨을 텐데요. 그것들을 활용해서 각자 자신의 밤 낱말을 수집하시면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때의 과정이 그러했습니다. 하루 동안 지나오면서 느꼈던 점,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 생각했거나 상상했던 것을 노트에 적고 이야기를 만들었거든요. 이 행사가 끝나고, 밤에 혼자서 이야기를 완성해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프닝 낭독 ⓒ 아침달


행사를 준비하며 텍스트클러버 분들께 사전에 이야기를 받았습니다. 깊은 밤 내 곁을 맴돌았던 낱말, 종일 곱씹었거나 스쳐 지나갔던 문장을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왼편’, ‘을지로’, ‘여섯 해의 여름’이라는 낱말을 수집했습니다. 이별과 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유: 밤에 대한 이야기는 어쩜 이렇게 외톨이들의 이야기일까요.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해서, 내가 이분들께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첫 번째 사연은 제 글 중에서 ‘왼편’이라는 글에서 착상을 얻으셨다고 해요. 왼쪽을 보지 못한다는 건 왼쪽의 세계가 지워지는 일과 같더라고요. 그래서 위험한 일도, 사랑스러운 것도, 왼쪽에 있는 것들은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내가 가지고 있는 흠결 같은 건 보여주고 싶지 않죠. 늘 근사하고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죠. 싸우고 나서 속이 상하는 까닭은, 대체적으로는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에 대한, 저 같은 경우에는 지질한 모습을 들켰다는 속상함이거든요.

사람은 사람의 전체를 다 볼 수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아주 여실하게 깨닫게 되죠. 이런 일이 있으면. 다 보고 싶은 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고, 다 볼 수 없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은 다른 거잖아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인 것처럼.


‘왼편’과 ‘왼편’의 이야기를 나누고, 한 텍스트클러버가 ‘맞은편’이라는 낱말을 건져주셨습니다. 눈치채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유일한 방법은 맞은편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사연자 분께는 유희경 시인님께서 손으로 직접 쓴 <밤 낱말> 카드를 선물로 전해주셨습니다.

유: 제가 드릴 문장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문장이에요. 118쪽의 “당신이 당신으로 걸어와 나를 찾아내 당신으로 서 있을 바로 이 순간에.”입니다.


텍스트클러버의 사연을 읽으며 ⓒ 공공그라운드


이별의 순간을 담은 ‘을지로’라는 사연을 듣고, 이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과 ‘차단’, ‘허락’, ‘편의점’이라는 낱말을 수집했습니다. 텍스트클러버와 함께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비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사연을 쓰신 텍스트클러버에게는 144쪽의 문장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갑작스레 혼자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번 텍스트클럽에 모인 사연은 공교롭게도 이별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여섯 해 동안 함께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냈다는 세 번째 사연 끝에도 여러 가지 낱말과 문장이 달렸습니다. 


유: 저는 ‘여섯 해의 여름’이라는 사연을 읽고 주워 올린 밤 낱말이 하나 있어요. ‘반딧불이’ 요. 저는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저한테 어디 가면 볼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데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는 거기 갈 의지가 없어요. (웃음) ‘반딧불이가 서울로 찾아오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해요. 서점에 반딧불이 하나 있으면 근사할 것 같은데. 

또 보고 싶은 것은 ‘오로라’ 예요. 오로라에서 소리가 난대요. 제가 생각하기엔 베토벤의 ‘합창’ 같은 게 들릴 것 같아요. 또 하나는요. ‘360도 지평선’을 보고 싶어요. 몽골 사막에 가면 볼 수 있대요. 그런데 저한테는 몽골 갈 의지도 없습니다. (웃음) 그곳에 서 있으면 360도가 지평선이고, 그러면 내 위에 뚜껑이 덮여있는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궁금해요. 


특히 '여섯 해의 여름'이라는 사연에는 친구와 연인 사이를 넘나들며 느꼈던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연은 아니었기에, 사연 쓰신 분과도 조금 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유: 사연 쓰신 분께 진짜 궁금한 게 있었어요. 정말 마지막 편지인가요? 왜 갑자기 마지막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텍스트클러버: 마지막 편지일 것 같고요. 마지막 전화를 받았던 게 벌써 2년이 지났어요.

유: 나의 한 시절이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기도 하겠네요. 여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대단하잖아요. 

텍스트클러버: 약간 비슷한 것 같아요. 이런 관계와 비슷한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 쉽지 않은 관계죠. 보통 헤어지고 얼마 안 되면,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러지 않으신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요. ‘친구로라도 남겨놓아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밤 낱말>에서는 어떤 글을 좋아하세요?

텍스트클러버: ‘성당’이라는 글, 그리고 ‘베란다’도 좋아했어요.

유: 마침 선물로 드릴 것이 ‘베란다’에 있는 문장이네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동네와 옆 동네와 먼 동네들의 아스라한 집들을 나는 사랑했다.” 


밤 낱말 수집중 ⓒ 아침달


유: 서점에 오시는 분들이 꽃을 선물해주세요. 서점에 생기를 넣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 것 같고, 그게 위로가 돼요. 저는 <밤 낱말>이 그런 책이길 바랐어요. 하루에 한 편씩, 두 편씩 자기 전에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썼죠.

요즘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밤 낱말>을 위한 밤 낱말을 쓰고 있어요. 얼마나 더 지속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도 밤 낱말을 수집하고 있어요. 이걸 하면 밤에 늦게 잔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하루를 골똘하게 한 단어로 정리해보려고 노력한다는 거예요. ‘나한테 오늘 어떤 일이 있었지?’ 하고요. 여러분한테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는 ‘시인이 미처 담지 못한 낱말’을 주제로, <밤 낱말>에는 수록되지 않은 시인의 밤 낱말을 공유했습니다. ‘심심’부터 ‘퇴근’, ‘독서’, ‘후배’, ‘술’, ‘할머니’, ‘낙엽’, ‘버스’, ‘시인’, ‘친구’, ‘밤 낱말’까지 총 11개의 낱말을 수집한 이유와 낱말에 얽힌 사연을 들었습니다.


유: 제가 <밤 낱말>에 제대로 담지 못한 낱말이 있다면 ‘심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제 올린 텍스트인데요. 어제 너무 심심해 보이는 손님 한 분이 찾아오셔서 정말 따분하다는 듯이 시집을 훑고 가셨어요. 아무것도 안 사 가시는데도 불구하고 ‘귀한 손님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심해서 서점에 오는 사람.

우리 서점에 오는 많은 분이 ‘위트 앤 시니컬 오려고 일부터 책을 안 사고 있었어요.’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 움큼씩 데려가시거든요. 우리 서점에 심심해서 오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불어 내 삶에도, 여기 있는 ‘당신’들의 삶에도 심심이라는 단어가 좀 더 깃들었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심심한 거 잘 못 견디잖아요. 어느샌가 심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렸어요. 유튜브가 생기고, 모바일 SNS가 생기면서. 저는 여러분들이 되게 심심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하게 집에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가지고 싶게 된 것은 나를 앞에 두고 당신이 적어간 말들
- "연필",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171쪽



유: 책을 쓸 때 책과 어울리는 계절을 상상하게 되는데, <밤 낱말>은 겨울밤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파랑새극장에 도착할 때쯤이 다섯 시 반이었는데, 가로등 켜지는 걸 보면 ‘이제 밤이군’ 하거든요. 그럴 때 여러분들에게 문득 생각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저자로서의 바람, 여러분들의 친구로서 감기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리고 마음 건강도 잘 챙기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마지막으로 낭독하는 글은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선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시고, 좋은 밤 되시고, 부디 안녕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텍스트클럽 04 <유희경과 밤> 무대 ⓒ 공공그라운드


코로나 19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며 진행한 네 번째 텍스트클럽은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심심하셨기를, 침대에서는 단잠 주무셨기를 바랍니다. 밤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혼자만 간직하기 아쉬운 이야기가 있다면, 다정한 밤을 만들고 싶다면 #반짝이는밤의낱말들 태그와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텍스트클럽은 아쉽게도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의 클럽 문을 닫습니다. 코로나19 추이에 따라 조금 빨리 ‘당신’과 마주앉을 수도 있겠지요.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글은 유희경 시인님의 낭독 텍스트로 마칩니다.



그러나 달은 사이의 물질 아니던가요. 달을 보고 있는 사람과 달을 보고 있는 사람의 사이. 그 가운데 달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달을 두고 정확히 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지요. 달과 지구의 거리는 삼십팔만 킬로미터.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그 거리는 삼십팔만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무용할 따름입니다. 모두 한 줄에 놓여있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달 아래 모든 것과 무척 가까워집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상념에 사로잡혔습니다. 

방금 바람이 불었고 나는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건너지 않았을까요. 그 밤은 길고 길어지다가 점점 사라져갔고, 아쉬워하면서 작은 것들에도 나란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지. 때로 같은 이불을 덮은 것처럼 서로의 나지막함에 반응하면서 소리 죽여 웃거나 가느다란 침묵에 기대 있지 않았을까요. 어떤 밤엔 입술의 감각에 마음을 다 내어주고 아득한 곳까지 다녀오는 기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나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 채로 있었습니다. 

미래의 일과 과거의 일이 만나 그것이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다니. 오지 않은 일들이 오지 않을까 봐서 안달하는 마음이 그만 깊어지고 말았지요. 달을 만지고 싶은 어린 손처럼 어쩔 수 없는 일과 그리하고 싶은 마음이 닿아서 어쩌지 못하는 바람이 하나 생겼습니다. 누가 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인사에 가득 안긴 채 내가 지내온 밤들을 읽고 새 밤을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내가 원했던 것처럼 분명, 어느 밤의 당신도 그러하겠지요. 그러니 전해요. 잘 자요. 잘 자요 당신. 

- 유희경,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315~318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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