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순간,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다"
오랜만에 사무실 한쪽에 홀로 앉았다. 이제 이 자리에는 더 이상 샘플 원단이나 거래처 목록이 쌓이지 않는다. 예전처럼 전화벨이 나를 다급히 부르지도 않는다.
대신 옆 작업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원단 공장을 이끌고 있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며, 가끔씩 묻는 질문에 조용히 답해줄 뿐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바람 한 점 없이 서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고요 속에서, 바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내가 겹쳐져 보였다. 늘 앞장서서 짐을 짊어지고 달려왔던 나는, 멈추는 법을 몰랐고, 움직여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내 숨결은 조용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내 숨결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되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손을 놓는 법을 배우다"
아들에게 사업을 맡기기 전, 가장 큰 두려움은 이것이었다. "내가 손을 놓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손을 조금씩 떼고 보니, 두려움은 곧 배움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답답함이 앞섰다. 아들이 내 방식과 다르게 일을 처리할 때마다, 속으로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을 붙잡고, 마음속에서 천천히 되새겼다. “가르침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기다림이다.” 그렇게 나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그의 방식이 스스로 빛을 발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들의 방식 속에서 '나는' 젊음의 감각과,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음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만든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일을 손에 쥐지 않아도, 사업은 제 흐름을 따라 흘러간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는 사람’에서 ‘일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그 멈춤은, 무력함이 아니라 내려놓음에서 비롯된 또 다른 힘이었다.
이제 직원들이 아니라, 아들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더 이상 ‘사장’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그를 뒤에서 밀어주는 조용한 코치가 되었다. 이 관계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 따뜻함이 스며 있다.
젊은 시절의 나는 늘 확신에 차 있었다. “길이 없으면 만든다. 길이 아니면 다시 시작한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나는 묻는다. “네 생각은 어떠니?” 그리고 조용히 대답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쉽지 않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내 방식이 더 옳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배워간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백은,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함께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예전 같으면 하루의 성공은 매출이나 성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들이 긴 고민 끝에 내게 조언을 구하는 순간,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웃는 모습을 볼 때, 그것만으로도 성과였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일에서 한 걸음 물러선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일까?’
그 물음에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멈추어 선 지금,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을 놓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아들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조금씩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고, 여전히 한 사람이다. 일이 전부였던 과거를 내려놓고, 삶의 여백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할 떼, 언젠가 바람이 불어 새로운 길을 열어줄 때, 나는 더 가벼운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글을 마치며
손을 놓는다는 건 무너짐이 아니라, 내려놓음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나의 시작입니다. 그 빈자리에 자식들이 자라고, 그 여백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일과 삶의 경계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그 경계 너머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앞서 걷지 않습니다. 다만,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바람이 불어 새로운 길을 열어줄 때 그 길을 더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려놓음의과정 #아버지의 성찰 #삶과일의 균형 #세대의 이어달리기 #중년의 멈춤 #코치로 사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