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는 변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남는다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영원하다

by fabio Kim

"말 한마디가 남긴 깊은 흔적"


세상에는 참 신기한 순간들이 있다. 그냥 지나쳐버릴 법한 평범한 하루가,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갑자기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변하는 순간 말이다. 며칠 전, 염색 공장 일로 오랜만에 시내를 나섰다가 그런 순간을 맞았다. 골목 모퉁이에서 마주친 한 사람의 얼굴이 나를 10년 전 기억 속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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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민수였다. 한때 나와 같이 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긴 채 각자의 삶을 살아온 후배였다. “선배님!”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밝은 기운과 힘이 느껴졌다. 우리는 반가움에 가까운 카페로 향했고,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그의 근황, 결혼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헤어지기 직전, 민수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선배님이 그때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거다.’ 그 말씀 때문에 제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어요.”


나는 그 순간 멈춰 섰다. 정말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봐도 정확히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10년 넘게 살아 숨 쉬고, 그저 흘려보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다는 사실은, 나를 깊은 침묵 속으로 데려갔다.


"성과보다 기억에 남는 순간"


그날 밤, 나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빛바랜 명함들을 꺼내 보았다. 한때 내 정체성을 규정해 주던 ‘○○ 대표’라는 글씨는 세월의 무게만큼 흐릿해져 있었다. 젊은 날의 나는 이 작은 종이가 가진 권위와 힘에 취해 있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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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함께’를 외쳤지만, 속으로는 늘 ‘성과’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쫓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늘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사람과 숫자 사이, 관계와 결과 사이에서 흔들리던 내면의 이중성을 이제야 조용히 반추해 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대표’라는 이름으로 누렸던 가장 귀한 순간들은 화려한 승리의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곁을 지켜주던, 조용한 연대의 시간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명함은 빛을 잃었지만, 그 종이 안에 담겨 있던 사람들의 숨결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숨결은 성과보다 오래 남고, 직함보다 깊게 스며든다. 그것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결이었고,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관계의 여운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일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흔적이라는 것을..


"마음은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


그 흔적은 때로 말 한마디로 남고, 때로는 조용한 배려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내가 건넨 작은 진심을, 어느 누군가 에게 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마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한다. 그렇게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고,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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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무는 따뜻한 정서 일 것이다 그 정서야말로, 우리가 이 삶에서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일지도 모른다. "일은"언제나 끝이 있지만, 그 안에서 나눈 마음은 끊임없이 흐르며 새로운 관계의 물길을 터준다. 민수와의 재회에서도 그랬듯이, 우리가 정말로 남기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새겨진 따뜻한 흔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진심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다"


젊은 날의 나는 일이 곧 나를 규정한다고 믿었다. 내 정체성은 직함에 있었고, 내 가치는 오직 성과로만 측정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삶이라는 무대에서 조금씩 손을 놓아갈 때, "정작 소중한 것은 무대 뒤편에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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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때때로 묻는다. “아버지,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물론, 다르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고, 더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부족했고, 때로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변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 나는 내 자리에서 진심을 다하려 애썼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진심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기억이 되어 있다. 후회는 남지만, 그 기억 속의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원단 공장에 발을 딛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이 아니다. 큰 방향을 제시하고, 때로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건네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조용히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함께했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들의 안부 속에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명함에 새겨졌던 나의 직함은 시간이 흐르며 옅어져 가지만,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일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진심만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가치가 아닐까. 그리고 그 진심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삶에서 남긴 가장 조용한 흔적이 아닐까..



글을 마치며

명함에 적힌 직함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지만, 마음에 새겨진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도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가며, 또 누군가를 우리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 보이지 않는 연결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요..


무심코 건넨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겉으로는 홀로 존재하는 듯, 보이는 우리도, 사실은 서로의 마음속에 한 조각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삶에서 남기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은, 눈에 보이는 성과나 업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조용히 남겨진 따뜻한 진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깊이 깨닫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 속에, 아주 작은 울림 하나라도 전해드릴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보람입니다.


해시태그: #일의 의미 #인간관계 #중년의 성찰 #진심 #연결 #시간과 기억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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