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은 연결하지만 마음은 멀어진다"
가끔씩 문득 떠오릅니다. 원단 공장의 기계 소음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던 그 순간들.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있었고, 그 짧은 접촉 속에 담긴 마음은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성과라는 이름 아래 쫓기면서도, 결국 사람의 온기 속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온기가 머물던 자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율과 속도라는 이름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손끝으로 느끼던 촉감, 눈빛으로 나누던 침묵, 말없이 건네던 작은 배려마저도 점점 사라져 갑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오래된 방식이나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사람의 온도와 마음의 결이 아닐까요? 기술은 우리를 더 가까이 연결해 주는 듯 보였지만, 정작 마음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시 손끝의 촉감과 눈빛의 언어를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 그 느린 감정의 회복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오래된 스탠드 조명이 하나 있습니다. 회색 플라스틱으로 된 스위치에는 미세한 균열이 있고, 눌릴 때마다 ‘딸깍’ 소리를 내며 손끝에 작은 느낌을 남깁니다. 켜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스위치를 가끔 눌러봅니다. 그 짧은 동작 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의 순간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그 스위치를 눌러 하루를 시작했고, 밤이면 다시 눌러 고요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던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이 켜지고 꺼지는 시대. 터치 한 번에 불이 들어오고, 음성 명령으로 음악이 흐릅니다.
편리함은 늘어났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낡은 스위치를 누르던 그 짧은 순간, 손끝에 전해지던 느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나만의 리듬. 그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오래된 스탠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조용히 스위치를 눌러봅니다. ‘딸깍’ 하고 울리는 그 소리 속에서, 잊고 지냈던 감정이 다시금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닙니다.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살아 있는 감각입니다. 빠르지 않지만 잊히지 않는, 그 속에는 분명한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는 투명한 벽 너머로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가상현실 속의 아바타, 화면 속의 얼굴, 그리고 감정을 대신하는 이모티콘들. 빠르고 효율적인 관계의 도구들이지만, 그 안에서 감정은 점점 파편화되고 그 깊이를 잃어 갑니다.
가끔은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직원들과 밤샘 작업을 마친 뒤 나눠 먹던 컵라면의 맛, 퇴근길 갑작스러운 빗줄기 속에서 우산 없이 함께 달리며 주고받던 시시콜콜한 농담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층위를 함께 쌓아 올렸습니다. 그것들은 명확한 언어가 아니라, 함께한 공간과 시간의 공기 속에서만 존재하던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감정은 ‘좋아요’나 ‘슬퍼요’ 같은 단 하나의 반응으로 점점 단순화되어 갑니다. 화면 속 간결한 아이콘은 찰나의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복잡하고 겹겹이 쌓인 감정들, 슬픔 속의 희망, 기쁨 속의 불안 같은 미묘한 감정은 점차 표현될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이 감정을 밀어내는 방식은 격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을 지나치게 정제하고, 그 깊이와 파동을 평평하게 만드는 조용한 작업입니다. 이 ‘효율적인’ 감정 처리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기술이 빼앗아 간 것이 ‘일자리’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삶은 더 빠르고 편리해졌지만, 그 속도에 밀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린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끊임없이 연결된 채 감정을 소모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지. 당신의 손에 들린 그 작은 화면은, 과연 당신의 마음과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요?
기술이 감정을 밀어낸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조용히 되묻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작은 순간, 바로 그곳에 우리의 진짜 삶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보다,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가’에 더 귀 기울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술의 화려함 뒤편에서 잠시 멈춰 서보면, 그제야 비로소 잊고 지냈던 자신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그 길이 쓸쓸할지라도, 그 끝에서 마주한 온전한 나 자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가장 진실한 풍경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기술이 우리에게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선물을 건네주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정작 삶의 가장 깊은 부분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 잊힌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낡고 느리더라도,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이 조용히 숨 쉬고 있으니까요.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다시 마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 길은 어쩌면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쓸쓸할지도 모르지만, 그 끝에서 마주할 온전한 나 자신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진실한 풍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길 끝에서 마주할 온전한 나 자신을 위해, 오늘도 조용히 스위치를 눌러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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