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삶의 방향이다"
나는 오래된 습관 하나가 있다. 늘 조그만 수첩을 들고 다니며, 그날의 중요한 일정과 급한 업무, 해야 할 일들, 전화번호,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들까지 메모하는 것이다. 어느새 그 습관은 20년이 넘게 이어져 왔고, 다 쓴 수첩들은 책장 한쪽에 조용히 쌓여 있다. 그렇게 수첩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책장의 한편을 묵묵히 채우며 나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얼마 전, 그중 하나를 무심코 꺼내 들었다. 10년도 더 된 수첩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급한 업무 메모들 사이사이로 내가 무심코 끄적여둔 생각의 파편들이 숨어 있었다. “왜 월요일 아침은 늘 무거운가?”, “비 오는 날의 고객은 왜 더 친절할까?”, “점심시간 15분 연장이 팀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은?” 업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질문들을 단순한 잡념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엉뚱하고 사소한 질문들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시간의 진짜 흔적이며,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하는 사유의 씨앗이었다는 것을.
수첩 속 물음표들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두 개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는 약속과 마감에 쫓기는 현실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들이 조용히 머무는 내면의 시간이다. 수첩은 그 두 시간의 경계에서 묵묵히 증언하고 있었다. 삶의 겉과 속, 격식과 감정 사이를 오가며 그 모든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왜 월요일 아침은 늘 무거운가?”라고 적힌 메모 옆엔 ‘김팀장 보고서 확인’이라는 글씨가 나란히 적여 있었다. 그날의 나는 김팀장의 보고서를 꼼꼼히 검토했지만, 정작 내 마음의 무게에 대해서는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주 반복되는 삶의 패턴 속에서 스며든 존재의 권태였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첩을 넘기다 또 다른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복사기 소리가 반복될수록 왜 내 하루가 복사된 것처럼 느껴졌을까.” 그 아래엔 ‘오후 3시 회의’라는 단출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복사기와 회의,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부조화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일상의 틈새로 스며드는 기억의 힘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그리움의 메커니즘을.
그렇다. 우리의 하루는 업무 메모와 엉뚱한 질문들이 나란히 공존하는 수첩과 같다. 겉으로 보기엔 뒤죽박죽이지만, 실상은 삶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정직한 기록이다. 나는 그 기록들 속에서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은밀하고도 다정한 대화를 읽어낸다. 그 대화는 말이 아니라,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닳지 않는 마음의 흔적이 된다
빼앗긴 시간은 공허하지 않았다. 그 시간은 오히려,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면의 풍경을 조용히 비추는 거울이었다. 일상이 멈춘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동안 밀쳐두었던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왜 나는 늘 같은 길로만 출근할까.”
“언제부터 창밖 풍경을 보는 일이 사라졌을까.”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게 언제였을까.”
이런 질문들은 평소엔,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멈추면, 그 익숙함이 오히려 크게 들린다. 마치 조용한 방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처럼. 빼앗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지나쳐온 질문들을 다시 꺼내 읽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마치 오래된 씨앗처럼 우리 안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 뿌리는 감정의 결을 따라 자란다. 불안, 그리움, 후회, 그리고 희망. 그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며, 그 흔적 위에 사유는 자라난다. 사유는 감정의 잔가지들을 타고 올라와,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시선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틀어놓는다.
나는 그걸 수첩을 통해 배웠다.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사라졌을 질문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았을 때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단서가 되어 있었다. 그 단서들은 말이 없었다. 다만, 조용히 존재했고,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다.
빼앗긴 시간은, 결국 질문이 자라나는 가장 깊은 토양이었다. 그 토양은 겉으로는 황폐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잊고 지낸 사유의 씨앗들이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언젠가 또 다른 질문으로 피어나 나를 다시 멈추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나는 또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지금 나는 그 오래된 수첩을 책상 한편에 펼쳐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10년 전의 질문들이 10년 후의 나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은, 마치 시간의 결이 겹쳐진 풍경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어떤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어떤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물음들이 지금의 나를 빚어낸 조각들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려는 자세,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완벽한 해답을 찾기보다는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여유 말이다.
나는 오늘, 새로운 수첩에 또 하나의 질문을 적는다.
“나는 왜 아직도 질문을 멈추지 않을까.”
이것은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작고 단단한 약속이다.
수첩은 오늘도 내 곁에 있다. 새로운 질문들을 기다리며, 또 다른 시간의 층위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오늘의 이 질문들을 다시 펼쳐보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또 다른 성찰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 사유의 씨앗은 또 다른 시간 속에서 자라날 것이다.
혹시 당신도, 그 빼앗긴 시간 속에 남겨진 질문 하나를 조용히 꺼내어 마주해 볼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 질문이,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씨앗이 되어줄 수 있을지… 그건 당신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나는 그 오래된 수첩을 책상 한편에 펼쳐두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손을 멈추고, 그 속에 남겨진 질문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작은 속삭임이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서두르지 마. 질문은 답보다 오래 남는다.”
그 속삭임이 틀이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여유였는지도 모릅니다.
빼앗긴 시간이라 여겼던 그 순간들 속에서 사유의 씨앗은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 씨앗은 내면의 토양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언젠가 또 다른 질문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혹시 당신도, 어디선가 작은 질문 하나쯤 가슴에 품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 질문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그것이야말로 이 빠른 세상 속에서 당신을 당신답게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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