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마음의 자리,
지난 아홉 번의 글을 쓰며, 나는 내 안의 여러 목소리들과 마주했다.
일과 삶의 경계에서 길을 잃었던 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나, 기술 앞에서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일어선 나, 그리고 빼앗긴 줄 알았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사유의 깊이를 되찾은 나.
오늘 아침, 다시 펜을 들고 앉았다. 그 순간, 잊고 지냈던 기억 하나가 고요히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써 내려온 이야기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일의 무게에 눌려 숨을 고르던 날들, 사람 사이의 온기를 붙잡고 싶어 조심스레 마음을 내밀었던 밤들, 기술의 속도에 밀려 흔들리다 결국 나만의 속도로 다시 걸어 나온 시간들.
그리고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은 끊임없이 변했다. 나도 그 흐름 속에서 함께 변했다.
변화는 끊임없이 나를 흔들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수없이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하나의 중심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진정성이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열 번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정작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용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배 민수와의 만남이 떠오른다. 그가 내 말을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거다’라는 그 한마디가 여전히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울림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 기계가 멈추지 않는 세상 속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갇혀 지내던 나를 위로해 준 건, 결국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멩이 같은 마음이었다.
AI 앞에 선 나는, 마치 오래된 수동식 필름 카메라 같았다. 빠르고 정밀한 기술의 물결 속에서, 느리고 섬세한 나의 방식은 한때 낡고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오히려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빼앗긴 줄 알았던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사유의 공간이었다는 깨달음까지.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하지만 강바닥의 돌들은 그 자리를 지키며, 흐름에 방향을 부여하고 의미를 더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 흐름 속에서 우리만의 속도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이 된다.
요즘 아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세대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 사용하는 도구는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인정받기를 바라는 감정은 세대를 넘어 닮아 있다.
기술은 일의 겉모습을 바꾸었을 뿐,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오히려 기술 덕분에 더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반복적인 업무에서 해방된 시간은 창의적 사고에 쓰일 수 있었고, 높아진 효율 덕분에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쏟을 수 있었다.
그날, 의도적으로 걸어서 출근하며 느꼈던 것처럼— 때로는 비효율을 선택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빠르게, 완벽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느리고 서툴러도,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변화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품어야 할 과정이다. 다만 그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키는 것. 그 중심이란, 사람을 향한 마음이고 삶을 품는 진심이었다는 걸, 이 연재를 통해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열 번의 글을 쓰면서 나는 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더 좋은 질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여정이니까.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모습도 변해간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를 바라보는 내 마음만큼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도 나는 멈춰 서서 바라볼 줄 알게 되었고, 지나가는 순간들 속에서도 의미를 붙잡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중심은, 사람을 향한 마음. 삶을 품는 진심.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가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네 마음의 속도는 네가 정하는 거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기술을 어떻게 쓸지는 네 마음이 결정하는 거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잃는 순간에도, 우리는 삶의 방향을, 다시 그려가며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어디로 가는지보다,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묻는 그 순간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
완벽한 답이 아니라 진심 어린 질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은 한마디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을 남길 수 있다. 그 씨앗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마음을 건너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지켜야 할 단단한 중심을 함께 만들어간다.
열 번의 연재를 통해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고, 독자 여러분의 댓글을 통해 공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의 자리를 확인하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연재는 끝났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는 마음들이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마음들이 모여,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의 말씀
열 번의 연재를 함께 걸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마음 깊은 댓글로 격려해 주신 덕분에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공감과 응원은 제게 큰 힘이 되었고, 글을 쓰는 시간마다 따뜻한 동행이 되어주셨습니다.
비록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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