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속에 남겨진 나의 흔적들”
사무실 한편, 내 손때가 고스란히 배인 오래된 수첩 하나를 꺼내든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말 없는 동반자다. 예전엔 급한 일정과 전화번호, 해야 할 일들로 빼곡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메모들이 적히지 않는다. 아들에게 사업을 맡기고 한걸음 뒤로 물러선 지금, 이 수첩은 마치 나처럼, 이제는 흐름을 지켜보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다 보니, 업무 메모들 사이사이로 내가 무심코 끄적여둔 물음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왜 월요일 아침은 늘 무거운가?", "커피머신의 윙윙거림이 반복될수록 왜 내 하루가 기계처럼 작동되는 느낌이 들었을까?" 그 시절엔 그냥 잡념이라 여겼던 이런 질문들이, 지금 보니 내가 살아온 시간의 진짜 흔적이었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쁘게 달려오면서 놓쳤던 질문들, 급한 일들에 밀려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들려온다. 빼앗긴 시간은, 결국 질문이 자라나는 가장 깊은 토양이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되짚어보는 사이, 문득 깨닫게 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그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쌓아온 일상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동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내면의 풍경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 그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일 말이다.
수첩 속 질문들을 읽다 보니,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려 했는지가 보인다."오늘 계약 성사시키려면 어떻게?", "사람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경쟁사 대응 전략은?" 온통 무언가를 장악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마치 모든 것을 내 손안에 넣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아들에게 사업을 맡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성장이라는 건 더 많이 쥐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서로를 믿고 놓아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답답함이 앞섰다. 아들이 내 방식과는 다른 길을 택할 때마다, 속으로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것을 조용히 품고 바라보았다. 가르침이란 결국, 말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시간 속에서, 진짜 배움은 자라난다는 걸.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배워갔다. 내 방식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그가 걷는 길에도 나름의 이유와 흐름이 있음을.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의 방식 속에서 나는 젊음의 감각과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음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음을.
이제는 내가 직접 손에 쥐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마다의 리듬을 따라 흘러간다.
손을 놓는다는 것은 무력함의 표시가 아니라,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수첩을 넘기다 문득, 그 시절의 나는 모든 질문에 빠른 답을 찾으려 애썼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지금 가장 현명한 선택은?”
질문은 늘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여겨졌고, 나는 그 답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지금, 그 질문들을 다시 마주하며 깨닫는다.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렇게 질문의 의미를 되짚는 사이, 나는 수첩 속에 남겨진 작은 흔적들에 눈길을 멈추게 된다.
그 흔적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자, 놓치고 지나온 마음의 자취였다.
예전엔 질문이란, 문제를 풀기 위한 열쇠라고만 생각했다. 빠르게 답을 찾고, 결론을 내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질문들이 남긴 자국이야말로, 내가 무엇을 갈망했고,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진짜 흔적이었다.
수첩 속에 남겨진 짧은 물음표 하나가, 그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그 물음표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내가 멈추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마음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흔적을 따라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깊게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제는 답을 재촉하지 않는다. 질문들을 마음속 깊이 품고, 그것이 천천히 익어가기를 기다린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은 더 이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숨결처럼, 그 질문은 매일의 삶 속을 조용히 떠돌며 나와 함께 머문다. 언제 떠오를지 알 수 없지만, 문득 멈춰 선 순간,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울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잊고 지낸 내 마음의 결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그렇게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나는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지 않는다. 다만, 그 물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조용히, 그리고 충실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아들과 대화할 때도, 이제는 성급하게 조언하려 들지 않는다.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물으며,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배워간다. 진정한 지혜는 말이 아니라, 말 사이의 여백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여백은,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그동안 지나쳐온 풍경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일이다.
젊은 날엔 늘 앞을 향해 달렸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질문은 늘 답을 재촉했고, 삶은 빠른 결론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질문은 답보다 오래 남고,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티나무 아래서 멈춰 선 산책길에서,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도 느끼게 된다.
지혜는 말이 아니라 여백에서 자라고, 그 여백은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피어난다.
나이 듦은 무너짐이 아니라, 내려놓음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시작이다. 손을 놓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멈춰 서야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앞서 걷지 않는다.
다만, 함께 걸어간다. 질문과 함께, 기다림과 함께,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나를 되찾아간다.
나이듦은 끝이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결을 따라 흐르는 조용한 노래였다.
질문은 늘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은 때로 불안이었고, 때로는 희망이었으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말없이 방향을 가리키는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첩 속 작은 물음표 하나가 삶의 궤적을 바꾸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나이듦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 깊은 나를 마주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말보다 여백을, 조언보다 기다림을, 정답보다 질문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 물음표 하나가, 아들과의 조용한 대화가, 멈춰 선 산책길의 햇살이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질문과 함께 걷고, 기다림 속에서 배우며, 그 속에서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질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삶에도, 조용히 머무는 질문 하나가 깊은 울림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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