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은 쌓아간다는 것"

“시간을 살아낸 흔적, 나이 듦의 미학”

by fabio Kim

"주름 속에 새겨진 이야기들"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선다. 일부러 바라보려는 건 아니지만, 세면대 위 칫솔을 집으려다 문득 마주치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엔 내 얼굴에 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 거울 속에서 나를 넘어선 어떤 풍경을 본다.


2.jpg


눈가에 깊게 새겨진 주름은 파도에 깎여나간 바위의 흔적 같고, 희끗한 머리카락은 세월의 서리가 내려앉은 산등성이처럼 보인다. 이 흔적들은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견뎌왔는지, 얼마나 자주 웃고 울었는지를 말없이 증언하는 듯하다.


이 주름들이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처를 지나며 나를 빚어온 시간의 자취라면, 그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훈장일까. 젊은 날엔 보이지 않던 시간의 힘이, 나이 듦이 되어서야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젊음이 잃은 것, 나이듦이 얻은 것"


젊음이 잃은 것은, 무모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복하겠다는 기세로 앞만 보고 내달리던 그 시절, 나는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가려볼 틈조차 없었다. 쉼 없이 달리는 기차처럼 풍경을 스쳐 지나가기 바빴고,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흘려보내곤 했다.


4.jpg


하지만 나이 듦은 그 속도를 늦추는 대신, 삶의 깊이를 선물해준다. 이제는 발밑의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걸음을 멈추고, 그 존재의 의미를 곱씹을 줄 알게 되었다. 예전엔 힘으로 밀어붙이던 일들을, 이제는 지혜로 풀어내는 법을 배운다. 체력은 젊은 날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단단해진 마음의 결은, 오히려 그 어떤 젊은이보다 깊고 단단하게 다듬어져 있음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경험이 쌓였다는 뜻을 넘어서,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의 다름을 품으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폭풍우에 흔들리는 작은 배가 아니라, 묵묵히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는 등대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쌓인 시간들의 무게와 온기"


시간의 축적은 단순히 나이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젊은 시절의 치기 어린 열정들이 서서히 녹아내린 자리에, 조용히 스며든 깊고 따뜻한 온기의 흔적이다. 내 마음속에는 이제 ‘경험’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보물창고가 자리하고 있다.


3.jpg


성공의 환호보다 실패의 씁쓸함이, 만남의 기쁨보다 이별의 슬픔이 더 많이 쌓여 있는 곳.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씁쓸하고 아픈 기억들이야말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삶이 거칠게 흔들릴 때면, 내 안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 “그때도 그랬잖아,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 그 목소리는 오직 시간을 살아낸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위로이자, 다시 걸어갈 힘이다.


이제는 타인의 아픔을 마주할 때, 섣부른 말보다 조용히 그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깊은 외로움 속에 있는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게가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 아래에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삶의 온기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감싸 안아주는 건 아닐까.


"나이듦, 또 다른 시작"


나이 듦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장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나는 삶의 목표를 향해 숨 가쁘게 오르막길을 달려야만 했다. 목적지가 분명했기에 길을 벗어날까 늘 불안했고, 옆길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더 이상 꼭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도, 길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5.jpg


삶의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길가의 벤치에 앉아 바람의 결을 느끼고, 한 그루 나무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서 잠시 머무는 여유가 생겼다.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내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젊음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에너지였다면, 나이 듦은 은은하게 오래도록 빛을 내는 숯불과 같다,격렬하진 않지만, 깊고 따뜻한 온기를 품은 채 조용히 삶을 데운다.


그 숯불은 과거의 열정이 남긴 흔적 위에서, 새로운 삶의 풍경을 그려나갈 조용한 힘이 되어준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이 남은 시간들은 새로운 모험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젊음이 아닐까.

나는 이제 지혜와 여유를 품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될까.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들이 내 앞에 조용히 펼쳐져 있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것들을 잃고, 또 얻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젊음의 속도를 잃고, 대신 삶의 깊이를 얻었듯 말이지요.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청춘의 모습이 아니지만, 그 눈빛에는 그 시절에는 없었던 따뜻함과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쌓아온 이야기들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듦의미학 #삶의축적 #중년의사색 #시간의선물 #마음의근육 #지혜의풍경 #인생2막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