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다

부서짐 속에서 피어난 성장의 결

by fabio Kim

"무너짐이 허락한 여백의 빛"


창가에 기대어 앉아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길게 스며드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빛은 방의 가장 은밀한 구석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은유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상실을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가장 진실했던 순간들은 오히려 부서짐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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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씨앗이 껍질을 깨뜨려야 싹을 틔우고, 나비가 번데기를 찢어야 하늘을 날듯이, 인간의 성장은 언제나 결핍과 균열을 통과하며 시작됩니다. 그 무너짐 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조용한 북소리였습니다. 상실이 남긴 빈자리는 허무가 아니라, 더 귀한 것이 들어설 여백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여백은 때로 고요했고, 때로 아팠지만, 결국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성공은 우리를 달콤한 확신 속에 머물게 하지만, 실패는 끊임없이 흔들며 묻습니다. “너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키운 가장 진실한 힘이었음을, 이제야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낡은 거울에 비친 시간의 주름"


책상 위에 놓인 슬림한 프레임 거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납니다. 거울의 표면은 매끈하고 차가운 유리지만, 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중년의 끝자락에 선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없던 주름들이 층층이 새겨져 있고, 그 주름은 단순한 나이의 표시가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남긴 내면의 지형도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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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삼십 대 초반,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겪었던 시절.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침묵의 공기였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때, 나는 젊은 날의 오만과 자존심을 끈적한 땀처럼 흘려보냈습니다. 실패는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 빈자리는 오히려 더 귀한 것을 담기 위한 여백이었음을, 나는 훗날 깨달았습니다.


쓰러질 때마다 바닥에서 주워 올린 자갈 같은 경험들이 아직도 손안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그 자갈들은 매끄럽지 않았고, 모나고 날카로워서 잡을 때마다 손을 베이게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매 순간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진실한 겸손을 배웠습니다.


성공의 순간들은 기억 속에서 환호성처럼 사라졌지만, 쓰러졌던 날들의 쓸쓸한 공기의 냄새와 차가운 바닥의 온도는 여전히 내 안의 깊은 샘물처럼 존재합니다. 무너질 때마다 발견했던 내면의 끈기와 나를 향한 조용한 위로만이, 이 시간을 견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자갈들을 지나온 지금, 나는 그 상처들이 내 삶을 이끌어온 조용한 등불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패란, 삶의 가장 깊은 시선"


나는 오랫동안 상실과 후회, 그리고 실패라는 단어를 마치 금기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언어들이 주는 무게가 두려워, 평생을 달음질치듯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부정적인 단어들이야말로 나를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끌었던 조용한 안내자였습니다. 실패가 없었다면, 나는 늘 얕은 물가에서만 머물렀을 것입니다. 실패는 물의 깊이를 알게 해 주었고, 수면 아래 숨어 있던 그림자를 감지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삶이 제게 건네준 가장 깊은 시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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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됩니다. 그리고 그 흉터들은 내가 어디에서 넘어졌고, 어디에서 다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지도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그토록 피하려 했던 좌절의 길이 사실은 나만의 유일한 길이었음을, 그 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음을,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의 본질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놓아주고,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패는 나에게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완벽하게 붙잡으려 했던 계획과 틀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짓게 했습니다.


실패를 통해 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감추고 있던 연약함과, 나 역시 외면했던 내 안의 부서진 조각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호흡으로 걷는 법을. 그 길은 느렸지만, 그만큼 단단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실패는 결국, 세상 그 어떤 성취보다 값진 영혼의 자양분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고요히 빛을 기다리는 틈새"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려봅니다.빛은 완전한 벽을 뚫지 못합니다. 오히려 금이 간 틈새를 통해 조용히 스며듭니다. 벽에 난 미세한 금, 창틀이 맞닿지 않은 작은 구멍. 나의 실패들도 그랬습니다. 그것들은 네 안에 틈을 만들었고, 그 틈으로 삶의 진짜 빛이 흘러들었습니다. 이제는 그 틈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틈 덕분에 내가 빛을 품을 수 있게 되었음을 조용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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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책상 위에 놓인 오래된 수첩을 바라봅니다. 빛바랜 표지와 구겨진 모서리, 수많은 페이지를 넘기며 남겨진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말해줍니다. 그 안에는 쓰러졌던 날들의 기억과 다시 일어섰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아갑니다. 부서졌던 조각들이 조용히 다시 이어져 만들어낸 이 모습 그대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완벽함이 아니라, 깨짐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님의 삶에도 분명 부서졌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조각들을 조용히 다시 들여다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 그 틈 사이로 어떤 빛이 천천히 당신을 감싸고 있는지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글을 마치며


나는 여전히 가끔, 오래된 수첩을 펼쳐봅니다. 그 안에는 실패의 기록과 다시 일어섰던 순간들이 얽혀 있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남겨진 글씨들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결을 이루는 무늬처럼 느껴집니다.


살아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보면, 가장 부서졌던 순간들이 오히려 내면을 가장 단단하게 빚어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무너졌고, 다시 일어섰으며, 또다시 흔들렸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삶이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깨어지고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빛은 언제나 틈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금이 간 자리, 조용히 벌어진 틈새, 그 어둠 속으로 빛은 조용히 흘러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상처는 저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듬어준 흔적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완벽해지려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서진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는 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수용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고, 천천히 화해합니다.




이 긴 성찰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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