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소통은 말 없는 순간에 일어난다"

침묵의 언어로 나누는 진실한 마음

by fabio Kim

"시간의 주름 속에 깃든 침묵의 무게"


비 내린 뒤 젖은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흙도 아니고 물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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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냄새를 맡으면 문득 어린 시절 골목길이 떠오르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기억되는 감각. 어쩌면 우리의 가장 진실한 소통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돌이켜보면, 정작 중요했던 순간들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걷던 그 고요한 산책길, 아픈 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호흡하던 그 긴 밤, 누군가의 눈빛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했던 그 찰나의 순간들... 그때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 없이도, 아니 오히려 언어가 방해받지 않았기에 더 깊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말은 진실을 가리는 얇은 막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정제된 단어를 고르는 사이, 내 안의 뜨거운 감정은 이미 식어버리고, 남는 것은 속이 비어버린 언어의 껍데기뿐이더군요. 하지만 침묵 속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만납니다. 그 만남은 어설프고 불완전했지만, 오히려 그 틈새에서 진실이 스며들었습니다. 이제 중년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그 여백을 언어가 아닌 고요함으로 채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젊은 날의 나는 늘 요란한 소리를 내야만 세상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공장의 베틀 소음처럼, 나의 말과 성취가 크고 단단해야만 존재가 증명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실패와 무너짐을 지나며 깨달은 것은, 결국 모든 소리가 잦아든 뒤에 남는 침묵의 무게였습니다. 나를 성장시킨 것은 성공이 아니라, 부서짐이 허락한 그 고독한 여백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짙은 남색 울 원단의 샘플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봅니다. 수많은 실타래가 얽혀 있으면서도 팽팽한 정적을 품고 있는 이 직물처럼, 가장 깊은 마음은 덧붙이는 설명 없이도 이미 상대의 내면을 향해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들에게 회사를 넘겨주며, 나는 오랜 경험을 단정적인 말 몇 마디로 압축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목소리의 크기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등을 바라봐 주는 시간의 농도 속에서 비로소 전해집니다.


언어의 울타리를 넘어, 말 없는 마음의 결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내가 깨달은, 가장 깊은 소통의 언어였습니다.



"베틀 소음 너머, 직물의 숨결"

공장 한쪽 구석, 이제는 낡은 고철 덩어리처럼 서 있는 오래된 직물기 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육중했던 그 몸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그 표면의 철제 프레임과 닳아버린 부품에서는 여전히 끈적했던 세월의 냄새, 기름때와 땀이 뒤섞인 역한 기억이 희미하게 배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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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나는 저 직물기가 내뿜던 쉴 새 없는 굉음이야말로 내 삶의 유일한 활력이자, 세상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라고 믿었습니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리가 컸던 만큼, 내 존재도 단단할 것이라 착각했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깊고 진실했던 가르침은 그 모든 소음이 멈춘, 적막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원단 수백 마를 통째로 폐기해야 했던 처절한 실패의 밤. 공장의 불이 꺼지고, 세상이 침묵에 잠겼을 때, 나는 아무 말도, 어떤 위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픈 침묵만이 방을 가득 채웠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직물의 결이 틀어졌던 미세한 틈새와 실타래가 품고 있던 습기의 차가운 온도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직물의 감각이 아니라, 실패가 남긴 침묵 속에서만 드러나는 진실의 징후였습니다.


그 감각은 나를 멈추게 했고, 사물의 가장 깊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했습니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자리에서, 세상은 오히려 더 진실한 목소리를 건네왔습니다. 나의 실패가 허락한 것은, 세상의 소란에 휩쓸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과의 단절이었습니다.


그 모든 외피를 벗겨낸 뒤 마주한 것은 ‘나’라는 존재와의 순도 높은 침묵이었습니다. 오직 이 고요 속에서만 우리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아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말은 공기를 흔들 뿐이지만, 침묵은 마음의 바닥을 천천히 울립니다.



"어쩌면 침묵은, 존중과 연대의 기술"

나는 오랫동안 침묵을 무능력이나 외면이라 오해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 겪었던 또 한 번의 실패와, 이제 아들에게 회사를 넘기는 이 과정을 지나며, 침묵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을 완전히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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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침묵이란, 상대를 향한 가장 깊은 존중이자 가장 능숙한 연대의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말로 모든 것을 채우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상대를 판단하고 재단하며, 나의 경험이라는 낡은 틀에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침묵은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을 허락합니다.


실패가 내게 가르쳐준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절망의 순간, 내게 필요했던 것은 명쾌한 해결책이나 쏟아지는 위로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묵묵한 공감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침묵은 상대의 고통을 섣불리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함께 견디는 방식입니다.


이 침묵의 언어야말로, 내가 젊은 시절 직물의 실을 한 올 한 올 헤아리며 배웠던 섬세함과 닮아 있습니다. 진실한 이해는 귀로 듣기보다 마음이 먼저 떨릴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진실은 언제나 그 말의 파장 아래 숨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침묵의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떤 마음을 느끼셨나요?



"간절함이 빚어낸 여백의 울림"

다시 손을 뻗어 샘플북 위의 남색 울 원단을 만져봅니다. 표면의 미세한 보푸라기, 실을 엮은 간격. 이 작은 틈새가 숨을 쉬게 하여 원단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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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팽팽한 긴장 속에 모든 것을 맞물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이 빚어낸 여백과 틈새를 통해서만 서로의 마음이 호흡할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난 뒤, 나는 내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조용한 연습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 내려놓음의 침묵이, 아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벽이 완벽할수록 빛은 닿지 못합니다. 오히려 금이 가고 부서진 틈새로만 빛은 스며들지요. 우리의 진실한 소통 역시, 완벽한 언어 대신 침묵이라는 틈새를 통해서만 전달됩니다.


독자님의 삶 속에도 아마도 말없이 흘려보낸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침묵은 세상의 외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고, 혹은 스스로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가장 진실한 통로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독자님의 가장 깊은 소통은 어떤 침묵 속에 머물러 있나요...



글을 마치며

오늘도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십니다. 찻잔에서 피어오른 김이 천천히 사라지듯, 내 안의 소음들도 잦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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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시간을 되짚어보면, 나는 종종 가장 큰 목소리에 설득당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소중했던 순간들에는 언제나 침묵이 있었습니다. 논리와 근거, 경험과 권위, 그 모든 것들이 다 맞는 말처럼 보일 때가 많았지만, 결국 실패가 허락한 고독한 여백 속에서, 그리고 서로의 눈빛이 머무는 조용한 공백 속에서만 나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삶이 내게 알려주는 것들은 늘 뒤늦게 들려왔습니다. 해설이 없는 장면, 해답이 없는 밤,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끼던 시간들. 그런데 바로 그 바닥에서 마음은 조금씩 결을 드러냈습니다. 누구도 대신 만져줄 수 없는 표면, 손끝으로만 확인되는 섬세함. 그 감각을 얻고 나서야 나는 덜 말하고 더 듣게 되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소리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여백을 온전히 허락하는 일이라는 걸, 아주 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질문을 다르게 던지려 합니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살아 있는가”를. 소음이 잦아든 뒤에도 꺼지지 않는 것, 설명이 없어도 피어오르는 것, 오래 바라볼수록 따뜻해지는 것. 그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바닥에서 천천히 올라옵니다. 시간이 만들어낸 작은 진동이, 내 삶의 중심을 조금씩 옮겨놓습니다.


나는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에게 가닿는 순간은 언제나 모든 언어가 멈춘 뒤에 찾아왔습니다. 눈빛의 깊이가 진심을 전하는 그 찰나에야 비로소 나는 진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침묵의 언어를 더 사랑하고, 더 깊이 경청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그 고요함이 내 삶의 가장 묵직한 울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 긴 성찰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자님의 삶에도 말없이 전해지는 따뜻한 순간들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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