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재료의 의지-정원에서의 대화>전시에 관하여
정원문화를 현대미술로 해석해온 블루메미술관의 네번째 시리즈 전시는 정원에서의 대화법에 주목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정원안에서의 소통방식을 살펴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살아있는 정원의 재료와 마주하는 정원사의 관점에 물질재료를 대하는 세 명 현대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비추어 보며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모호하고 때로 전도되기도 하며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는 듯한 세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재료에는 뜻이 있는가? 재료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가? 능동의 언어로 주체라는 개념을 포섭하며 대상을 분리시킨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멀어진 후에도 여전히 세계는 행위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읽혀 나가고 있다. 그러나 주체가 아닌 ‘개체’라는 개념으로, “지각대상을 수동적 종합의 결과가 아니라 통일성과 역동성을 가진 에너지적 상태”라 본 20세기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관점과 같이 매일 마주하는 세상에서 존재방식에 대한 사고는 끊임없이 흐르고 풀어지고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1]
그 흐름과 풀어짐을 추동하는 계기는 여럿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이 전시는 정원을 말하고자 한다. 삶과 예술안에 모두 걸쳐 있는 ‘재료’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원을 통해 존재와 관계방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원문화를 현대미술을 통해 바라보는 시리즈 중 하나로 이 전시는 하나로 대상화된 사물로서의 재료가 아닌 시몽동의 ‘능동적 질료’개념으로서 재료와의 유기적 상호작용에 기반한 작업들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와 마주하는 정원에서의 소통방식을 읽어보고자 한다.
정원안에서 일어나는 발화와 경청의 행위들에서 예술가들이 물질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발견한다. 주로 화자(話者)의 입장으로 간주되는 사람의 자리가 정원에서는 흙과 식물의 것이 되고 사람은 그들의 의지와 언어에 귀기울이는 청자(聽者)가 되는 것은 최병석의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끼를 배려하는 토끼덫>, <견회유술(개의 마음을 돌리는 기술)>과 같이 어떤 쓰임을 고려한 무언가를 만드는데 이때 그의 관심은 도구를 드는 사람의 손이 말하는 바보다 도구의 대상이 어떻게 느낄지 잘 듣는 것에 향해 있었다. 쓰임과 작용을 전제로 하지 않은 새로운 작업들 <피곤한 사각형>에서는 잘 듣고자 하는 의지가 더 날 것으로 강하게 드러나 있다. 재단된 나무들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단단한 합판들을 사포로 갈아내며 그는 목적성을 위해 그리드로 준비되어 있던 합판이 피곤하게 또는 자유롭고 우아하게 휘어지고 늘어진 형태가 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산업재료가 숨겨져 있던 자신의 형태를 찾는 지점에서 그는 작업을 멈춤으로써 재료가 움직이는 주체를 받아들일 뿐인 수동적 대상이 아닌 개체 대 개체로 서로 진동하고 있는 어떤 지점을 포착하여 남겨놓는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의 자리를 흐트리기 전 중심이 되는 감각을 옮겨놓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김지수는 시각 중심의 인간 감각에서 후각을 주된 감각으로 치환하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의지를 지닌 것들이 보이게 됨을 말한다. 눈으로 앞을 내다보며 팔다리를 움직여 이동하는 동물의 관점에서 식물은 행위하지 않는 정지된 대상으로 보이나 냄새로 식물은 더 먼 곳까지 이동하며 관계 맺고 소통하고 있다. 후각을 냄새 채집도구나 실험장치를 통해 그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작용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고 드로잉과 글, 영상 등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며 그는 감각의 위계구조를 재고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화함을 보여준다. 후각을 중심으로 대상을 만나게 하는 그의 <채집정원>과 <공중정원>은 이미 존재하는 소통방식이었지만 보이지 않아 주목하지 않았던 정원에서의 대화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게 한다.
제닌기는 정원에서의 행위에 시선을 두었다. ‘자르다’라는 행위가 인간과 살아있는 식물사이에서 뽑다, 쳐내다라는 동사와 달리 완전한 능동과 수동을 가를 수 없는 심리적인 밀고 당겨짐이 존재하는 것에 주목하며 서로를 자르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잘리는 느낌을 주는, 행위의 골격만 남긴 듯한 정원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사람의 의지대로 개량되어 자연도 문화도 아니게 된 장미라는 종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Rosa x hybrida’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장미는 몇 백년간 사람의 손에 의해 변형되고 개량되면서 동시에 스스로 선택적으로 진화하며 인간문화사에 개입하기도 한 것이라는 점을 돌아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존중에서 분쟁까지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것을 이야기한다.
정원에서 주객의 위치, 주된 감각, 행위의 관점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상태로 존재하는 바는 예술가들의 작업과정에도 스며있다. 이 전시는 이러한 유기적 관점을 기반으로 물질재료와의 대화법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작가의 재료와 정원의 재료를 대비시키며 이를 통해 정원문화가 품고 있는 생태적 관계방식의 동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확장시키고자 한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는 모든 것에 퍼져 있다. 모든 것이 듣고자 하고 말하고자 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재료인 것이고 실체가 중심이 아니라 관계가 모든 작동의 지렛대가 되어 의지가 있는 모든 것을 살게 하는 것이다.
[1]
황수영, 『질베르 시몽동』, 2018 책참고.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은 기술과 인간사이의 생리-심리학적 연속성을 말하는 기술철학의 핵심을 이룬다. 그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개체가 아니라 개체화이다. 개체화는 관계맺음의 활동이며 개체는 관계의 산물이다.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체라는 개념을 그는 고정적이지 않은 긴장, 퍼텐셜 같은 역동적 내용으로 보며 고정된 실체의 존재자체를 문제시하고 긴장된 힘들간의 차이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