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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여러분에게 미술관은 어떤 공간인가요? 


누구에게나 작은 새로움을 위한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해요. 전통적으로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직장으로 구분되어요. 앞의 두 공간이 자신을 꺼내 보이는 익숙한 곳이라면 제3의 공간은 일상과는 살짝 비껴 있지요. 이곳은 휴식과 자유를 소망하며 스스로를 느슨하게 풀어놓고 다시 채우는 곳이에요.


여행이나 취미생활, 맛있는 음식과 수다... 특별함이 한 스푼 더해진 곳에서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살포시 미소 짓게 되어요. 누구에게나 꿈꾸는 제3의 공간이 있고 이곳에서는 마법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애석하게도 코로나19는 지금까지의 공간구분을 흐트러뜨리며 우리가 누려왔던 외부의 여유 공간을 심리적으로 작아지게 만들었어요. 


새로운 전시 <검다-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전을 앞두고, 작품 설치 전 벽면 치수 재기


지난 주말 우연히 <윤스테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았어요. <윤스테이>는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 등을 연출한 나영석PD의 신작이에요. 그동안 이 프로그램들은 낭만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만남을 보여주며 '기꺼이 시간을 내어 머무른다'는 그 선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이번 방송을 보면서 특별히 미술관이 떠오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과 무척 닮아있었기 때문이에요.


<윤스테이>의 손님들은 한옥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집에서 정갈한 대접을 받아요. 채식을 하는지, 종교적인 이유로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등 개인의 취향과 신념은 그에 맞게 존중받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위해 발소리를 낮추어 뛰어다니는 호스트들이었어요. 대표부터 인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호스트들이 보여주는 분주함은 손님 없이 완성될 수 없는 이 멋진 공간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블루메미술관을 카메라로 담으면 어떨까요? 매년 새로운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하고, 관람객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미술관 직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처럼 보일 것도 같아요. 거침없이 흐르는 붓끝이 우왕좌왕하지만 어느새 미술관이 말하고자 하는 단정한 문장을, 관람객들에게 맞추어진 세심한 공간을 그려내고 있겠지요.


이전 전시에 사용했던 전선과 몰딩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동안 블루메미술관을 찾아주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가만가만 떠올려보아요. 모두가 움츠러들었던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미술관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으로 완성되겠지요. 맞아요. 실은 어디에 빗대지 않아도 이곳에 머무르며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야 미술관이 반짝인다는 걸 직원들은 마음 깊이 알고 있어요.


온통 랜선과 언택트에 대해 넘치게 이야기할 때 작은 즐거움을 내어줄 편안한 공간을 꿈꾸어요. 그러기 위해 일고여덟 명의 미술관 직원들은 서로를 조금씩 나누며 서로에게 기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복작복작! 하얀 공간을 빠른 걸음으로 채워가고 있어요.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호응하며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직원들의 일상과 비하인드 스토리. 


사다리 위에서 조명의 각도를 맞춰요. 조명은 하얀 벽면에 생기를 불어넣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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